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다 보니 대중교통 안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이 시간이 아까워 종이 신문과 전자책을 읽지만 가끔씩은 이마저도 불가능한 ‘지옥철’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제가 주로 하는 행동은 ‘관찰’ 입니다. 무례하고 실례인 줄은 알지만 직업병처럼 ‘요즘 어떤 앱을 사람들은 많이 쓸까’ 눈앞에 보이는 여러 스마트폰 화면에 눈길이 가곤 합니다.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화를 가장 먼저 깨닫는 곳도 지하철이었습니다. 지금은 다소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피키캐스트 앱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많이 본다는 것도, 포털이 아닌 유튜브에서 검색하기 시작한 것도 지하철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스와이프해가면서 탐색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리디북스 페이퍼를 들고 전자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모두 지하철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변화가 가장 먼저 시작되고 그 변화를 캐치할 수 있는 곳이 제게는 ‘지하철’이었습니다.
올해 들어 지하철에서 많이 목격한 것은 바로 ‘에어팟’이었습니다. 콩나물처럼 생긴 에어팟을 귀에 끼고 다니는 분들이 한두 명 늘어나더니 요즘에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게 저렇게 편할까 싶었지만 에어팟을 사용하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추천’을 외쳤습니다.
어떻길래 다 한결같이 저럴까 싶어 저도 3개월 전에 구매했습니다. 벌써 함께한 지 3개월이 된 에어팟. 저는 에어팟을 어떻게 쓰는지, 사용하면서 느낀 점을 기록해보았습니다.
에어팟을 사용하는 시간이 늘면서 함께 늘어난 건 ‘시리(siri)’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왼쪽 에어팟을 더블 탭하면 시리가 켜지는 것으로 설정했는데요. 요긴하게 시리를 잘 사용합니다.
출근할 때 방을 정리하고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에어팟을 낍니다. 이제는 습관처럼 자동으로 나오는 행동입니다. 에어팟이 좋은 점은 귀에 꽂자마자 자동으로 아이폰과 블루투스 연결이 되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어팟을 사용하기 전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잠깐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요. 불편했던 점은 늘 전원을 켠 뒤 잠시 동안의 연결 시간을 가진 뒤 “Device Connected” 음성 안내를 기다려야 했다는 점입니다.
에어팟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케이스에서 꺼내어 귀에 꽂는 즉시 아이폰과 연동되어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시리에게 많은 것을 물어봅니다.
오늘 날씨 어때?
날씨를 가장 먼저 물어봅니다. 예전에는 AI 스피커로 들여놓은 WAVE에 물어봤지만 요즘은 시리에게 물어봅니다. 비가 온다고 하면 우산을 챙기고, 날씨가 덥다고 하면 핸디 선풍기를 챙깁니다. 처음에는 에어팟을 산 김에 시리를 호출해 날씨를 확인했지만 어느덧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시리에게 질문합니다.
오늘 일정 뭐야?
오늘 일정도 시리에게 물어보는 주된 질문입니다. 한 가지 단점은, 이건 시리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일정을 말해줄 때 “○○개의 일정이 있어요.” 한 뒤 “더 자세히 알고 싶나요?” 한 번 더 물어본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바로 자세히 말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이 점은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어진 질문에 “알려줘” 대답하면 나오는 자세한 일정으로 오늘 어떤 일정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에어팟을 사용하고 나서 스마트폰 본체로 전화 거는 경우는 많이 줄었습니다. 에어팟으로 받기 위해 에어팟을 귀에 꽂을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받을 때가 많지만 걸 때는 에어팟을 귀에 꽂은 뒤 → 시리를 호출하고 → “○○에게 전화 걸어줘” 말합니다. 부모님, 동생, 친구에게 전화 걸 때 모두 이런 방식으로 변했습니다. 참 신기한 건 에어팟과 입이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제 목소리가 수신자에게 선명하게 잘 들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게 ‘기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팟캐스트’를 더 빈번하게 듣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에어팟을 귀에 꽂은 뒤 → 시리를 불러내고 → “팟캐스트 틀어줘” 말하면 잠금 화면을 해제할 필요 없이 팟캐스트 앱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부분부터 재생해줍니다. 신기했던 건 팟캐스트 앱을 완전히 종료해도, 심지어 아이폰을 껐다 켜도 시리로 “팟캐스트 틀어줘” 명령하면 마지막으로 들었던 지점을 정확히 기억하고 다시 재생해줍니다. 하드웨어(에어팟)와 소프트웨어(팟캐스트)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잠시 팟캐스트를 일시 정지하고 싶을 경우에는 에어팟으로 컨트롤 가능합니다. 저의 경우는 오른쪽 에어팟을 더블탭하면 재생/일시정지 기능이 활성화되도록 세팅해두었는데요. 이를 활용해서 잠시 그만 듣고 싶을 때는 더블탭으로 정지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든 간에 다시 듣고 싶을 경우 에어팟을 더블탭하면 마지막 들었던 곳을 기억하고 그곳부터 재생해줍니다. 그래서 전날에 퇴근하면서 듣고 일시 정지했던 팟캐스트를 다음날 출근 때 바로 이어서 듣습니다. 에어팟으로 팟캐스트를 점점 더 듣는 이유입니다.
