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re to That의 「The Nothingness of Money」를 번역한 글입니다.
수수께끼를 하나 풀어보자.
Rich people need ( ). Poor people have ( ). If you eat (), you die. And when you die, you take ( ) with you.
괄호에 들어갈 단어는 무엇일까? 정답은 아래 카툰에 있다.
지금 이 수수께끼를 보면 웃음이 나지만, 어릴 적 답을 들었을 때는 정말 당황했고,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부자들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말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탐닉이 현대인의 공통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종교나 정치 이야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돈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돈은 사회 구조와 너무 얽혀있다.
동시에 이 수수께끼는 또 다른 진실을 말해준다. “누구도 죽음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 억만장자든 노숙자든 간에, 죽음이라는 엄청난 평등에 직면하면 모든 것이 무효가 된다.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유산뿐이다. 하지만 유산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죽음이란 벽에 부딪히면서 더 이상 누릴 사치가 없어진다.
그래서 여기에 엄청난 관계가 놓여 있다. 돈이란 삶에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관계를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인지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나이가 들어 죽음 앞에 서기까지 돈의 중요성이 가파르게 하락하는 모습은 ‘돈의 허무함’을 보여준다. 돈의 허무함이란 이론적으로 더 이상 돈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죽으면 저세상으로 돈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에서, 이 사실은 이론에 불과하다. 즉,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만큼 충분히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부의 추구를 멈추기에는 충분치 않다. ‘삶이 끝나가는구나’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날 때야 비로소 생각이 바뀐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돈의 허무함은 삶의 결승선이 몇 미터 앞에 있을 때 찾아온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이 전해진다. 호스피스 센터에 예약이 되어 있다. 임종이 준비된다.
이 순간, 한때는 온갖 곳에 필요해 보였던 돈이 이제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도 그들과 함께 만들 수 있는 기억뿐이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남은 한정된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그런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에서 심오한 일이 일어난다. 돈의 허무함이 진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강렬한 순간이지만, 그런 현실은 아주 슬프다. 대부분에게 이런 하강은 가파르게 일어나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야만 일어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은 순간에야 돈의 마법이 깨지고 의사결정 과정에 미치는 돈의 힘이 사라진다.
어쩌면 이마저도 감사해야 할 일일 수 있다. 돈의 허무함을 깨닫기란 깊은 성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죽음에 직면해서야 가능하다. 게다가 슬기롭게 임종을 맞는 사람들이라야 그럴 수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과 이후의 모든 과정 사이에 은총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 운이 좋지 않다. 치명적인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면, 살아오면서 돈의 허무함을 내면화할 기회를 한 번도 가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삶에서 돈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힘이었고, 단계마다 행동을 지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주인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되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돈이 헛되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암울하게 들리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인간에게 조건 지어진 본질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망률을 알고 있지만, 결승선이 어디에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평균수명과 전 세계 평균수명을 사용해 가정을 해본다. 하지만 이것은 주로 우리의 불확실성을 잠재우기 위한 연습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언젠가 우리 시간이 끝날 것이고, 우리는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면서 평생을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 몇 순간보다 더 일찍 돈의 헛됨을 알려고 했고, 그래서 그들은 돈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최소한 몇십 년을 살 수 있었다.
그들은 돈의 헛됨을 더 오래 기억하려고 도구를 고안했고, 이를 통해 경제적 자유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안내받았다. 그 도구의 이름은 ‘은퇴’였다.
은퇴의 핵심 아이디어는 “먼저 돈을 쓰는 것보다 돈을 모으는 것에 우선을 둔다. 그런 다음 모은 돈을 관심 있는 여가, 용도 또는 사랑에 쓴다”는 것이다.
은퇴는 돈의 헛됨을 더 오래 기억하게 해주는 동시에, 돈에 감사할 만큼 건강하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일할 필요를 없애준다. 임종을 맞이할 때 비로소 머릿속에서 돈의 의미를 없앨 필요가 없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돈의 중요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이는 약 65세다. 따라서 대부분의 은퇴한 사람들은 돈이 삶을 좌지우지 않게 되는 상황으로 약 23년을 살게 된다. 그들은 세계를 여행하거나, 손자들과 아침을 보내거나, 정원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무엇을 하든 돈을 벌기 위해 어디선가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을 보내지 않는다.
