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스포테이너(스포츠 스타+엔터테이너) 전성시대입니다. 요즘 은퇴한 스포츠 스타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습니다. 아주 익숙한 얼굴이지만 그라운드나 코트에서 볼 수 없었던 허당기 넘치는 모습에서 친근함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평입니다. 평범한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와 별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이들을 호감 가득한 눈길로 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특정 집단에 대한 느낌을 본능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정치인, 교수, 유치원 교사, 일본인, 동성애자, 무속인 등등 우리가 어떤 이름을 붙이던 각각의 집단에 대한 느낌은 자연적으로 생겨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느낌을 편견(prejudice)이라고 부르고 그 집단에 관한 구체적인 생각이나 믿음을 고정관념(stereotype)이라고 합니다.
대개 긍정적 편견을 가진 집단에는 긍정적 고정관념이 생기고, 부정적 편견을 가진 집단에는 부정적 고정관념이 듭니다. 그리고 편견에 의해 형성된 고정관념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각자도 스포츠 선수에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을 것입니다. 학창 시절 운동선수였던 친구들을 떠올려 보면 쉽습니다. 어떤 편견과 고정관념이 떠오르시나요? 만약 그 친구들에 관한 부정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떠올린 분이 있다면 지금 TV에서 활약하는 스포츠 선수들과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드셨다면 여러분이 스포츠 선수에게 가졌던 편견과 고정관념이 어느 정도 바뀐 것입니다.
편견과 그에 따른 고정관념은 매우 힘이 셉니다. 그런데 스포테이너 전성시대는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하면 편견이 바뀔 수 있을까요? 심리학으로 알아보는 일하는 마음의 작동법, 이번엔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꾸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편견은 힘이 세다
우리는 편견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편견은 어떤 대상의 고정관념을 순식간에 만들어 잘못된 판단을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편견이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일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매번 새로운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매번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면 우리는 제한된 인지적 자원을 정작 필요할 때 쓰지 못합니다. 또 위험에 대한 판단도 적절하게 못 할 수 있습니다. 맹수나 독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본능적으로 들기 때문에 인간은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고정관념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입니다.
잘 정리된 편의점이나 마트의 각 코너를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채소 코너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잘 정리된 고정관념은 우리의 생각을 줄여줘 효율적으로 행동하게 만듭니다. 사실 모든 편견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잘못된 편견이 나쁜 것입니다. 문제는 편견이 본능적이기 때문에 편견으로 형성된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간단한 실험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아래의 단어들을 차례로 보시기 바랍니다. 각각의 단어가 남자 또는 직업에 해당된다면 1번을, 여자 또는 가정과 관련된 단어라면 2번을 최대한 빠르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 홍길동
- 세탁물
- 기업가
- 박찬호
- 냉장고
- 전지현
- 정우성
- 목수
- 애널리스트
- 이나영
- 집
- 회사
- 자매
- 집안일
아주 쉽게 통과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과제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이번엔 남자 또는 가정과 관련된 단어라면 1번을, 여자 또는 직업과 관련된 단어라면 2번을 역시 최대한 빠르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이전 과제와 바뀐 점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남자 또는 가정이 1번, 여자 또는 직업이 2번입니다.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 아기
- 이승엽
- 상인
- 고용
- 존
- 회계사
- 메리
- 가사
- 조부모
- 사무실
- 사촌
- 집
- 회사
어떠셨나요? 처음 과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수나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나요? 이처럼 한 번 형성된 고정관념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분노나 불안 같은 각성이 높은 부정적 감정 상태나 시간의 압박 등으로 인지적으로 부담스러운 환경에서 고정관념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됩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화가 나 있는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종용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면접관인데 10명의 지원자를 단 15분 만에 검토해야 한다면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인지적 자원이 줄어들기 때문에 고정관념은 더 강해집니다. 인지적으로 압박을 받는 환경에서는 지원자 개인의 독특한 장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외모, 출신학교, 전공, 성적과 같은 고정관념을 유발하기 쉬운 요인에 매우 쉽게 휘둘리게 됩니다.
