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4년 차 중간평가를 내리다
남수돌 님 올해 몇 년 차예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올해 몇 년 차더라, 잠시만요!”하고 손가락을 펼쳐서 입사 연차를 세어보다가 문득 ‘아 맞다, 들어온 지 4년 되었구나’ 생각하며 황급히 “2018년에 들어와서 어느덧 4년 차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직장 생활 중 위기가 찾아온다는 마의 3년 차를 벗어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업무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하나씩 치워가던 신입사원 시절부터, 내가 잘하고 있나 끊임없이 고민하던 2–3년 차까지 겪고 났더니 올해 초까지만 해도 살짝 한숨 돌린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직장인 3년 차를 지나 4년 차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직장 생활 2단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열심히만 하던 신입사원 시절을 지나, 이제 슬슬 업무가 익숙해지는 건가 하고 방심하다 보면 한두 개씩 실수를 저질러 사수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1–2년 차를 지나, 혹시 대리 진급이 누락되면 어떡하지 쓸데없이 걱정하던 3년 차를 지나… 드디어, 그리고 무사히 4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대리를 달고 나서, 평소 친했던 선배와 티타임을 즐기다가 문득 이런 말을 들었다.
수돌 님, 대리가 무슨 뜻인 줄 알아? 대신해서 일하는 사람이라서 대리야.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실감 나지 않았는데, 올해 업무분장표를 보면서 ‘아, 그 선배의 이야기가 맞구나…’하고 한숨을 쉬어야 했다. 기존 업무에, 선배들이 맡은 업무 보조, 신입사원 사수까지 맡아야 했었는데 심지어 신입사원이 입사 취소를 하는 바람에 그에게 가르치면서 넘겨줘야 하는 업무마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확실히 3년 차 때보다 업무 스킬도 늘었고 직장 동료나 윗사람들을 대하는 방법도 터득한 4년 차였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더 이상 신입사원 또는 주니어 버프는 이제 사라졌기에 실수 하나도 용납받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즉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바쁘게 달려오던 지난날을 뒤로한 채 살짝 한숨 돌린 게 무색해질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바쁘다는 건 이런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출근하면 숨 쉴 틈 없이 일했던 것 같다.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와 점심을 즐기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 정도 잔다고 생각해보면, 남은 16시간 중 반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우리는 잘살고 있는 걸까?
이렇게 정신없이 계속 일만 하다가는 눈 깜짝할 새 시간이 흐를 것 같아 안 그래도 잘살고 있는지 불안하던 참이었는데, 마음속에서 뭔가 펑-하고 터진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잘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좀 더 잘살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간의 직장 생활을 한번 중간 평가하듯 뒤돌아봤다. 크게 실패한 적은 없었지만, 그만큼 크게 성공한 적도 없는 직장 생활이었다. 잘한 점은 계속 밀고 나가되 아쉬웠던 점은 보완해나가며 용기 내 큰 성취를 이뤄내 보고자 싶어 내가 계속 읽어볼 요량에, 주니어의 관점으로 ‘직장 생활에서 기억해야 할 5가지 조언’을 적어보려 한다.
1. 나다움을 지킬 것
직장 생활에서 자칫 방심하다가는 ‘나’를 잃어버리기 쉽다. 지난 3년간 일이 너무 많아서 집에 일감을 갖고 들어오는 날이 빈번했고,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면서 일에 매달렸다. 게다가 원체 술을 좋아하지 않건만, 동료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지기 위해서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술을 잘 마시고 즐기는 척했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 점점 기억나지 않게 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지난 3년간 직장 생활을 떠올려보면 특히 상사들에게 일을 잘함으로써 예쁨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일 외적인 것들에서도 그들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했었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꿔놓은 탓에 근무환경이 바뀌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점점 제 자리를 찾듯 나다운 삶을 찾아가도 있다. 일을 적당히 하고 저녁은 나를 위한 삶을 보내면서 삶의 만족도도 크게 증가했다. 앞으로 또 세상이 변하더라도 나다움을 잃지 말고 반드시 지킬 것, 그리고 다른 이나 환경에 휩쓸리지 말고 내 길을 걸어가야겠다 다짐했다.
