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맛이 나는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생레몬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신맛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느끼는 대표적인 5가지 맛의 요소는 보통 다음과 같습니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 그러나 사람은 생존과 관련해 본능적으로 단맛과 감칠맛은 좋은 느낌을, 나머지 쓴맛과 신맛 그리고 짠맛은 나쁜 느낌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보통 쓰거나 신 맛을 내는 것은 상한 음식이기에 생존에 위협을 준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맛과 쓴맛, 그리고 짠맛 등을 싫어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신맛만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만약 모든 신맛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면, 사람들은 신맛이 나는 모든 과일도 싫어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음식의 필수 요소, 산미
최근에 커피 시장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면서 여러분들도 신맛이 나는 커피를 많이 경험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쓰거나 무겁지 않으며, 다양한 향이 도드라지고 가벼운 질감의 산뜻한 커피에서 신맛이 잘 느껴집니다. 아니, ‘산미‘라고 하면 오히려 더 익숙하실까요?
보통 신맛이라고 하면 대부분 거부감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 어감을 포장하기 위해서 ‘산미’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신맛이라고 하면 식초와 같은 강렬한 초산(Acetic Acid)의 신맛을 그리지만, 산미라고 하면 오렌지나 자몽, 망고, 살구, 포도, 딸기 등을 먹었을 때와 같은 인산(Phosphoric Acid)의 청량하고 산뜻한 맛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맛이나 산미나 결국 큰 의미는 같습니다. 편의상 이다음부터는 ‘산미’라고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산미는 커피뿐 아니라 모든 음식에 필수 요소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소량의 산미가 첨가되면 그 음식의 맛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산미를 첨가해 좋은 맛을 주는 게 서양 음식에만 해당될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한국 음식에서도 많이 사용됩니다. 대표적으로 냉면부터 시작해서 무생채무침, 오이냉국, 김치 등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커피에도 산미가 느껴지면서 과일이나 꽃향기 같은 느낌을 더 풍부하고 산뜻하게 살려주기도 합니다. 거기에 커피 고유의 좋은 단맛이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이 커피 바꿔주세요! 이 커피 쉬었어요!”
아주 훌륭한 품질의 커피를 사용하며 카페를 운영하는 제 지인이 실제로 들었던 말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한 손님이 아메리카노를 받아서 나가시고 몇 분이 지난 후에, 헐레벌떡 뛰어서 들어오시면서 “이 커피 바꿔주세요! 이 커피 쉬었어요!”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신맛이 난다면서 그 커피가 쉬었다고, 즉 상했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제 지인은 커피에서 산미가 느껴지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한 뒤에 다시 커피를 제공해드렸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끝까지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에 거부감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교적 산미가 훨씬 적은 다른 커피를 제공한 뒤에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와 다른 바리스타 친구들은 엄청 웃었습니다. 정말 웃겼지만 그분이 왜 그런 말을 했을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커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마주쳤던 산미에 거부감이 있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과거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이란 바로 초산(Acetic Acidity)이 느껴지는 강렬한 신맛의 좋지 않은 커피를 맛본 경험이었습니다.
과거에 대한민국 커피 시장에서 산미가 있는 스페셜티 커피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일부 바리스타는 매우 과한 산미를 가진 커피를 취급했고, 그것을 최신의 좋은 커피라고 포장해서 손님들에게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고소한 맛의 쓰고 진한 맥심 커피와 스타벅스 커피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극단적인 초산의 커피 맛에 경악했고, 그 뒤에 커피에서 조금의 신맛이라도 느껴지면 거부하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젊은 층의 사람들은 비교적 산미가 있는 커피를 매우 잘 받아들이지만,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비교적 산미가 있는 커피에 거부감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과도기 시절의 좋지 않은 경험 때문이지요. 반면 연세가 있으시더라도 처음부터 적당하고 좋은 산미를 가진 커피를 천천히 경험했던 분들은 오히려 산미가 있는 커피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커피 원산지와 로스팅, 그리고 산미
대부분의 커피에서 느껴지는 산미는 커피의 산지와 로스팅에 가장 크게 좌우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고산지대에서 재배되는 좋은 품질의 커피는 좋은 산미를 가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커피가 재배되는 해발고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일교차가 크고, 그에 따라서 커피 과육의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과육이 탄탄해지고 좋은 단맛과 산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커피 생두를 강하게 로스팅하면(다크 로스팅) 스타벅스 커피와 같은 두껍고 터프하며 산미보다는 고소하고 쓴맛이 도드라지는 커피가 되지만 비교적 약하게 로스팅(라이트 로스팅)하면 산미가 느껴지는, 그리고 가볍고 선명하며 과일이나 꽃의 향미와 맛이 도드라지는 커피가 됩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커피 시장에서 맛본 산미가 있는 커피가 대부분 케냐,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등지에서 생산된 라이트 로스팅 커피인 것입니다.
마치며
자, 이제까지 산미 이야기 어떠셨나요? 커피에서 산미가 느껴지는 이유와 사람들이 산미가 있는 커피에 거부감을 가지는 이유를 설명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은 경험이 있었나요? 아니면 최악인 경험이 있었나요?
이 글에서 저는 ‘산미가 있는 커피가 무조건 산미가 없는 커피보다 좋은 커피다’ 같은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산미가 있는 커피가 더 비싸고 고품질인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만의 좋은 커피’의 기준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산미가 없는 고소한 커피를 즐긴다면, 나에겐 그것이 가장 좋은 커피인 것입니다.
그러나 부디 여러분들이 산미가 있는 커피를 즐기지 않더라도, 산미를 가진 커피에 관한 좋은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보셨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원문: 만얼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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