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전문 서적이나 강연을 보면 아이디어, 타이밍, 팀, 자본, 인내심 등을 언급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기발한 아이디어에 무게를 싣는다. 결국 사업 아이템이 훌륭해야 지속적인 이윤을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기업에서는 세상이 놀랄 만한 아이템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요인보다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고객은 복잡하다. 감정과 생각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변덕스러우며, 요구하는 것도 많다. 이런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기업이 성공할 수 있다. 그렇기에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고객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깊고, 심오하게 말이다.
데이터
1998년 ‘마크 랜돌프’와 ‘리드 헤이스팅스’는 ‘개인 취향(Personal Taste)’을 충족시키는 데 중점을 둔 영화 DVD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것이 넷플릭스이다. 그들은 고객의 심리를 이해해야 사업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업 초창기부터 넷플릭스는 사용자들을 분석하는 데 용이할 수 있도록 평가 지표를 마련했다.
- 고객이 홈페이지의 어떤 카테고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 영화 소개 글을 읽는 데 얼마큼의 시간을 할애하는지
- 영화 감상 목록을 어떤 장르 순서로 채우는지
- 어떤 프로모션에 참여율이 높은지
- 어떤 배우나 감독을 좋아하는지 등
이처럼 사소한 부분까지 파악하며 이용자들의 성향을 알아냈다. 1990년대 후반은 오늘날처럼 알고리즘(고객이 넷플릭스에서 벌이는 모든 행동 패턴을 기록하고, 이를 토대로 고객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발전하기 전의 시대였기 때문에, 사람이 일일이 홈페이지에 기록되는 정보를 확인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함으로써 자신들만의 분석 체계를 갖춰 나갔다.
그 결과, 고객이 DVD를 반납하면 다음 날 고객이 좋아할 만한 장르의 영화 DVD를 자동으로 발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람들은 자동 발송 시스템의 편리함을 경험하고 이를 ’21세기 마법’이라며 극찬했다. 급속도로 가입자 수와 투자처가 늘었고, 넷플릭스는 설립된 지 1년 만에 300%의 매출을 달성했다.
알고리즘
넷플릭스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퀀텀 점프(기업의 급격한 성장)’를 경험한 이후 그들은 이용자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더욱 발전된 데이터 지표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07년 넷플릭스만의 알고리즘 ‘NRE(Nexflix Recommendation Engine)’을 개발했다. NRE는 현재 1,300개 이상의 필터 값을 통해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다. 동시에 영상 콘텐츠 3,000편 이상을 검토해 고객이 선호할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을 추천한다. 현재 알려진 NRE의 분석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언제, 어디에서, 몇 시에 영화를 봤는지
- 어떤 장비로 시청했는지
- 몇 분 정도에 콘텐츠 시청을 멈췄는지
- 어떤 장면에서 화면 밝기를 높였는지 (혹은 줄였는지.
- 어떤 시점에서 빨리 감기, 되돌리기, 일시 정지를 했는지
- 사용자의 성별, 국가, 나이 등은 어떠한 지
- 과거에 영화나 드라마를 시즌 별로 시청한 기록이 있는지
- 시리즈물일 경우 몇 편까지 봤는지
- 시리즈물 전부 시청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는지
- 특정 장면을 반복해서 보는지
- 원하는 콘텐츠를 찾는 데 시간이 얼마큼 걸리는지
- 어떤 지점에서 화면 캡처를 하는지
- 추천 리스트를 살펴보는 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 콘텐츠 시청 후 ‘좋아요’나 ‘싫어요’ 버튼을 눌렀는지
- 어떤 섬네일과 예고편을 보고 클릭하는지
그러나 NER은 영상 속 맥락은 파악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넷플릭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내에 ‘영상 시청팀’을 두었다. 그들은 영화, 드라마 등을 시청하고 영상 분위기가 어떤지, 어떤 소재인지, 어떤 결말인지, 소설 원작이 있는지,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지 등 각각에 해당하는 키워드를 세세하게 나눈다. 이를 한 번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 NRE에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한다.
데이터가 쌓이며 알고리즘 정확도는 높아졌다. 2000년대 초, 취향 적중률이 크게 높지 않았으나 현재는 90% 초·중반대를 유지 중이다. 경우에 따라 98%의 적중률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비례해 추천 목록 시청률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용자들의 80% 정도가 넷플릭스 홈페이지에 게재된 추천 영상을 시청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남긴다.
콘텐츠
넷플릭스는 알고리즘으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자체 콘텐츠 사업,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선보였다. 2011년 범죄 드라마 〈릴리해머(Lilyhammer)〉를 시작으로 여러 장르의 영화 및 드라마를 제작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유로 가입자 수가 매년 20% 이상 늘어나는 중이다. 넷플릭스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영국, 스페인 등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협업 투자를 진행하며, 현재 1,500편 이상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유했다.
오리지널 콘텐츠는 철저하게 이용자의 취향을 바탕으로 제작된다. 시장 트렌드를 쫓아 영상을 만들면 콘텐츠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들은 국가별, 인종별, 시기별 선호하는 소재나 장르, 분위기 등을 토대로 콘텐츠를 기획한다.
대표적으로 2019년 한국에서 제작된 〈킹덤(Kingdom)〉이 있다. 당시 넷플릭스에선 좀비물이 강세였다. 또한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K-POP의 영향력이 커지며 한국 드라마, 영화, 예능 등의 시청률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데이터를 참고해 넷플릭스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 좀비 드라마를 제작해 흥행에 성공했다. 이 밖에도 〈종이의 집〉 〈프로젝트 파워〉 〈올드 가드〉 〈승리호〉 〈낙원의 밤〉 등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만들었다. 모두 NRE에 저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탄생된 작품들이다.
알고리즘의 발전된 계산 능력과 더 많은 사용자 표본이 쌓이면서, 넷플릭스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한 방증으로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넷플릭스로 몰렸다. 그들에게 이곳은 자신들이 찾던 수준의 콘텐츠가 즐비한 온라인 휴양처와 다름없다.
철학
Know your fans, then they will like you.
고객을 알아야 그들도 당신을 좋아한다.
마크 랜돌프와 리드 헤이스팅스는 실리콘밸리에서 통용되는 위 원칙을 알았다. 그렇기에 넷플릭스를 설립할 때부터 ‘개인 취향(Personal Taste)’를 브랜드의 근간으로 두었다.
넷플릭스는 이 철학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알고리즘’ 기술을 선택했다. 그것은 넷플릭스에게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다. 고객 만족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과학적인 접근법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뉴스나 소비자 분석 리포트만으로는 이용자의 개인 취향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평가한다. 대체로 과거 사건과 현상을 평가해 기록한 자료라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다음 목표는 이용자들의 취향에 100% 부합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구성원 모두 안다. 표본이 많아질수록 평가해야 할 데이터도 방대해지고, 이를 처리할 알고리즘 수준 역시 주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지라도 넷플릭스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점점 더 정교하게, 점점 더 완벽하게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이것이 넷플릭스가 잊지 않으려는 방향이자 믿음이다.
원문: 코지오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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