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호기심
애플의 가격은 악명 높다. 거의 90만 원에 달하는 네 개짜리 컴퓨터 본체용 바퀴부터 최근에는 2만 5,000원짜리 액정 닦는 천 쪼가리도 팔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비싼 제품들도 있지만 어차피 이런 제품 들은 감히 사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아서인지 비싸긴 해도 그렇게 와닿진 않았다.
그러나 이 제품은 다르게 다가왔다. 아이패드 키보드, 이전에도 있었고 다른 업체에서도 수없이 만들어온 꽤나 친숙한 카테고리에서 무려 44만 원 찌리 제품이 나왔으니 말이다. 정확히 보급형 아이패드 가격과 동일한 키보드라니! 약간의 관심은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먼저 써본 리뷰어들은 가성비가 나쁘다, 무겁다, 각도 조절이 제한적이다, 오염이 잘된다 등 호평보다 혹평을 줄줄이 내놓았다.
그렇게 이 제품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라졌으나… 지금, 바로 그 제품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약간의 관심은 역시나 무섭다… 언제 크게 자랄지 모른다.) 구매한 동기는 딱 한 가지였다.
정말 이것과 함께 아이패드를 쓰면 그렇게 떠들어대던 노트북스러울까?
What’s a computer?
요즘은 좀 덜하지만 2017년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을 출시할 때부터 애플은 프로를 위한 이 조합이 컴퓨터(노트북)를 대체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져왔다.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던 이 메시지 덕분에 그동안 여러 가지 제품을 사 왔던 거 같다.
여러 가지 형태의 키보드, 애플 펜슬, 짝퉁 펜슬 등… 노트북을 대체하고, 수첩을 대체할 수 있는 스마트한 삶을 기대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아이패드는 절대 노트북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이 제품은 또 다른 호기심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바로 터치패드가 달려있다는 점! 기존의 키보드 케이스, 키보드 제품들은 터치패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신나게 키보드를 치다가도 포인터를 옮겨야 하는 작업에서는 무조건 화면을 터치해야 하는데 이게 너무나 어색하고 거슬렸다.
마치 터치가 지원되는 윈도 노트북에서 터치 기능을 잘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키보드가 터치패드와 가깝게 위치한다는 건 간단한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런 터치패드, 거기다 애플이 만들었다니 호기심은 날로 커져만 갔고 도저히 새 제품을 제 돈 주고 살 용기가 없어 상태 좋은 중고를 업어왔다. (중고라 해도 26만 원이나 하다니…)
얻은 것, 잃은 것
역시 애플 제품답게 전체적인 마감, 키보드의 놀림, 무엇보다 트랙패드의 사용감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포인터 이동 시 클릭이 가능한 요소에 찰싹 달라붙는 효과는 지금까지의 마우스 경험과 분명 달랐다. 데이터 통신이 안 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나마 충전이라도 가능한 별도의 usb-c 포트도 얻은 것 중 하나다.
자, 그럼 얻은 것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잃은 것을 이야기해보자. 첫 번째는 무게다. 사용 중인 아이패드 12.9인치에 이 키보드를 결합하면 총무게는 1.36kg, 맥북 에어보다도 무겁게 된다. 가끔 출근 시 내가 아이패드를 넣어놨는지 맥북을 넣어놨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두 번째는 가격이다. 이 구성을 위해 지출한 금액을 계산해보니, 모두 중고를 구했음에도 신품 맥북 에어 기본형을 살 수 있는 가격이 되어버렸다. 이쯤 되니 정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결국은 대체하지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조합은 결국 노트북을 대체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운영체제의 다름에서 오는 앱 사용의 제한이다. 피그마, 에펙, 프리미어, 포토샵, 일러스트 등 내가 주로 업무에 사용하는 툴은 결론적으로 아이패드에서 똑같이 사용할 수 없다.
그나마 루마 퓨전을 꾸역꾸역 구매해서 지금은 영상 편집용 머신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운영체제의 다름, 사실 여기서부터 내 기대는 어긋난 것이었다.
물리적인 한계도 분명 존재했다. 12.9인치가 태블릿에서는 가장 큰 사이즈이지만 노트북 기준으로는 작은 편에 속한다. 매직 키보드에 부착하고 사용할 때와, 분리한 후 태블릿만 사용할 때 체감되는 사이즈도 달랐다. (디스플레이와의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계기) 애초에 업무에 주로 사용했던 15인치, 16인치의 경험을 만들기는 역부족이었다.
마케팅에 홀린 게 잘못이네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한 매직 키보드. 노트북을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결론은 사실 구매 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패드 프로 1세대에 키보드 케이스를 쓸 때도, 아이패드 미니에 미니 키보드를 쓸 때도, 애플 펜슬을 쓸 때도 내 결론은 항상 같았다. 아직은 노트북을 대체할 순 없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노트북이 아이패드를 대체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세상 그 어떤 노트북 제조사도 아이패드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고, 둘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애플의 마케팅 메시지에 홀린 나 자신이 잘못이었다. (이제 정말 여기서 끝내자.)
원문: NEOSIGN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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