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할 일이 참 많다. 누군가에게 나의 능력을 어필함에 있어서, 발표만큼 심플한 것이 없다. 아무리 능력 있는 브로커가 귀인을 소개해준다고 하더라도, 발표를 망치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업은 발표에 의해서 사업수행자가 결정되며, 정치의 경우에도 후보자가 얼마나 멋진 공약을 ‘발표’하는지에 따라서 유권자들이 영향을 받는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서 오프라인 발표가 많이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발표는 중요하며, 발표에 의해서 많은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정부 지원 사업을 하나 진행하고자 하더라도 제안발표(입찰), 착수발표, 중간발표, 최종발표 등. 하나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네 번이나 발표해야 한다.
사실 정부 지원 사업이나 정부에서 주관하는 연구 과제의 경우에는 정해진 양식과 절차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입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민간에서 발표하는 것 이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1. 발표자료를 잘 만들자.
발표를 잘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기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글 「발표자료 작성 시 유의사항 10가지」을 참고하면 좋다.
2. 청중을 분석하자.
청중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발표 내용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발표를 하는 경우에는 전문용어를 거의 사용해서는 안 된다. 쉬운 용어로 설명해도 상대방은 어렵다. 특히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발표 현장에서 대문자 약어로 구성된 단어들을 남발할 경우, 집중도가 떨어지며 발표 결과는 아주 안 좋을 것이다. 해결 방법보다는 문제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공감대를 끌어낸 후, ‘나만의 해결 방법’을 강조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편, 상대방이 전문가들인 경우에는 전문용어를 유창하게 사용해주는 게 좋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자랑하기 위한 용어들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약간의 용어상 실수로 인해서 고고한 심사위원들을 분노에 빠지게 할 수 있으니, 아주 정확한 용어의 사용이 권장된다. 또한 ‘잘 아시다시피’ ‘최근 이 분야의 트렌드에 따르면’이라는 두 가지 ‘마법의 단어’를 적절히 사용하면, 전문성 높은 청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청중이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고 발표에 임하는 것은 상대가 기병인지, 보병인지, 포병인지에 대한 분석 없이 전쟁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용감한 초임 병사와 같은 것이다. 상대방을 분석하고 전술을 수행하자.
3. 청중을 무시하자.
위 2번과 완전히 반대되는 말같이 들리지만, 사실 목적이 다른 문장이다. 대부분의 이공계열 발표자들은 발표에 자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 10개 이상의 눈동자들이 자신을 향하고 있으면, 심장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겁먹지 말자. 일단 무대에 오른 이상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
청중들은 당신보다 전문성이 없으며, 아무리 교수들이 당신 앞에 잔뜩 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업, 이 정책, 이 제안에 관해서는 당신이 최고의 전문가라고 생각하자. (물론 그 정도로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프레젠터를 잡지 않아야 한다.) 청중 속에 당신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앉아 있을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청중을 무시하라. 어차피 마이크는 당신의 손안에 있고, 발표 시간은 온전히 ‘당신의 시간’이다.
락스타가 된 것처럼 일단 당신의 시간을 즐기고, 목사가 된 것처럼 당신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라. 눈앞에 몇천 명이 있더라도 그들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발표에 집중한다면, 분명 청중은 열광할 것이다.
4. 작은 몸짓에도 정성을 기울이자.
웃으면서 입장해야 한다. 입장하면서 심사위원과 눈을 마주치면서 들어가야 한다. 심사를 자주 하다 보니 심사위원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인데, 발표장에 들어서는 발표자의 얼굴 표정만 봐도 저 발표자가 잘하겠구나, 못하겠구나 알 수 있다고 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발표장에 입장하면서 죽을상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 저분이 뭔가 문제가 있구나’라는 아우라가 눈에 확연하게 보인다.
복장은 충분히 패셔너블 해야 한다. 너무 튀지는 않더라도, 앞서 발표한 팀들에 비해서 뭔가 다른 식별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목소리는 자신만만하되, 너무 허풍스럽지 않아야 한다. 간혹 지나친 자신감으로 프레젠터(레이저 포인터)를 빙빙 돌려서 청중들의 집중력을 저해하거나, 자만에 가까운 포즈(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짝다리+다리 떨기…)를 시전해주시는 발표자도 있는데 듣는 사람으로서는 참 괴로운 시간이 될 수 있다(물론 내용이 감동적이라면 이러한 것들을 다 뛰어넘지만).
‘어…’ ‘저…’ ‘이게…’ 등의 언어는 발표자가 확신이 없음을 대변해주는 느낌을 주며, 이러한 행동은 청중을 졸음의 계곡으로 인도한다. 본 발표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예행연습을 하면서 동영상으로 담고, 동료들에게 링크로 보내 지적을 받고 잘못된 몸짓은 수정하는 것이 필수다.
유메디 하원범 대표님의 발표 동영상. 처음 한 것 치고는 굿.
5. 질의응답 대응이 중요하다.
어떤 심사위원은 “이미 정해진 발표 부분보다는 질의응답을 통한 선발이 낫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로, 질의응답이 중요하다. 발표는 발표자들에게 동일한 시간이 주어지며, 대부분 연습을 하고 오기 때문에 정형적이다. 하지만 질의응답 시간에는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며 심사위원의 다양한 관점의 질문이 발표자를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많기에, 발표 시간보다 오히려 중요하다고 봐도 좋을 때가 많다.
발표자는 최선을 다해서 질문리스트를 뽑아서 준비해야 하지만, 현장에서의 질문들은 그 리스트를 피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상당하다. 따라서 발표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나왔을 경우, 다시 질문을 해보면서 시간을 버는 게 좋다. 질문하는 사람이 발표 내용을 잘못 파악하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이 필수이며, 상호 오해에 의한 굉장히 슬픈 일이 현실에서는 자주 일어나므로 질문에 대한 재질문은 여유를 갖고 반드시 해야 한다.
또 모르는 부분은 솔직히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걸 권장한다. 괜히 모르는 분야를 아는 척 이야기했다가 오히려 점수가 깎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차라리 부족한 부분은 부족함을 시인하고, 심사위원에게 해당 부분을 준비해오겠다고 하는 게 솔직하고 인간적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항상 ‘자기 경험’에 기반해서 진솔하게 하는 게 중요하며, 어설프게 인터넷 통계를 인용했다가는 심사위원과 논쟁이 붙을 수 있다. 지난 10년간 발표평가자로 참여해왔지만, 심사위원과 논쟁하는 발표자 치고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를 보지 못했다.
마치며
발표는 종합예술이다. 시나리오도 좋아야 하고, 주연배우도 자신감이 넘쳐야 하며, 작은 몸짓 하나하나 혼이 담긴 연기를 해야 한다.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피드백을 어떻게 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이제 연말이 되면서 발표할 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멋진 발표를 통해서 당신의 사업에 대한 진정성이 상대방에게 잘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원문: 엄정한 변리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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