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소니는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특징을 잘 나타내 줍니다.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소니와, 승산이 없다면 판 자체를 바꾸는 삼성. 두 나라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기업이죠. 작년 이맘때 정도엔가 비슷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소니는 이미지센서를 만들 때 기본기에 집중합니다. 주어진 틀을 크게 바꾸지 않고 기본기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합니다.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얼마나 잘 바꿀 수 있는지에 집중합니다. 이 영역에서는 소니가 독보적이고, 삼성전자는 손쉽게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큽니다.
삼성전자는 이미지센서를 만들 때 주어진 판을 바꿉니다. 현재의 틀에서는 당연히 소니가 잘 하기 때문에, 결과물(=목표)을 잘 낼 수 있는 방식이라면 뭐든 시도합니다. 15여 년 즈음 전의 소니는 이미지센서에 미세공정을 일부러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공정 미세화가 되면 화소는 높아져도 화소당 화질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주어진 선로 폭 내에서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소니와는 달리 삼성전자는 판을 흔듭니다. 소니의 패러다임에선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승산이 없겠죠. 그래서 소니의 패러다임을 깨고 미세공정을 도입해서, 화소당 화질에선 손실이 있더라도 사진 전체의 정보량을 높이는 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사진을 같은 크기로 놓고 보았을 때의 화질은 개선이 된 거죠. 비록 화소당 화질은 떨어졌다 하더라도요. 이미지센서에는 미세공정을 쓰지 않는다는 소니의 패러다임을 깬 것입니다.
그 이후 소니도 방향을 바꿔서 더 미세한 공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와 소니의 이미지센서 싸움은 꽤 오래 전부터 지속해왔고, 이제는 삼성전자가 소니의 자리를 충분히 넘볼 수 있는 단계까지 온 것 같습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주어진 자원, 특히 팹을 레버리지 삼아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이미지센서에 더 많은 메모리를 붙이고 더 빠른 프로세서를 붙여서 픽셀 비닝(=여러 화소를 하나로 묶어서 처리하는 기술)으로 효율을 높이고, 이미지센서 자체적으로 화질 보정도 훨씬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소니가 보면 이 무슨 근본 없는 짓이냐고 할 수 있습니다. 소니는 최대한 정석으로 접근하거든요. 하지만 비즈니스에선 접근법만큼 결과물도 중요합니다. 삼성처럼 판을 흔들며 접근하면 좋은 논문을 쓸 순 없어도(실제로 소니는 이미지센서에서 좋은 논문을 많이 쓰지만,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좋은 비즈니스는 해낼 수 있습니다.
소니도 물론 픽셀 비닝과 이미지센서 자체적인 후처리 강화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팹을 가진 삼성에 비견할 수준은 아닙니다. 미래의 로드맵을 보더라도 팹을 레버리지 삼는 수준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지금의 소니는 이미지센서 시장의 독보적 1위 기업이지만, 이 자리가 마냥 따뜻해 보이진 않습니다. 메인스트림-하이엔드급 센서 시장의 퀄리티에서 삼성에 역전되는 순간, 점유율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소니의 점유율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몫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본식 접근법과, 판 자체를 흔들어버리는 한국식 접근법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소니와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 시장 싸움을 바라보며 관전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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