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도가 높아서 겁난다
나는 미국 사회과학 대학원생으로, 삶의 패턴이 프리랜서와 비슷하다.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는 상사도 없고, 고정된 장소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 종종 커피숍이나 도서관에서 일하기도 한다. 자유도가 높다. 언뜻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생활을 몇 년 해본 나로서는 그 반대다. 오히려 짜인 구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불성실에 피드백 받고, 일하는 시간과 장소가 루틴화한 게 부럽다.
내 생활은 자유도가 높은 만큼 시간 관리도 스스로의 힘으로만 해야 한다. 하루를 완전히 낭비해도 당장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게으른 나로서는 띵까띵까 기분 좋다. 하지만 가끔은, 뺀뺀히 놀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무섭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관리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특히 미루는 습관을 지닌 사람한테는. 시간 낭비가 이어지면 슬럼프가 되고, 빠져나오기 힘든 상황이 된다. 내가 그랬다(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최근에 몇 가지 나에게 효과를 발휘한 방법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 글에서 공유해보고자 한다.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나는 언제, 왜 일을 미루는가?
하루의 가치
내가 확실히 아는 것 하나: ‘오늘 하루의 가치를 명확하게 느낄 수 없으면’ 그 하루는 망한다는 것이다. 워낙 게으른 성향을 가져서 그런지, 오늘을 빡세게 살아야 할 이유가 피부로, 명확히, 절실히 느껴지지 않으면 그 하루는 거의 망한다.
반대로, 마감이 임박했을 때는 나름대로 빡세게 하루를 살아낸다. 왜냐.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오늘 하루의 가치가 명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마저 날아가면 정말 위험해진다!”고 느끼는 거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 남은 날들에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하루만 날아가도 데드라인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오늘 하루의 가치를 명확하게 느낀다. 그리고 미루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데드라인이 많이 남은 상황에서 “오늘 하루쯤이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경고: 숫자가 나옵니다). 자, 한 달 후 데드라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완결하는 데 필요한 일의 양이 100이고 남은 날들이 30일이라고 하면 하루에 해야 할 일은 3.33이 된다(100/30일=3.33). 헌데 첫날에 “오늘은 첫날이니까 맥주 마시고 영화 보고 내일부터 일하자”며 놀면 남은 기간의 일일 할당량이 어떻게 될까?
100의 일을 29일에 해야 하니까 100/29일=3.45가 된다. 하루의 할당량이 3.33에서 3.45로 변한다. 거의 차이가 없다! 전체 일의 양이 100인데 그중에서 겨우 0.12 (=3.45-3.33) 올라가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가치변화가 피부로 느끼기에 너무 적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 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늘 놀아도 남은 날들의 할당량에 변화가 거의 없다.
심지어 며칠 더 놀아도 이 수치는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어이쿠 일을 열심히 안 한 지 벌써 5일이 지났네!” 자, 하루의 할당량은 어떻게 됐을까? 아직도 할당량은 4이다 (100/25일=4). 3.33에서 겨우 4로 겨우 0.67 올랐을 뿐이다. 전체 필요한 일 100에서 겨우 0.67이 올라갔다. 아직도 작은 수치다. 뺀뺀히 논 지난 5일간, 아직도 하루는 중요하지 않다.
습관성 미루어들의 사고는 이렇게 돌아간다. 하루를 놀았을 때 손해가 크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다음 날도 미루고 그다음 날도 미루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33.3%의 하루법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하루의 가치가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하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상태가 심각한 나의 경우에는 하루가 전체의 3분의 1 정도의 가치(33.3%)를 가지면 똥줄이 타기 시작한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일의 종류나 주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딱 수치를 말해보라고 하면 3분의 1을 말하겠다. 이 상황에서는 만약 하루를 놀면, 남은 이틀에 각각 50%의 일을 해야 하고 이것은 너무 힘들거나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나는 이런 이유로 벼락치기를 한다. 새로운 일이 떨어질 때, 나는 이미 안다. 막판에 3일에 몰아서 끝낼 것이라는 걸.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항상 그래왔다. 거의 확실히 그렇게 된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그래? 어차피 막판 3일에 몰아서 저퀄로 끝낼 게 확실하다고? 그럼 어차피 저퀄일 거 아예 처음 3일에 저퀄로 끝내버리면 어떨까?
보통은 시작점에서 “30일 동안 일을 성실히 진행해서 고퀄의 결과물을 내야지” 한다. 이런 계획 저런 계획 세우지만, 거의 그렇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나. 그래서 아예 첫날부터 저퀄을 작정한 3일 계획을 세운다. 하루의 가치가 3%, 4%, 5%여서 빈둥대는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리자.
첫날부터 33.3%로 시작한다(전체 필요한 일의 33.3%). 물론 이 33.3%는 빡센 설정이어야 한다. 한 달짜리 일을 마지막 3일에 처리할 때의 강력한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를 기억하는가? 그 빡센 3일이, 데드라인 직전에서 프로젝트 첫날로 옮겨온 것일 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연히 업무강도도 동일하게 설정한다. 그리고 진행을 하다 보면,
보통 3일에 안 끝난다, 하지만
경험에 의하면 거의 첫 3일에 끝나지 않는다. 일하다 보면 조금 더 퀄리티를 높이면 좋을 부분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어지곤 한다. 근데 이건 긍정적이다. 막판 3일 데드라인에 맞출 때는, 개선할 곳이 보여도 마감에 맞춰다 보니 그냥 저퀄로 냈다. 하지만 막 3일이 첫 3일로 옮겨갔을 때는 이런 곳을 개선할 수가 있어서 전반적인 퀄리티는 진짜 막 3일에 비해서 훨씬 올라갔다.
