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런 거야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삐쩍 마른 몸은 어른들이 보기에 어지간히 기이했나 보다. 게다가 온통 뜨겁고 매운 반찬투성이인 밥상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맨밥에 물 말아 맵지 않은 나물이나 김에만 먹는 어린아이는 좋은 지적 대상이었을 것이다. 안 맵고 짭조름한 과자는 내 입맛에 꼭 맞았기에 과자를 물고 살았고 밥상에서 시작한 잔소리는 과자를 먹는 동안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편식하니까 살이 안 찌지.
그렇게 군것질만 하니까 살이 안 찌지.
무엇을 먹든 안 먹든 잔소리는 꼭 곁들여야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어른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는 시작 전부터 불편하게 느껴진다. 다만 조금 나아진 게 있다면 그 잔소리가 정말 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편식하니까 살이 찌지.
그렇게 군것질만 하니까 살이 찌지.
같은 명제에 다른 결론. 나에게 “그러니까 살이 안 찌지”라고 언급됐던 근거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살이 찌는” 이유가 되었다. 심지어 비만도 아니었고 보기에 따라 통통한 체형도 아니었던 사람들에게 향했다. 그저 다이어트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살이 어쩌고”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건 그 이후부터였다.
조언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그런 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상관없었다. 그저 살이 쪘네, 안 쪘네 이런 말을 하기 위해 그 앞에 이유는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되는 것이었다. 정말 누군가의 문제 있는 식습관이나 생활 태도에 진실한 조언을 하기보다는, 그저 체형을 지적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당신은 당신 빼고 모두가 비정상인 사람
키 크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
내 또래의 키 큰 여자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말이다. 놀랍게도 한국 여자 평균 키인 내 친구는 정확히 그 반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남자들은 키 작은 여자 안 좋아해.
당시에는 그저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하는 부족한 인간들이다 생각하고 멀리했는데, 이것이 후려치기라는 개념이 퍼진 것은 1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세상에 보통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 보통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 여성 평균 키가 160이라고 하면, 160.1이 큰 키이고 보통 키가 아니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내 주변 여성들의 키가 대부분 160 이하라면 158도 그 사이에서는 보통 키가 된다.
평균은 보통이 아니며 보통은 일반적인 것과도 의미가 다르다. 대부분 보통을 “내가 익숙한 수준”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너무나도 무례해서 자신에게 익숙한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그것을 마치 조언인 양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저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해야 할 말과 하면 안 되는 말과 안 하면 좋을 말을 구분할 줄 모르고, 다양한 모습의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아예 모른 채 자신의 눈에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키가 작거나 크면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던지는 것이다. 정작 본인도 누군가에게는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할 텐데 말이다.
언제쯤 시대가 바뀔까
분명 어떤 기준에서는 건강상 신경을 써야 할 만큼 말랐거나 뚱뚱하거나 너무 작거나 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명확한 근거가 있는 조언이 아니고서야 그냥 기분 나쁜 지적질일 뿐이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그저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의 찌꺼기인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서 외모에 대한 언급은 예의가 아니라는 개념이 퍼졌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인터넷 댓글 창에 남녀 서로 비하하면서 ‘키 작고 뚱뚱할 것이다’라는 것을 공격으로 사용하는 것이 흔히 보인다. 키가 작고 뚱뚱한 것이 상대방을 향한 비하로 쓴다는 것은 그것이 안 좋은 모습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댓글을 주로 20–30대가 쓴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에게 외모 지적을 했던 기존 세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라 눈에 보이는 것을 먼저 인식할 수밖에 없다지만, 또 생각을 하고 시대에 맞는 예의라는 것을 갖출 줄 아는 이성적 사회적 동물이기에, 외모에 대해서 어떤 기준을 세우는 것은 무례하다는 개념을 확실하게 갖출 수도 있다.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해서 고정화하기 전에 멈출 수 있는 지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눈앞의 사람의 외모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것 이상으로 그 외모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어떤 외모도 단점이 되지 않는 세상은 너무나도 이상적이어서 비현실적이지만 원래 목표란 그렇게 이상적인 것이지 않은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누군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때 외에는 그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혹시 가능하다면 식습관이나 입맛에 대해서도, 본인이 양육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조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덧붙여본다.
원문: 돈냥이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