편견을 바꾸는 방법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편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대상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접촉만으로도 편견을 줄일 수 있습니다. 편견은 기본적으로 내가 속한 집단과 대상이 속한 집단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데, 잦은 접촉은 그 대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느낄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대상에게 익숙한 장소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접촉한다면 효과는 더 커집니다. 스포츠 선수를 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주 보는 것만으로 편견은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경기장이라 하더라도 야구 선수나 유도, 격투기 선수를 축구 경기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편견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따라서 어떤 대상에 대해 고정관념이 있다면 그 사람 하면 딱 떠오르는 익숙한 장소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접촉하는 빈도를 높여야 합니다. 회사 임원들을 임원실이나 사내 회의 장소, 식당 등에서 보면서 그 임원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접촉은 개인 차원에서 일어날 때 더욱 효과적입니다. 911 이후 미국인들의 이슬람교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Gallup의 조사에 따르면 이슬람교인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미국 10대 청소년들은 대부분의 이슬람교인이 평화를 원하며 다른 종교인을 수용한다는 사실을 믿을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집단과 집단의 만남으로 편견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접촉 빈도가 높을 때만 가능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 대한 편견을 줄이려고 시도한다면, 정치인이나 행정 관료들의 노력으로 편견이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민간차원에서 개인적 교류를 높이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시도입니다. 도시와 도시 간의 자매결연은 예산만 낭비할 뿐이겠지만 BTS의 ARMY들이 나서 BTS를 매개로 교류의 빈도를 높인다면 양국은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편견을 줄이는 또 다른 방법은 편견으로 얻을 수 있는 목표를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집단에 편견을 갖는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자신의 호의적인 평가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대상을 깎아내리는 생각이나 표현을 한다면 그 집단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자신을 높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의 스티븐 스펜서(Steven Spencer) 교수 등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깎아내리는 경향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이 했던 실험을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수정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구직자를 평가하는 면접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앞에는 2명의 구직자가 있습니다. 2명의 국적은 모두 한국입니다. 한 명은 미국에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냈고 또 다른 한 명은 캄보디아에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편견 없이 이들을 평가해야 합니다. 이 실험에서 사실 두 사람의 이력서 내용상 큰 차이가 없었고 편견 없이 평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음에도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미국보다는 캄보디아에서 온 구직자에게 상대적으로 덜 호의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일부에게 구직자들을 평가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면접관으로서 적합한 장점을 쓰게 하자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이뤄진 상태에서는 다른 대상에 대해 부정적 편견과 고정관념이 줄어든 것입니다.
스포츠 스타가 친숙해진 이유는 그들이 TV에서 왕년의 영광과 위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이 듭니다. 스포테이너들은 이 원리를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가 공정할수록 사람들은 더 관대해지고 편견을 덜 형성합니다. 조직 내 서로 다른 부서원에 대해 부정적 편견이 만연한 조직이라면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구조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땅히 보상받을 사람이 보상을 받고, 승진해야 할 사람이 승진하는 공정한 제도에서 편견이 있을 자리는 없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시스템이 있는 국가는 외부에 대한 편견이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어떤 여행지에서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 외부 사람에게 관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공정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나 지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포츠 스타의 편견이 없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사람들이 해당 영역에서 그 위치까지 오르기 위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래서 인기를 얻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편견이 없는 조직을 위해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호기심이 필요합니다. 편견의 상당 부분은 무지에서 나옵니다. 대상에 관한 호기심을 갖는 것만으로 편견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호기심은 강한 부정 정서 상태에서는 유발되지 않습니다. 스포츠 스타가 TV에 나올 때,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는 즐겁습니다. 그리고 왜 이 사람이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했는지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깁니다.
만약 여러분이 조직 내 다른 구성원에게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여러분 스스로 여유가 없고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시라도 여유를 챙긴 다음에 상대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접촉의 기회는 나와 대상에게 익숙한 공간이 아닌 다른 장소라면 더 효과적입니다. 집단과 집단의 만남보다는 집단 내에서 개인적 접촉을 만들면서 나와 상대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품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공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구성원 각자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공정한 사회나 조직은 거저 얻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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