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예쁜 가구와 인테리어가 내 방에 어울릴지, 놓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게임 ‘심즈’처럼, 가상의 공간에 물건을 배치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
물론 고급 SW를 사용하면 실제로 내 집을 3D로 구현할 수 있다. 문제는 1) 비싸고 2) 엄청나게 사용하기 어렵다 3) 실제 존재하는 가구와 인테리어를 3D 공간에서 매칭할 수 없다. 이럴 거면 그냥 가구점에서 사진 찍어서 어림짐작하는 게 나을 정도다.
‘어반베이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한 스타트업이다. 1) 내가 사는 아파트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3D 공간이 펼쳐진다 2) 실존하는 벽지, 브랜드 가구 등 인테리어를 배치할 수 있다 3) 사짜가 아니다. 신세계와 한화에서 투자했고, 하나금융투자를 상장주관사를 선정해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 스타트업이 쉽게 수백억을 투자받고 상장을 앞둔 건 아니다. 잘 될 때보다 망할 뻔한 순간이 훨씬 길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유니콘’, ‘수백억 투자’처럼 신나게 성장하는 것 같지만, 실제 스타트업은 생존을 위한 악전 투구다. 어반베이스의 고난사를 정리해 보았다.
1. 초기에 10억을 투자받았으나 매출이 없어 망할 뻔하다
지금은 수십억 투자가 흔하지만, 2015년은 2–3억 투자도 뉴스가 되던 시대였다. 어반베이스는 이때 10억 투자를 받았다. 아파트 도면을 입력하면 바로 3D화하는 기술만으로, 이 시대의 혁신이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혁신적인 서비스는 너무나 낯설었다. 마케팅비를 월 1,000만씩 썼지만, 사용자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고 바로 이탈했다. 10억이라 봐야 직원 10명 회사 1년 굴릴 비용에 불과했다. 결국 매출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용자가 적은 B2C에서 매출이 나오기는 힘들었기에, B2B로 길을 틀었다. 자존심보다는 생존이 중요했다.
하지만 B2B 영업은 쉽지 않았다. 대기업은 보수적이다. 기존 사용하던 프로그램은 로딩에 1분이 걸리는 데 반해, 어반베이스는 2초면 충분했다. 그럼에도 기존 프로그램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무료로 한번 사용이라도 해보라고 해도 응하지 않았다. 잘돼봐야 티도 안 나고, 안되면 본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어반베이스의 선택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매우 보수적인 건설-가구업계에서, IT에 가장 선도적인 퍼시스그룹의 일룸을 집중적으로 설득했다. 결국 일룸에서 도장을 찍자, 이어 LG전자 등 대기업도 뒤따랐다. 그렇게 하여 매출 0이던 어반베이스는 1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SI가 그리 길어질지는 몰랐다.
2. 외주의 늪에 빠져 구성원들의 신뢰를 잃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일을 따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바깥에서는 놀라운 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안에서는 다르다. 구성원의 만족도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이들은 기존에 없던 무언가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대기업 외주에 매달리자 반발이 거셌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B2B 외주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 2년 이상이나 진행했으며, 그 사이 B2C는 방치되었다. 떠나는 구성원들이 생겼고, 인재를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투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투자를 받으려면 또 매출이 필요했다. 딜레마였다.
결국 어반베이스의 임직원들은 결단을 내린다. 어떻게든 투자금을 받아올 테니 B2B 외주를 중단하자는 것. 회사의 흥망이 달린 상태에서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선택을 했기에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서로 간에 신뢰가 형성되자 문제해결은 좀 더 편해졌다. 경영진은 우선 ‘고객과의 약속도 중요하니, 하던 외주까지는 하자’고 마무리 지었고, 새로이 합류한 CTO는 외주가 완료되는 대로 B2B가 아닌 B2C에 집중하는 시스템 개선을 약속했다.
3. 투자 문제가 꼬여서 폐업의 문턱까지 다녀오다
그래도 퍼시스, LG전자 등 유수의 대기업이 기술을 인정할 정도였으니, 투자자들도 우호적이었다. 2019년 모 투자사에서 50억을 필두로 총 80억의 투자가 결정됐다. 이 계획에 맞춰서 모든 예산 계획도 결정됐다. 이제 기술개발에 힘을 쏟을 날만이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리드 투자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에 피해를 입을 기존 투자사들이 반발하자, A사는 도장 찍기 전날 투자를 취소해버렸다. 화낼 여유도 없었다. 통장에는 회사를 1개월 유지할 돈밖에 없었다.
스타트업이 항상 힘들다고는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였다. 그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회사가 첫 번째 전략투자를 했던 우미건설이었다.
