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 대한 인정 vs. 존경
이전 직장에서 업무상 꽤 오래 다닌 덕(?)에 대략 많은 임원과 팀장급 리더, 그리고 그 조직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이의 장점은 같은 리더임에도 상사, 구성원, 동료 리더의 조합이 어떻게 바뀌냐에 따라 그들의 미묘한 커뮤니케이션 방식, 리더십, 성과에도 차이가 나더라는 걸 생생히 볼 수 있다는 거.
그 과정에서 딱 꼬집어 설명하기엔 막연하고 모호하면서도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었는데 ‘인정하지만 존경하진 않는다’는 거. 많이 인정하고 대단한 건 알겠는데 존경까진… 같은? 이하, 편의상 ‘인정리더’와 ‘존경리더’로 부르겠다.
인정리더의 특성
누구보다 노력하고, 높은 성과를 냈고, 롤모델로 따르며 힘들어도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성격도 아무리 친해 봐야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는 사회생활에선 모날 것 없어 좋아하는 이들도 많고. 까칠하고 단점도 많지만 열심이고 잘한다는 평가가 대부분인 사람. 게다가 다양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가지고 교류하며 열심히 배운다.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려 하고 실제로도 정체되진 않는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보통은 이들이 가진 과거의 경험치가 어지간해선 어느 조직이든 들어맞기 때문에 경험치의 양과 수준이 월등한 이들에게 업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문제나 일방적 추진에 이견을 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능, 전문성이 절대적인 직군의 리더일수록 더욱.
왜 존경은 아니냐
인정리더는 사람들을 확연하게 구분 지어 판단한다. 내가 인정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내가 인정하는 사람이 인정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런데 모르는 걸 ‘모른다’가 아니라 ‘별로’라고 한다. 흑백논리나 편협성이다. 이들에겐 한번 찍히면 쭉 간다. 마음에 들어도 쭉 간다, 비위를 거스르기 전까진. 그게 이들의 눈을 가린다. 전자를 칭찬하거나 후자를 비판하면 대화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말이 있다. ‘How’를 묻는 이들에게 매우 관대하지만 ‘why’를 묻는 이에겐 가혹한 리더. 이런 성향은 순간순간 드러난다. 이들이 제대로 혹독한 피드백을 들을 일이 별로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데, 실무자일 땐 리더 입장에서 훌륭한 오른팔이 되어주었을 것이고, 리더가 된 후엔 나를 따르라며 조직과 구성원을 끌고 가는 편이기에 그렇다.
할 말을 할 때, 성과를 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 할 때 수긍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자기 생각에 반하는 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남의 의견이나 의문을 차단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난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도 듣는데?”라 해도 잘 생각해 보자. 어딜 가도 늘 발언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그게 다 필요한 말이었더라도 말이다)
이 정도 포지션에 오를 정도면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에도 꽤나 능숙해 스스로 “나도 알아”하는 수준보다 자기인식을 더 깊이 하긴 어려워진다. 게다가 오랜 기간 함께 하는 이들도 이 문제를 딱히 인식하기 어렵다.
딱히 문제없이 성과를 내는데, 문제인가?
문제다. 적어도 내가 보아온 바로는 그렇다. 이들이 특유의 리더십과 실력으로 조직을 장악하기 때문인데 그가 없을 때 조직이 급격히 무너지거나 흔들리기 쉬워 그렇다. 이런 리더가 있는 조직은 중간 리더 육성은 된다. 그러나 이들만큼의 영향력을 갖거나 그 영향력을 가질 만큼의 훈련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지간한 문제도 직접, 갈등의 방패막이도 직접, 기본 골격도 직접…
다 자기 손을 타서 가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가 많아, 분명 구성원 실력이 일취월장함에도 이 모든 성과 퍼즐이 그가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리는 걸 완성해줄 완벽한 실행팀을 만드는 거. 그래서 이런 임원 밑에 있는 조직 팀장들은 꽤 일을 잘한다 해도 임원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누구누구의 키즈(kids)가 남을 뿐.
그렇다면 인정리더를 계속 리텐션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것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게, 조직이 성과를 내긴 하지만 정체가 된다. 팀장들도 PL들도 그냥 그 임원 아래, 그 조직 내에서 평가 잘 받는 리더로 말이다. 스타트업이야 구직시장이 워낙 열려 있고 기회가 많아 잘들 옮겨 간다지만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중소기업만 되어도 고인물 되기 십상이다.
인성, 인격적 성숙도가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좋은 선배, 좋은 성과, 배울 게 많고 같이 일하고 싶은 리더이긴 한데 감정 성숙도나 열린사고의 정도는 좀 낮은 경우. 이건 품성과 성격의 좋고 나쁨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얘기. 역시나 꽤 높은 인정과 호감-존경을 구분하는 경계가 미묘해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존경리더가 있는 조직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그 조직은 다닐 가치가 충분하더라.
결정적 차이
또 하나 굳이 구분해 보자면. 인정리더는 과거의 경험과 학습으로 어딜 가든 성과를 내고 조금씩 더 경험치를 쌓아가는데, 존경리더는 그걸 넘어선다. 인정리더는 조직만 옮겨 갈 뿐 과거 자료와 방식을 그대로 옮겨 심는다. 그 노하우를 사는 게 경력직 채용이라지만 결은 좀 다르다. 일종의 자기 복제.
반면 존경리더는 ‘경험과 실력’이 성장하는 걸 넘어 인사이트 자체가 다르거나 방법이 진화한다. 또 과거에 이건 괜찮았는데, “뭐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를 먼저 묻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들은 성격이 특이하거나 공감받기 좀 어렵더라도 이 모든 걸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탁월함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정과 존경의 경계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것은 ‘탁월하게 성장하는 사람인가’와 ‘탁월하게 성장시키는 사람인가’ 같더라는. 애초에 누가 봐도 성과 잘 내고 배우는 건 있어서, 아니꼽고 더러워도 같이 일은 할 만한 인격하자성 리더는 오히려 괜찮다. 뻔히 드러나기 때문에. 이들이 리더인 건 리더 자체보다 그들을 알고도 묵과하는 조직의 문제다.
리더십 세션을 운영하다 보면 “제발 느끼고 개선해!” 하고 싶은 리더들은 자긴 잘한다고 남 가르치다 간다. 되려 잘하고 있는 리더들이 매번 자기인식을 다시 하고 개선한다. 그래서 리더십 교육이 효과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원문: Lotus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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