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디자인이라 혹평을 받았던 애플 에어팟이 엄청난 성공을 하면서 잔잔했던 무선 이어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인기에 힘입어 다양한 가격대와 디자인, 노이즈 캔슬링까지 지원하면서 소비자들의 선택 폭은 매우 늘어났지만 점점 좁혀지는 선택지가 있다. 스마트폰에 3.5파이 이어폰 단자를 없애면서 벌어진 유선과 무선의 선택지다.
늘 가지고 다니던 무선 이어폰을 어느 날 챙기지 못한 채 출근했다. 가방을 뒤져보니 다행히 안 쓰던 유선 이어폰을 발견했고,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은 덕분에(3.5파이 단자가 존재하는 마지막 갤럭시 S라인) 유선 이어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3.5파이 단자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순간, 그동안 알지 못했던 유선 이어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유선 이어폰의 간편함(?) 때문이었다. 있을 때는 몰랐던 소중함이란…
우선 유닛을 보관하는 별도의 케이스가 없어 주머니가 한결 가벼워졌다. 스마트폰 말고 무언가를 항상 휴대한다는 건 무게와 부피 상관없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가격에 대한 부담도 훨씬 줄었다. 물론 비싼 유선 이어폰도 있긴 하지만, 출퇴근길에 필요한 건 음질보다 간편함이다.
가장 크게 와닿는 건 충전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스마트워치 대비 충전을 해야 하는 빈도가 적긴 하지만 그럼에도 충전을 신경 써야 하는 건 유선 대비 확실한 단점이다. 확실한 연결성도 유선 이어폰의 강점이다. 특히 무선으로 발생히는 딜레이는 영상 편집 시 사용하기 어려웠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간간이 발생하는 끊김 증상은 기존의 유선 이어폰 경험에서는 볼 수 없던 단점이다.
이런 장점에도 3.5파이 단자가 없는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지만 이어폰 단자가 있는 스마트폰을 다시 쓴다면 아마 유선 이어폰을 더 선호할 것이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제품보다 예전에 끼워준 제품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드니, 정말 궁금한 게 생겼다.
어떤 경험을 위해 선을 없애는 것일까?
애플이 처음 이어폰 단자를 없앤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나온 가장 흔한 이야기는 제품 내부의 공간 확보와 방수 기능을 위한 선택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동안 출시한 갤럭시 시리즈를 보면 그리 타당하지 않은 듯하다. 이어폰 단자가 있어도 얇고 가벼웠으며 방수도 잘되니 말이다.
매일 가지고 다니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기기임을 고려했을 때 스마트폰에서 이어폰 단자를 없앤 건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철저히 기업 입장의 전략이라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건 소비자 입장으로는 언제나 환영할 만하지만 선택의 기회를 없애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대체 ‘선’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길래
선이 없는 자유로움.
무선 이어폰, 무선청소기, 무선 선풍기, 심지어 무선 냉장고까지 흔히 선 없는 제품이 자주 사용하는 마케팅 문구다. 선이 꼬일 때의 짜증, 선이 짧을 때의 아쉬움이 분명 있었지만, 그렇다고 제품 자체의 경험을 해칠 정도로 ‘선’이 방해되는 요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선’은 존재만으로 뭔가 옛날 것,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상이 되어간다.
결론적으로 무선을 강조하는 제품의 마케팅은 무선 이어폰의 매출이 보여주듯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는 다른 제품에도 점차 적용될 거라 예상한다. 다만 이런 전략이 취할 때 소비자의 선택권이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스마트폰에서는 3.5 단자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플래그십 라인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이 인터페이스가 장점으로 어필되는 제품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무선의 단점은 유선이 장점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니까.
원문: NEOSIGN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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