1.
초창기 기업에서 인력의 중요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실은 ‘문화’가 최종의 목표라는 사실을 두 번 세 번 강조하고 싶다. 문화란 모든 구성원들에게 몸에 베어있는 어떤 공통의 행동 양식이고 생각의 방식이다.
회사를 처음 나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내가 속해있던 치열한 조직의 문화에 새삼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있었는지였다. 트레이더(딜러) 직무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모든 기회를 다 놓치고 금방 짤린다. 이러한 사실을 매일 같이 곱씹는 시니어들 사이에서, 주니어한테 열심히 해라 말아라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주니어들이 그런 기회 구조를 정확히 파악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저 그런 문화가 자연스러웠다.
2.
어느 NBA 팀에서는 매년 챔피언십을 목표로 하루도 쉬지 않고 자발적으로 연습하고, 서로를 챙겨준다. 그런 문화가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규정한다. 그러나 비슷한 구성원이 모이더라도, 다른 조직에서 조금 다른 문화를 형성한다면, 완전히 다른 환경이 되어버린다.
기회는 똑같지만, 그 기회를 대하는 분위기가 다르다. 사기가 떨어지고 패배주의와 게으름이 일상화 될 수도 있다. 어느 문화가 더 좋다고 가치평가를 하지 않더라도, 문화가 다르면 모든 일상이 달라진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래서 모든 팀원은 미래의 문화에 아주 큰 영향을 가지고 온다. 사람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오묘하며 장기적인 영향을 남기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전체의 문화를 꾸준히 개선할 것이 명료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일은 잘하지만 문화적인 차원에선 아마 애매모호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명백하게 문화가 맞지 않아 서로 괴로워할 것이다.
인사는 매우 실질적인 비용편익 문제다. 눈 앞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장기적인 문화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사람들을 합류시키는 결정은 인사팀이나 대표라면 누구나 매우 고민하는 문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단기적인 비용을 치루고, 장기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결단코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기투자가 대개 그러하듯이, 투자는 아주 높은 편익을 남겨주게 마련이고, 이는 여러가지 정신적 비용과 실질적 비용을 아껴주는 파급효과를 만들어준다.
3.
요새 중간 관리자들을 많이 만나는데 불평을 할 때가 있다. 아래 팀원들이 근성과 열망이 부족하여 면접 때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고, 조금만 불만이 생겨도 엄청 문제를 만든다는 것이다.
건방진 조언일 수 있으나 이는 문화에 대한 비용편익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해당 업무를 하기 위해 태어난 적성과 열망을 가진 매우 똑똑한 사람을 많은 보상을 약속하고 뽑는 것은 많은 비용이 나간다. 그러나 누군가 본인 스스로 큰 열망이 없는 일을 하는 것보다 좋아하고 열망하는 일을 할 때 5배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 것이고, 주위에 그런 열정을 단 1그램이라도 전이할 것이다. 실제 결과의 차이가 크다.
한편 그냥 저냥 조건이 썩 나쁘지 않아서 들어온 사람은 몇 달이 지나면 자신의 업무와 보상에 크게 실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미치는 영향이 무비용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특히 경영자 입장에선, 중간 매니저들이 이런 친구들로 인해 잠을 못 자고, 고민하고, 저성과자 재교육 등의 스트레스 넘치는 업무들에 의해 삶의 피로감이 쌓인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 생각한다.
또 많이 듣는 불평은, 본인의 상급 경영진들이 기껏 결재 받아서 올린 프로젝트를 설명도 없이 갑자기 거절하곤 해서 미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반문했다. 윗 사람이 맥락도 설명해주지 않은 채 결정을 번복하며 수직적인 문화를 강요한다면, 아랫사람들은 모두 의지가 사라지고 조직과 무관한 개인사에 관심이 모두 쏠리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겠느냐고. 중간 매니저도 그러한데 아래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런 문화로 인한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4.
뛰어난 한 사람이 문화를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를 희생하고라도 뛰어난 실력 때문에 사람을 뽑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은 문화를 아예 예전 좋았던 시절에만 당연히 장착했던, 어떤 통제 밖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자가 일하는 회사의 문화가 꼭 최고냐 하고 물어보면, 앞으로 매일 매일 더 좋아질 구석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현재의 수준이 어떠한지의 문제에서 떠나서 말이다. 문화가 바뀌어가면 모든 것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많은 팀원들이 함께 노력하는 조직이라고는 생각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문화는 탁구대나 무제한 간식, 회식의 유무 등 보조적인 특별 복지가 전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공통으로 향유하는 어떤 정신 세계나 행동양식이다. 그리고 문화는 아주 느리게 만들어지고 아주 느리게 변화한다. 만들긴 어려워도, 한번 선순환하고 있는 문화가 하루아침에 쇠퇴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문화에 대한 투자는 매우 좋은 투자다.
솔직히 좋은 분위기와 문화에서 일하는 것이야 말로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해서 우리 인사팀 이름은 컬쳐팀이다. 간식 셔틀도 아니고, 인사고과 평가하는 팀도 아니고, 오로지 문화의 개선에 존재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문: 천병천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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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미지 출처: DB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