예상보다 길어지건 짧아지건, 포인트도 하루의 가치가 전체 처리해야 할 일의 33.3% 이상으로 유지해주는 것이다. 33.3% 밑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하루의 가치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럼 오늘 일할 동기가 약해진다. 항상 3일짜리 프로젝트의 하루로 사는 형태이다.
경험
나한테는 이 방법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 첫날부터 하루의 가치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는 붕어가 아니기에 많은 날이 남은 것을 알고, 리얼똥줄 만큼의 압박감은 없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이 심플해져서 머릿속에 명확하게 들어와 있다. 어차피 3일짜리 계획이어서 복잡할 것이 없다.
요약해보면, 33.3%의 하루법은 고퀄을 목표로 매일매일 조금씩 일해나가는 계획이 아니라, 첫 3일에 저퀄로 끝내는 계획으로 시작하고, 일이 진행함에 따라 시간이 길어지고 퀄리티도 올라가는 방식이다. 이것의 확실한 장점은 1) ‘하루의 가치’를 첫날부터 바로 느낄 수 있고, 2) 항상 33.3% 이상의 가치를 가진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전반적인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다양한 업무 세팅
물론 3일에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거대한 프로젝트가 있을 수가 있다. 이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하루의 가치가 33.3% 이상으로 되는 단위로 쪼개서, 즉 2일짜리나 3일짜리로 쪼개서 계획을 짜는 방법이 가능하다. 여기서 포인트는 일주일 단위로 계획을 짜지 않는 것이다.
일주일 단위의 계획은 하루의 가치가 14%인데, 내 경우에는 여전히 하루의 중요성이 체감되지 않는 수치이다. 또 다음 날로 미루게 될 확률이 높다. 하루나 이틀, 3일짜리로 쪼개서 일을 짠다. 이때 일의 강도는 데드라인 직전의 일의 강도로 짜야 한다.
참고
위까지의 글에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이다음부터는 왜 3일이 긴장감이 시작되는 지점인지 숫자로 뒷받침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안 보셔도 위의 내용을 가져가시는 데 큰 상관은 없습니다. (모바일에서 보면 잘 안 보이실 겁니다.)
위 표에서 첫 번째 행은 데드라인이 1달 남은 시점입니다. 전체 업무량이 100일 때, 30일 남은 시점입니다 (남은 일수=30). 이때의 일일 업무량은 위에서 본 것처럼 3.33입니다 (100/30=3.33). 그리고 마지막 열은 해당 날, 하루를 놀았을 때 (즉, 1행의 경우, 첫날에 그 3.33의 일일 업무량을 수행하지 않았을 때) 남은 날들의 일일 업무량이 얼마나 증가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첫 번째 행 4열이 0.11이라는 것은 30일 남은 상황에서 하루를 놀면 나머지 29일의 일일 업무량 증가량이 0.11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행 4열의 의미는 29일이 남은 상황에서 하루를 놀면 나머지 28일의 일일 업무량 증가량이 0.12라는 것입니다(소수점 반올림 때문에 정확하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 행 4열의 의미는 28일 남은 상황에서 하루 놀았을 때 나머지 27일의 일일 업무량이 0.13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열을 관심 있게 보는 이유는, 일을 미룰 때 “에휴, 내일부터 하면 되지”하면서 미루지 않습니까? 그때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수치가 이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루를 놀아도 내일부터의 업무량이 겨우 100중에서 0.11이 는다는 것이 긴장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지요.
네 번째 열의 수치를 보면 계속 놀아도 1 이하로 유지가 됩니다. 전체 일이 100인데 그중 1입니다. 작게 느껴지죠. 11일 남은 상황까지도, 19일 놀았으니 30-11=19니 하루를 더 놀아도 남은 날들의 부담이 겨우 0.9 증가합니다. 이러니까 11일이 남은 상황에서도 놀게 되는 것이지요.
이 수치는 일정하게 낮게 유지되다가 마지막 며칠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3일이 남은 상황에서야 두 자릿수에 진입합니다. 하루의 가치가 확 체감되는 것이죠. 3일 남은 상황에서 일일 업무량은 33.3이고, 3일 남은 상황에서 하루를 놀면 나머지 날들의 업무량이 50이 되어버리고, 이것은 16.67이 증가해버립니다(밑에서 세 번째 행). 부담스럽습니다.
이런 이유로 3일 계획이 하루의 가치를 체감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위 그래프는 이 4열의 수치를 그래프로 그린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일일 업무량 증가 폭은 마감일 3–4일 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8일 전까지는 사실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습관적으로 미루는 사람들한테 하루의 가치가 적은 날이 너무너무 깁니다. 그래서 모든 걸 3일 단위로 계획을 세워보는 것입니다.
원문: 뉴욕털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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