좋게 들리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많은 사람은 돈의 헛됨을 훨씬 더 늦게 깨달아도 된다고 믿는다. 극단적 절약을 통해 40대 초반까지 경제적 자유를 얻어 조기 은퇴를 희망하는 파이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FIRE) 같은 운동은 돈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시점을 훨씬 앞당기는 것이며 다음 같은 곡선을 그린다.
이론적으로는 꿈의 곡선이다. 일찍부터 열심히 일하고, 돈을 많이 모으고, 그런 다음 검소한 생활습관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돈의 부담에서 해방되고 젊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훌륭해도 실제로 허물어질 수 있다.
파이어족으로 성공하려면, 특히 초기 단계에서 돈을 모으는 데 거의 강박적인 수준의 관심이 필요하다. 보통 추구하는 목표나 곡선의 정점을 의미하는 마법의 숫자가 있다. 이 목표가 행동의 중심이 되는 태양이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지출 내역을 모니터하거나 포트폴리오를 확인해야 하는지 지시한다.
실제로 초기 단계는 이런 모습이다. 돈의 중요성이 가파르게 높아진다.
확실히 관심을 건강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지만, 어쩌면 단순히 인생의 입장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미친 듯이 집중함으로써, 조기 은퇴라는 중요한 목표에 도달할 능력을 급격히 키울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돈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에 그만큼 나중에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문제는 이 렌즈를 내가 원하는 순간에 빼낼 수 없다는 것이다.
습관은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접착제와도 같다. 만일 15년 이상을 밤마다 그날 지출 내역을 기록하고, 하루에 20번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고, 주머니 사정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면, 과연 목표에 도달했다고 해서 돈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 오랜 기간 돈을 궁극의 수집품처럼 대해 왔다면, 과연 수집품이 충분히 모였다고 해서 수집을 멈출 수 있을까?
조기에 은퇴한다고 해도 기존의 습관이 계속된다면 돈의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게 된다. 휴대폰을 만질 때마다 여전히 포트폴리오를 확인한다면 돈의 헛됨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먼 것이다. 돈 때문에 더 좋은 음식을 먹기가 망설여진다면 여전히 전능한 돈을 신으로 모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렇게 되면 원래 그림처럼 죽음의 문턱에 도달해서야 돈의 헛됨을 이해하게 될 수 있다.
이런 갈등을 풀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돈 중심적인 생활이 결국에는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스스로 계속 상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우스꽝스러워 보일 일이 지금도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친구가 묘비에 “내가 S&P 500보다 수익률이 좋았노라”고 써넣고 싶다고 말한다면, 바로 웃음이 터질 것이다. 농담으로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핵심은 돈에 관심을 빼앗길 때마다 그 감정을 정확히 받아들이고 스스로 상기하는 것이다. 돈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 주문을 깰 방법은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깨닫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이렇게 하면, 번쩍이는 순간이 찾아와 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주고, 고원의 높이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게 된다.
고원이 낮을수록 돈의 중요성이 줄어들 때 경사도가 덜 가팔라지고, 나중에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도 최소화할 수 있다.
지혜는 여러 모순된 진실이 모여 있는 곳이며, 가장 분명한 예가 바로 돈이다. 우리는 돈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돈의 무의미함을 내재화해야 한다. 우리는 돈의 이야기 안에서 움직이면서도, 그 이야기가 동화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돈의 이야기에 있는 허황된 본질을 보지 못하고, 너무 늦게까지 복음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의 헛됨을 깨달아 삶에 방점을 찍고 나면, 돈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하기 위해 도약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 지루한 일에서 벗어나 성취감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포트폴리오를 제쳐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좋은 글귀가 묘비에 쓰이도록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묘비에 새길 것이 아니라면, 이제 우리는 마음속에서 달러 표시를 지울 때가 되었다.
원문: 피우스의 책도둑 & 매거진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