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군, 부서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으나 회사라는 조직에는 크게 실무자와 관리자 두 부류가 있다. 말 그대로 실무자는 실제 업무를 주로 진행하고 관리자는 실무자들이 원활하게 실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한다.
실무를 해본 경험이 있어야 실무자들의 고충을 알고, 또 그에 필요한 액션을 취할 수 있기에 거의 대부분 관리자의 직급이 실무자보다 높다. (그냥 쉽게 생각하자, 더 낮은 직급이 일을 시키면 하고 싶을까?)
내가 경험했던 조직도 그랬다. 팀장이나 실장은 보통 차장급 이상이었고 실무보다 컨펌 및 크리틱이라는 평가자의 역할이 중요한 업무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관리자의 주업은 실무가 아닌 팀 관리와 컨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경력이 쌓여도 관리가 아닌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이고 싶습니다.
현재 내 이력서 앞단에 쓰인 문장이다. 이상하게 관리자의 역할만 하는 그런 커리어를 쌓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보통 관리자 직급 정도가 되면 새로운 것보다 본인의 경험이 업무의 중심이 되고, 뭔가 정체된 듯한 이미지를 많이 느꼈다. (그래서 쓴 글)
그리고 올해 초, 그렇게 관리자보다 실무자가 좋다고 이야기했던 나에게 관리자가 될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약 3개월을 보냈다. (시간 진짜 빠르다. 3개월을 일해보니 가장 확실한 건, 왜 그동안 관리자들이 실무를 하지 않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무 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우선 실무를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든다. 말 그대로 관리자인 만큼 내부 팀원들의 인사 업무, 팀원 관리 업무도 있지만 경영진과 다른 리더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간단히 말해 미팅이 정말 많아진다는 점이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하나의 팀을 이끄는 경우 발생하는 의사결정은 팀의 범위를 벗어난 형태로 논의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회의로 이어지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아지며, 실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셈이 된다.
안 해본 업무도 생기는구나
팀 면담, 법인카드 관리, 휴가 관리, OKR 관리, 결제, 승인 등 예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업무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자잘한 업무들이 은근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처음 해보는 업무라 시행착오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것 또한 결과적으로 실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잡아먹는 셈이다.
피할 곳이 없구나
중간 관리자, 또는 실무자인 경우 디자인 관련 이슈를 모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고,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괜찮은 경우도 있었다. (소위 말해 쉴드 쳐주는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발생하는 디자인 이슈를 모두 확인하고 대처해야 한다. 피할 곳이 없는 셈이다. 당연히 그만큼의 시간이 더 들어가게 된다.
무엇보다 실무를 한다는 게 다르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관리자가 실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주 내용은 관리자가 실무를 하게 되는 경우, 실무자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예시로 든 상황은 특정 디자인 업무에 대해 컨펌과 피드백이 반복되다 일정에 쫓겨 결국 관리자가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 꽤나 자주 있을 법 합 일이다. 이런 경우 관리자는 실무자의 역량을 못 믿고, 실무자는 자신의 역량에 대한 믿음이 낮아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실제 관리자 역할을 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가지만 명심한다면 관리자가 실무를 해도 앞선 안 좋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업무의 담당자를 중간에 바꾸지 않는 것이다.
앞선 예시처럼 관리자와 실무자의 신뢰가 깨지는 건 업무 담당자를 중간에 바꾸는 경우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업무의 담당자에게는 충분한 오너십을 주고, 일이 잘되면 담당자 덕분이고 일이 잘못되어도 담당자가 책임지는 구조가 중요한 거 같다. 잘돼도 내 탓, 못돼도 내 탓이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배우고 있지만 앞으로도 난 실무를 계속하려고 발버둥 칠 거 같다. 남에게 일을 시키기 전에 필요한 건 두 가지다. 더 많이 알거나, 아니면 그 일을 이미 해봤거나. 이런 단계까지는 아직 멀었기에 더 실무를 잘하는 관리자가 되고 싶다. (욕심도 많다.)
원문: NEOSIGN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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