팟캐스트를 에어팟으로 사용해보면 오디오 콘텐츠와 에어팟 간의 끊김 없는 흐름을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점이 느껴집니다. 제가 넷플릭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콘텐츠의 ‘마지막 지점’을 잘 기억한다는 점입니다. PC로 볼 때의 콘텐츠 마지막을 기억하고 모바일로 이어 볼 때 그 지점부터 재생해줍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든 간에 ‘마지막’을 잘 기억하고 다음 재생 때 제 역할을 합니다. 아직 애플뮤직은 사용해보지 않아 에어팟과 애플뮤직의 사용성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못했지만 분명 에어팟(하드웨어)과 애플뮤직(소프트웨어)이 잘 연결되어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사용성에 집중한 부분과 지금까지의 블루투스 이어폰의 문제를 해결하는 점도 에어팟의 매력입니다. 에어팟으로 무언가를 듣다가 한쪽 에어팟을 귀에서 빼면 자동으로 듣던 것이 ‘정지’가 됩니다. 그리고 다시 귀에 꽂으면 이어서 재생이 되죠. 에어팟 안에 근접 센서가 있어서 귀와 가까우면 연결로 인식해 재생하고 귀에서 떨어지면 해제로 인식해 콘텐츠 재생을 멈춘다고 합니다.
이 센서 덕분에 에어팟의 사용성은 다른 블루투스 이어폰보다 우위가 되었습니다. 듣던 것을 멈추기 위해 ‘정지’를 할 필요 없이 에어팟을 한쪽이라도 빼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쪽만 뺀 경우 다시 무언가를 듣고 싶을 경우 다시 귀에 꽂으면 재생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 재생과 일시 정지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겁니다.
사실 무언가를 듣다 보면 재생보다 정지할 때 ‘귀찮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재생은 제가 무언가를 듣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상황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에서 재생을 누르든, 시리를 호출해서 명령하든 귀찮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지’가 필요한 상황은 급하게 등장합니다. 누가 갑자기 저를 부르거나, 갑작스럽게 누군가를 만나면 급한 정지가 필요합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돌발적으로 정지해야 할 때가 생기는 거죠. 이때는 정지를 위해 가방 속 스마트폰을 찾아 정지를 누르는 것도, 시리를 불러 “노래 멈춰줘” 하는 것도 불가능하거나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시리는 쉽게 ‘정지’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한쪽이라도 귀에서 빼면 ‘정지’가 되도록 했습니다. 대신 두 쪽을 귀에 꽂을 때는 자동으로 이전에 듣던 것을 자동으로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 상태로 대기시켜 둡니다. 사용자가 돌발적으로 처할 수 있는 상황과 무언가를 들을 준비가 완벽히 갖춰져 있는 상황을 UX적으로 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기존 블루투스 이어폰의 문제는 배터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과 별도의 케이스가 없어 가방 안에서 뒹굴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에어팟은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해줍니다. 우선 케이스이자 충전기 역할까지 하는 본체가 있어 가방 안에서 뒹굴 걱정도, 배터리가 없어 무용지물 이어폰이 되는 것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15분만 충전해도 3시간 사용이 가능하니 배터리가 없어도 조금만 충전하면 바로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블루투스 이어폰은 충전이라도 깜빡하고 해놓지 않으면 출퇴근 내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기존의 불편한 점을 잘 해결해주었습니다.
단점도 물론 있습니다. 첫째는 노이즈 캔슬링이 안 된다는 점. 그래서 지하철과 같이 열차 소음이 심한 경우에는 듣던 음악과 팟캐스트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주변 소음 차단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은 생각보다 큰 단점입니다. 주변 소음이 심할 때는 볼륨을 높였다가 소음이 줄어들면 볼륨도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어서 가장 큰 단점은 볼륨 조절을 에어팟으로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시리를 호출한 뒤 “볼륨 줄여줘” “볼륨 높여줘” 말하면 됩니다. 사람 많은 곳이라면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해야 하죠. 그래서 결국 휴대폰을 꺼내서 볼륨 버튼을 조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에어팟 표면으로 위로 슬라이드하면 볼륨업, 아래로 슬라이드하면 볼륨다운 할 수 있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볼륨 조절과 관련된 사용성은 최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안 그래도 비싼 에어팟에 이 기능이 있었다면 더 비싸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3개월간 에어팟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사용하면서 느낀 점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았습니다. 확실한 건 에어팟과 점점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듣는 콘텐츠’를 호출해 듣는 경험이 늘어났습니다. 기존에는 시리가 스마트폰 본체를 활용해야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에어팟이라는 ‘브릿지’가 생겨 편하게 이용하면서 더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똑똑한 이어폰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제는 없으면 아쉬울 기기가 바로 에어팟입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