우미건설의 이석준 부회장은 개발자 출신이다. LG에서 한국 1세대 AI 개발자로 일하다가, 가업을 잇기 위해 건설사로 돌아왔다. 벤처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건설을 하면서도 스타트업 투자를 계속해 왔다. 그의 철학 덕택에 어반베이스는 망하기 직전의 상황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4. 일본어도 못 하고 도전한 일본, 그들의 계약 문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우미건설의 투자금은 산소호흡기를 연장한 정도였다. 한국의 좁은 스타트업 업계에서, 투자가 한 번 실패했다는 소문만으로도 추가 투자는 쉽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수출뿐이었다. 여러 기관에 연락을 돌리자, 의외의 대박이 나왔다. 일본 최대의 투자사 소프트뱅크가 어반베이스의 기술을 눈여겨본 것이다.
어반베이스는 소프트뱅크를 통해 일본 유수의 기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어반베이스와의 협업을 원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의 깐깐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거냐?”라는 질문에 “아마존 클라우드 서버를 써서 괜찮다”라고 답하면, “아마존 서버가 있는 곳에 지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거냐(…)”라고 또 질문하는 식이다.
최악의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 질문이 이어졌다. 마치 시비를 걸거나 가지고 노는 것만 같았다. 돈도 말라갔고, 성과 없이 한국으로 복귀를 고민했다. 이때 어반베이스는 소프트뱅크에 부탁한다. 한국과 일본의 환경이 너무 달라, 순수 한국 스타트업으로는 해결이 힘드니, 아예 소프트뱅크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팔고 협업할 수 없겠냐는 것.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나이 지긋한 차·부장급 직원들이 ‘어반베이스는 이대로 끝내기는 아까운 회사다’라며, 아예 소프트뱅크에 사표를 던지고 어반베이스에 합류한 것. 일본의 계약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빠르게 닛토리, 덴츠 등 일본 유수의 대기업과 계약을 성사한다. 이는 자체 생존이 가능할 정도의 매출액이었다.
5. 인테리어사가 고객이 요청한 리모델링을 맞추지 않자, 아예 직접 인테리어에 진출하다
해외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해 보인 어반베이스는 우미건설의 후속투자와 신세계의 투자를 받는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터진 후, 이내 어반베이스 B2C는 폭발적인 사용자 수 증가를 겪게 된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반베이스를 통해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월 3,000만 원씩 써도 늘어나지 않던 유저가,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전년 대비 5배나 늘어났다.
이 영상이 15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집을 꾸미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반베이스 입장은 곤란해진다. 고객들은 시공이 끝나면 ‘뭐야, 사진이랑 다르잖아’라며 실망하게 된다. 이 불만은 고스란히 어반베이스에게로 돌아온다. 사실 어반베이스의 책임도 아닌데, 억울하게 욕만 먹는 상황이다.
이 지점에서 어반베이스는 회사의 존재 이유를 되새겨보았다. 어반베이스는 그냥 웹에서 꾸미고 즐기라 있는 게 아니라, 유저들의 인테리어를 현실로 만들어주는 툴이었다. 그래서 어반베이스는 아예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를 꾸리기로 한다.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고, 사용자가 원하는 걸 현실로 만들어주는 데 집착한 것이다. 그렇게 고객이 바란 모습을 그대로 실현하자, 고객 만족도는 수직 상승했다.
결. 그렇게 6년 만에, 우미건설-신세계-한화의 투자를 받고, 상장주관사를 선정한다
최근 어반베이스는 한화H&R에서 130억 투자를 받았다. 이를 통해 한화그룹의 호텔과 리조트에 쇼룸을 넣는 사업을 공동 진행하게 됐다. 고객들은 호텔에서 쇼룸을 구경하고, 즉석에서 어반베이스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아파트에 가구 등을 적용해볼 수 있다. 이는 보수적인 호텔업에서는 놀라운 도전이다. 어반베이스가 호텔업의 디지털화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어반베이스는 하나금융투자를 상장주관사로 선정, IPO 준비에도 들어갔다. 다른 스타트업에 비하면 상장하기에 여러모로 유리한 조건이다. 우미건설, 신세계, 한화 등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았으며, 닛토리, 덴츠 등 일본 유수의 대기업에 수출한다. 여기에 그들이 활용하는 AR, VR, 메타버스는 투자자들이 누구보다 눈여겨보는 분야다.
현재 어반베이스는 전 직종 채용 중이다. 지금까지 고생했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신규 입사자에게도 스톡옵션을 부여할 계획이다. 망할 뻔한 여러 차례 상황을 넘어온 이유는, 결국 인재들이 함께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상장만을 노리는 게 아니라, 상장 후 더 큰 도전을 위해, 각 분야 C레벨도 채용 중이다. 기업문화의 기본은 하고 싶은 일은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니, 도전과 성취를 원한다면 한번 눈여겨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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