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성
나는 미루는 습관이 있다. 조금 심각하다. 한국 석사 시절이 끝날 무렵이었다. 학점과 필요한 조건을 다 마련해놓고, 석사 논문 신청서류를 마감일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마감일이 지나서 냈다. 어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결과 석사 학위 없이 유학을 나왔다. 지도교수님의 황당해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일은 우리 과 역사에서도, 다른 과에서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하셨다.
미루는 것은 학업과 관련된 것뿐 아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병원 청구서나 공과금이 나오면 마감일 업무 시간 종료 직전에 내거나, 늦어서 과태료를 얹어 내는 경우가 자주 있다. 미국에서 건강보험료를 제때 납부하지 않아 건강보험이 취소된 상태로 지낸 경우도 있다.
어떤 일이든 데드라인 직전, 남들이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보다 한 발, 두 발 더 나아가서 진짜 망하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에 패닉이 와야만 일을 하곤 한다. 이렇게 해도 운 좋게 크게 망하지 않고 살아왔고, 이 경험에 기반해 미루는 습관을 정당화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하여간 그냥 살면서 나보다 더 일을 미루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아주 심각하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내가 좀 엉뚱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재활해 나가는 아주 심각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게도 통하는 방법은 독자분들에게도 통할 것이라는 설득을 위한 것이다. 미루는 습관은 부끄러운 것이고, 나는 간절하게 이것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다.
원인부터 생각해보자
데드라인이 임박해서야 일을 시작하고, 밤을 새서 일을 겨우 처리하고, 다음부터는 정말 미리미리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을 수년 동안 반복했다. 이제는 미리 하겠다는 결심도 양심상 못하겠다.
자, 왜 도대체 마지막 순간까지 미룰까? 몇 번이 아니고 모든 데드라인마다 예외 없이 미룬다는 것은, 분명히 이 문제를 만들어내는 구조적인 원인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가끔 미루는 것이 일종의 질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본인은 간절히 진심으로 미루지 않기를 원하는데,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틀림없이 미루게 된다.
이런 사람한테 “미루는 원인 같은 게 어디 있어! 그냥 미리미리 해!”라는 것은, 마치 약이 필요한 수준의 우울증 환자한테 “기분 좀 밝게 가져!”라고 하는 것이랑 같은 것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고, 자기 스스로 이 원인을 알아야만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다.
두려움 fear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본 원인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원인은 두려움이다.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뇌는 미세한 스트레스 상황을 귀신같이 감지해내고 우리를 한눈팔기(distraction) 활동으로 보내려고 한다. 스트레스 상황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생존확률을 높이게 진화해 온 우리의 뇌이다. 이 뇌의 명령에 따라 핸드폰을 열게 된다.
“데드라인이 있는, 처리해야 할 일”은 스트레스이다. 사람들은 몇 가지 감정으로 이 스트레스를 해석한다. 귀차니즘, 거부감, 번거로움, 짜증, 싫음 등으로 표현한다. 나도 이런 이 스트레스를 이런 감정들이겠거니 생각해 왔는데, 어떤 글을 읽고 나서, 이 감정은 사실 두려움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데드라인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는 바로 일을 시작하지 않는 감정이 귀찮음일 수도 있고 번거로움일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는 습관적으로 미루는 사람이 아닌 경우에도 일을 늦추는 경우가 꽤 있고, 이때의 감정은 귀찮음이나 번거로움이다. 하지만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이제는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계속 미룬다면, 그 원인이 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일을 시작하면 지금까지 미뤄온 결과 자신이 본 손해를 알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얼마나 많은 일을 괴로워하며 처리해야 하는지 인식하게 될 것에 대한 것도 있고, 성공적으로 기한 내에 처리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있고, 급하게 처리한 일의 결과가 얼마나 남들 보기에 초라할 것인가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각자의 악몽은 다 다를 것이지만, 그 근저는 동일하다. 두려움이다.
왜 공과금 내는 것을 미루게 될까? 은행 잔고를 생각해봐야 하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왜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미루게 될까? 을로서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왜 지원서를 내는 걸 미루게 될까? 떨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붙었을 때 시작될 힘든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많은 경우 미루는 것 기저에는 두려움이 있다.
이 두려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은 황당하게도 한눈팔기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스마트폰을 열고 쇼핑사이트에서 나에게 꼭 필요한 물품들을 둘러본다든지, SNS 포스팅에 달린 좋아요를 확인하고 댓글을 단다든지, 엄청 욕을 먹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뉴스를 보면서 같이 욕하는 동안 희미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묘하게도 안정감(safety)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텐션을 준다는 사실(SNS),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해주는 것(좋아요), 긍정적인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댓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안을 보는 것(뉴스)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다. 사회적 승인(social validation)이다.
미루는 상황에서의 이런 안정감은 당연히 뿌리가 깊은 안정감은 아니다. 폭풍우 속을 걷다가 잠시 나무 밑에서 쭈그려 비를 피하는 것 같은 안정감이다. 낭떠러지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데, 벌꿀 통에서 떨어진 조금의 꿀에서 단맛을 느끼는 안정감이다. 불안 속의 안정감이다. 미루는 습관을 가진 이들은 이런 류의 안정감에 아주 익숙하다. 그리고 불안 상황에서 이런 얕은 안정감을 찾아 나서는 것이 학습되어 있다. 반복되어 패턴화되면 이것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진다.
이 두려움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소개한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이것이 잘 작동할 때는, 힘든 일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꽤 자신감 있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일을 하고자 마음먹으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은 굉장한 자신감을 준다.
원문: 뉴욕털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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