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만나는 사람은 있니? 결혼은 언제 할래?
자식들 잘 자리 잡고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엄마 최고의 바람이야.
불쑥불쑥 부모님은 결혼 이야기를 꺼내신다. 아직 부모님 세대에게 우리는 결혼하지 않은 자녀는 부모에게 숙제이자 불효라는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사회적 혹은 생물학적) 결혼 적령기를 조금 지나는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지금껏 부모님과 함께 지내온 삶으로부터 홀로서기를 하기 위한 독립을 선포했다.
아빠엄마, 저 이제 독립할게요.
사실 나는 누구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우선시하던 사람이다. 다만 그럴만한 좋은 사람을 고르는데 신중한 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혼도 때가 있다는 말에 한때는 조급함이 앞섰지만 이제는 평생에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배우자 선택과 결혼을 조급함과 등 떠밀림에 얼렁뚱땅 해치워버리고 싶지는 않다.
이제 막 독립했고 앞으로 혼자 살아갈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혼자서 보낼 앞으로의 시간을 행복하게 잘살아 보자는 마음을 먹던 터에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혼자 살아도 괜찮아』라는 제목부터 나는 왠지 모를 응원과 ‘토닥토닥’의 메시지를 느꼈다. 책은 싱글라이프는 이제 전 세계적인 추세이자 대표적 사회적 흐름임을 말한다. 우리 생각보다 1인 가구는 훨씬 더 많고, 급격히 증가했다. 누구나 지금은 혼자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혼자 살아갈 수도 있다. 몇십 년 전보다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간다. 또한 이혼과 사별로 인한 1인 가구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1인 가구의 증가, 왜 대세인가?
이제 싱글라이프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통계상으로도 1인 가구 수는 계속해서 증가한다. 우리의 3–4명 중 한 명은 혼자 산다. 1인 가구에 포함되는 인구는 나 같은 미혼뿐 아니라 사별 혹은 이혼한 모든 연령대의 남녀를 모두 포함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의 추세만이 아닌 전 세계적 추세다.
19세기 후반부터 개인주의, 대규모 도시화, 수명증가, 통신 혁명, 여권신장운동 등으로 인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독신 인구는 증가했고, 1970년대 이후 소비문화, 자본주의, 개인주의가 확산되며 독신 인구의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심지어 초보수사회인 중동, 이란,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전례 없던 출산율 감소와 이혼율 증가 추세가 관찰된다.
1인 가구의 증가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는 사회 현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자세한 설명은 책을 참고). 하지만 한국의 실정과 내 주변의 생물학적 결혼 적령기 친구들의 의견을 고려해봤을 때, 우리(30대)가 생각하는 가장 큰 몇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의 역할 변화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것은 성평등 문화가 발달하며 여성의 교육 수준이 향상되었고, 사회적, 직업적, 경제적 측면 등에서 여성의 권리와 지위가 향상되었다. 초보수 사회인 아랍에서도 2010–2012년에 일어난 ‘아랍의 봄(Arab Spring)’이라는 시민운동으로 인해 여성의 자율권이 상당히 확대되었다.
여성해방과 페미니즘 운동의 움직임은 특히 여성들의 자아실현 욕구를 강하게 했고, 여성의 법적 지위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가족으로서의 역할, 성생활, 노동 분담에도 역할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점점 보편화하며 많은 여성이 직업적 목표를 높게 두고, 도전정신을 발휘할 자유를 누리고, 결과적으로 결혼과 가족이라는 선택지를 더 쉽게 포기하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결혼한 부부의 외벌이는 일반적이었고 여성은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 맞벌이와 워킹맘, 독신녀는 흔한 풍경이다. 이러한 여성의 직업 전문성과 경제력은 이혼한 후에도 여성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여건을 충족시킨다. 또한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는 이전보다 여성에 대한 결혼과 출산의 의무를 덜 강조하고, 여성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추세로 흘러간다. 이러한 ‘여성의 자립력 향상’은 1인 가구의 증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아직 한국 사회에서 육아휴직을 다녀온 여성이 설 자리는 그리 견고하지 않기에 결혼이나 출산이 커리어에 방해가 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내 주변에도 교육 수준이 높거나 직업적 전문성(능력)이 뛰어날수록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모습이 종종 관찰된다.
둘째, 경제적 요인
많은 사회에서 경제적 안정은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꼽는다. 우리나라 MZ세대의 신조어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에는 오르는 집값을 바라보는 2030의 허탈감과 자조적인 인식이 담겨있다. ‘우리 같은 월급쟁이가 10년, 아니 평생 동안 서울에 제대로 된 집 한 채를 살 수나 있을까?’ 오늘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는 무심결에 이 때문에 결혼도 연애도 망설여진다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요즘의 심각한 부동산 상승 문제는 젊고 돈 없는 사회 초년생인 20–30대가 결혼을 진작부터 미루고, 포기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또한 대부분 결혼하면 자신의 소비 습관과 구매를 제한하며 희생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있다. 요즘 사람들의 소비주의와 개인주의는 가족에 대한 의무감을 피하고 자신의 자아실현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를 확산해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양산한다.