2. 누군가를 먼저 물지 말되, 물리면 스스로를 위해 싸울 것
처음 신입사원일 때는 상상도 못 했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 좋은 사람은 당연히 가까이 지냈지만, 직장 생활에서 나쁜 사람이라도 일을 같이하다 보면 부딪히기 때문에 멀리하기 힘들다.
대학 시절 홍보대행사 인턴으로 일할 때도 나쁜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럼에도 그때는 사회생활 경험이 없고, 또 인턴이다 보니 나에게 함부로 하거나 나쁘게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이 준 상처로 인해 화장실에서 울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하는 것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3년의 직장 생활 덕분에 지금은 나쁜 사람을 만나도 웃는 얼굴로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채 사적으로 엮이지 않고 슬쩍 지나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럼에도 만약 그 상대방이 나를 문다면 이제는 피하지 않고 나를 위해 싸울 것이다. 누군가를 당연히 먼저 물지 않을 것이지만, 물리면 스스로를 위해 싸울 것. 직장 생활에서 꼭 명심하길 바란다.
3. 나에게 하는 만큼 남을 대할 것
직장 생활에서 갑을 관계에 묶여 일을 하면서 갑의 자리에 있어 갑질하는 회사도, 을의 자리에서 을질하는 회사도 봤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세우기 바빴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맞춰주길 바랐다. 이런 이들을 만나면 일하는 것 자체가 몹시 피곤해진다는 것을 지난 3년 동안 깨달았다. 그들과 추진하는 일이 빨리 끝나길 바라면서 내 능력치의 80% 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적당히 일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 이들보다 갑의 자리에 있음에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 을의 자리에 있으면서 을답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적절하게 내면서 업무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과 일할 때 내 능력치의 100% 이상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과 일할 때 진정으로 만족감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나에게 하는 만큼 남들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갑을 관계에 있는 파트너사이거나 심지어 동료 사이라도, 상대방이 본인은 대우를 원하면서 나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들에게 좋은 말이 나가기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마치 성자처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잘해줄 생각도 없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우니까.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배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나도 딱 그 정도만큼의 진심과 배려를, 아닌 사람이 있다면 나 또한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 직장 생활에서 꼭 기억하면 좋겠다.
4. 일은 사람 위에 있지 않다
직장 생활에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신입사원 시절, 직장 동료와의 관계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일은 잘하는데 동료들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다는 한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을 잘하는데 뭐가 문제야’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는 일머리가 있는데 사람마저 좋은 사람들, 두 번째는 일은 잘하는데 사람이 좋지 못한 사람들, 세 번째는 일은 못하는데 사람만 좋은 사람들, 마지막으론 일도 못하면서 사람도 좋지 못한 사람들.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 중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의견이 분분하다. 내 경우엔 두 번째 유형과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일은 내가 잘하면 되지만, 사람이 좋지 않다는 것은 곧 그 영향이 나에게 제일 많이 미칠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일을 잘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자만심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스스로에게 내리는 칭찬인지 늘 경계하며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만 잘난 사람은 성장하지 않고 어느새 사회로부터 도태된다. 자신이 일을 잘한다는 것만 믿고, 혹은 일을 잘한다 착각하며 다른 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는지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힘들다고 말할 것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자. 3년간의 직장 생활 끝에 터득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말인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다. 과도한 업무가 맡겨져도, 또 내가 메인으로 담당하는 업무가 아님에도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 언젠가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러나 직장 생활에서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대부분은 모르거나, 알아도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사람은 결국 나다. 올해 초 회사에서 한 분에게 부당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작년까지였으면 그냥 흘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그 말이 부당하다, 지금도 나는 충분히 힘들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바로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힘들다, 부당하다 말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색해져 더 힘들어질 것이라 착각했었다. 물론 앞에서는 사과를 해도 뒤에서는 내 흉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과를 받음으로써 힘들었던 지난날에 대해 보상받은 기분마저 들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자. 마음에만 꽁꽁 힘듦을 숨겨둔다면 아무도 모른 채 결국 힘들어 쓰러질 것은 나니까.
이만 마치며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직장인 4년 차의 관점으로서 쓴 글이었지만 결국 이 모든 직장인에게 바치는 조언이다. 독자 중 몇몇 분은 ‘직장 생활 4년밖에 안 해봤으면서 무슨 조언을…’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아쉬웠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나와 같은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조언과 위로를 건네주고 싶어 글을 써봤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분이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원문: 남수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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