셋째, 도시화
주변 친구 중 지방에 사는 친구 대부분은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보다 결혼률이 높고, 평균 결혼 및 출산 연령도 어리다. 독신 인구가 대도시에 몰리는 이유가 뭘까? 일단 도시는 1인 가구가 살아가기에 편리한 소형 주거 형태, 1인 식당, 문화, 상점, 의료, 교육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교육 수준과 직업 전문성이 높은 인구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현상도 대도시 1인 가구 증가에 한몫한다.
또한 도시의 인구 밀집으로 인해 수용된 인구는 그만큼 다양성을 띤다. 대도시는 다양한 사회적 믿음과 개인주의의 집합체가 되었다. 이로 인해 도시인구는 점점 전통적 가족 형태와 이전의 가치를 따르지 않는 경향을 나타내었고, 1인 가구 및 현대적 가족 형태로의 변화를 부추기게 되었다.
넷째, 대중문화와 상업적 분위기
대중매체와 언론은 현재의 사회적인 현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수년간 많은 대중매체가 혼자 살아도 괜찮은 환경들을 조성한다. 2013년 ‘나 혼자 산다’가 처음 방영할 때 ‘뭐 저런 프로그램이 다 있지? 사회적으로 결혼을 장려하진 못할망정 이런 프로그램이 과연 오래갈 수 있을까?’ 하고 부정적인 시선을 던졌다. 그때로부터 8년이 지난 요즘은 어떨까?
위 프로그램은 가끔 나의 불금을 책임지는 단골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제는 1인 가구를 소재로 삼은 방송 프로그램들이 정말 흔하다. 또한 1인 가구를 겨냥한 상품, 광고, 식생활, 주거 형태, 라이프스타일 등이 출시되며 점차 1인 가구가 살기 좋은 환경들이 구성되고 이러한 상업적 분위기가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이끈다. 또한 시장은 자신을 위한 소비를 서슴지 않는 1인 가구를 더욱 선호하고 이들에게 적합한 상품들을 계속해서 양산한다.
싱글라이프와 외로움
그렇다면 혼자 살아가는 것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싱글라이프에 로망이 있던 나는 독립 이후 지난 5개월간 혼자만의 공간을 꾸미고, 건강한 식단을 만들어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 먹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게 꽤 즐거웠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친구들을 내 공간에 초대해서 노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나의 인생을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자유로움에 대한 기쁨이 컸다. 나 스스로 나를 위한 온전한 삶을 사는 시간을 경험했고 이러한 즐거움만이 계속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갈수록 좀 외롭다. 항상 가족들과 시끌벅적 지내오던 터라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는데 퇴근 후 텅 빈 집에 들어갈 때의 느낌이 점점 낯설다. 외로움은 싱글라이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결혼 여부가 외로움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기혼, 미혼, 사별, 이혼그룹으로 나누어 외로움의 정도를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사별·이혼>미혼>기혼 순으로 외로움과 행복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기혼이 미혼보다 덜 외롭지만, 결혼 이후 이혼 또는 사별을 경험한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 쭉 혼자 지낸 사람보다 외로움과 불행을 느끼는 정도가 훨씬 커졌다.
사회적 고립이 타인과 최소한의 관계만 맺는 객관적 상태라면, 외로움은 개인이 인식하는 고립감과 관련된 주관적 감정이다.
- 엘리야킴 키슬레브, 『혼자 살아도 괜찮아』
많은 사람이 외로움이 두렵고, 홀로 늙고, 홀로 남겨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결혼을 선택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사실 외로움은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다. ‘외로움’이란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관계의 수준과 실제 수준과의 차이이며, 이는 자신이 맺은 인간관계의 수나 친밀도의 정도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외로움은 결혼 여부와 같은 객관적 상황보다 주관적인 자기 인식에 달려있다.
관련 연구 결과에서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나 커뮤니티가 있고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외로움을 덜 느꼈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을 사람과의 관계에서에서만 한정해 생각해봤을 때, 과연 가족과 같은 특별한 관계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있는 친구나 공동체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아직까지 미혼인 입장에서 결혼 이후의 삶에 가타부타 말하긴 어렵지만 결혼이라는 환경 설정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결혼을 통해 자신이 속하게 되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특별한 공동체는 책임감과 헌신뿐 아니라 사랑과 배려, 믿음, 기쁨 등 인생의 희로애락을 더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깊이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인생의 깊이와 의미를 한층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싱글라이프를 위한 전략들
그럼에도 중요한 건, 싱글라이프는 사회적 추세고 사회적 환경에 따라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인 가구의 사람들이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과 여건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개인이 언제든 사회적 관계망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독립한 지 5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나만의 공간과 삶에 어느 정도 적응된 안정된 생활을 한다. 1인 가구로 살아가며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들이 새롭고,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는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경험이 모두 내 취향을 비롯해 나를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과정이기에 즐겁다.
이따금 외로움을 느끼지만 이러한 감정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모두 내 인생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니 이 또한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 결국 지금 혼자든 둘 이상이든 모든 순간이 소중한 내 삶의 일부임에는 틀림이 없다. 앞으로도 잘 살아보세!
원문: Dandelion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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