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청소기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바람에 청소기에 달린 바퀴에 고생의 흔적이 눈에 띌 정도였다. 그동안 220V 전기 콘센트에 구속받았던 이 녀석에게 자유를 주고자 무선 청소기를 하나 구매했다. 몇 년 전이었던가? 블랙프라이데이에 아마존 해외 직구로 거금을 쏟아부어 다이슨(Dyson) 청소기를 배송받았다. 그리 크지 않음에도 강력한 흡입력과 적당한 소음, 무엇보다 깔끔한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는 다이슨과 함께한다.
다이슨은 무선 청소기와 더불어 헤어드라이어와 공기청정기 등을 만드는 영국의 가전제품 제조사다. 가전제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단 디자인부터 구매욕을 불러일으킨다. 유려하고 매끄러우며 말 그대로 ‘엣지’가 있다. 헤어드라이어의 가격만 무려 30만 원이 넘는데, 다른 제품들 역시 쉽게 들이기엔 확실히 부담스러운 가격대를 형성한다.
독일이나 미국에서는 한국에 비해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이 떨어지는 터라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평가가 한참 동안 돌기도 했다. 오히려 중국 ‘차이슨’의 가성비가 월등하다는 말이 있으니 다이슨에는 분명히 치명적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딱히 불만도 없고 성능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이긴 했지만 높은 가격대가 흠이라면 흠이겠다. 이 정도 가격이라면 일렉트로룩스를 포함해 LG나 삼성의 기술력과 가성비도 충분히 훌륭할 듯하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차이슨은 중국 디베아(Dibea)에서 만든 제품으로, 다이슨과 외형이 유사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중국의 ‘China’와 영국의 ‘Dyson’을 합성한 말로 디베아라는 기업 이름보다 차이슨으로 굳어진 상태다.
‘진짜’ 다이슨을 잠깐 살펴보자. 다이슨은 왕립예술대학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수석 엔지니어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이 1993년 설립한 기업으로 현재는 영국에 본사를 두었다. 2021년 싱가포르(Singapore)로 헤드 오피스를 옮긴다고 한다. 날개가 없는 선풍기나 공기청정기 그리고 헤어드라이어의 경우 상당히 파격적이기도 했다.
헤어드라이어의 몸집은 작은 대신 ‘슈퍼소닉(SuperSonic)’이라는 키워드를 붙여 강력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위 이미지와 같이 23.75캐럿으로 금도금을 한 스페셜 제품(Real Gold version)도 있다. 가격은 56만 원. 나 개인에게 헤어드라이어를 이 가격에 구매한다는 것은 완벽한 사치다.
다이슨의 가전제품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이번에 다이슨이 가전제품이 아닌 또 다른 것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테슬라(Tesla)나 BMW, 현대자동차 등이 뽑아내는 ‘전기차’를 다이슨이 만들면 어떻게 될까?
테슬라라면 이미 전기차 분야에서 꽤 경험이 있는 곳이고 BMW나 메르세데스 벤츠 모두 자신의 라인업 내에 전기차가 반드시 존재할 만큼 더 이상 ‘차세대’ 이동수단이 아니다. 사실 전기차는 석유를 동력으로 하는 다른 자동차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기술력이 나아지는 만큼 놀라운 추진력을 보이는 케이스도 늘어나는 추세다.
BMW의 경우 자신이 제작한 전기차 ‘i8’의 성능을 무려 600마력까지 높이려는 계획도 있다고 한다. 물론 전기차가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려면 인프라도 중요하다. 에너지관리공단에서는 2030년 전기차 판매의 변곡점을 지나게 되면 2040년 약 3분의 1은 전기차가 점유하게 되리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이슨은 자동차를 양산하는 곳이 아니다. 제임스 다이슨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가전제품을 만드는 곳에서 자동차라니, 충분히 화제가 될법한 일이다.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 한번 해보자.
사실 3년 전에도 다이슨의 전기차 프로젝트가 미디어를 통해 기사화된 바 있다. 차량 개발은 물론 차량에 탑재되는 동력인 배터리를 개발하는 데 투자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의 콘셉트 이미지와 이번에 등장한 전기차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사실 콘셉트 이미지는 실제 양산과 다른 경우가 많은데, 다이슨의 전기차라면 다이슨이 만들어내는 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 등의 깔끔한 이미지와 더불어 유니크한 색감을 입힐 것 같다는 누군가의 ‘상상’에 의해 아래와 같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다이슨 전기차 프로젝트는 콘셉트 이미지와 다르게 SUV 형태로 등장했다. 전장은 무려 5미터, 차량의 무게는 2.6톤에 달한다. 5미터의 ‘전장’으로만 보면 캐딜락의 에스컬레이드나 기아차의 카니발이 각각 약 5.1미터이고 팰리세이드가 ‘밀리미터(mm)’로 봤을 때 4,980mm이니 이들과 유사하다고 보면 좋겠다.
테슬라의 모델 X 역시 5미터이고 군용 트럭의 느낌을 선사했던 테슬라의 사이버 트럭(Cyber Truck)은 대략 5.8미터에 달한다. 어차피 밀리미터 단위로 꼼꼼하게 보지 않을 테니 사이버 트럭을 제외하고 위에서 언급한 차량과 유사한 전장을 뿜어낸다고 해야겠다. 이와처럼 다이슨의 전장을 길게 뽑아낸 것은 실내를 3열로 구성할 만큼 넓고 거대한 배터리를 장착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도 작용한다.
테슬라의 모델 X는 1회 충전 시 약 438km를 달릴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사이버 트럭 라인업 중 트라이 모터(Tri Motor)를 탑재한 경우 약 804km를 주행한다고 한다. 러시아의 자동차 포털사이트인 포마카(Formacar)에서는 다이슨의 전기차가 무려 600마일(이를 km로 환산하면 965km이다)을 충전 없이 달릴 수 있다고 했다.
이 차량의 바퀴는 사진으로 봤을 때 평범해 보이지만 무려 24인치나 된다. 우리나라 도로 위를 달리던 세단의 경우 아무리 커봐야 17인치 정도였는데 어느새 18인치가 ‘안착’이 된듯한 느낌마저 든다. 팰리세이드의 경우 18인치부터 20인치까지 존재하고 람보르기니 우르스는 21인치에 달한다. 벤틀리의 SUV 벤테이가는 ‘6.0 W12’ 모델에 22인치 휠을 탑재했다. 제네시스 GV80의 경우양산형은 22인치지만 콘셉트 카는 최대 23인치까지 옵션으로 책정되어 있다.
휠이 크면 클수록 차량 유지비에도 큰 부담이 된다. 더구나 경우에 따라 안락함이 싹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외관상 차량의 거대함을 더욱 웅장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
다이슨의 전기차는 사실 제임스 다이슨의 도전이기도 하다. 가전제품 회사라고 해서 전기차에 손대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테슬라는 전기차뿐 아니라 태양 에너지 사업도 병행하고, 현대자동차그룹은 우버와 손을 잡고 항공 모빌리티를 향한 도전을 펼치는 중이다.
그런데 다이슨의 전기차 프로젝트는 현실화되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전체 프로젝트에 투자한 금액은 약 20억 파운드(약 3조 원), 전기차 제작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5억 파운드였다. 한화로 7,500억 원이나 되는 거액을 들여 시제품을 만들었고 이를 제대로 양산하게 되면 2억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야 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2021년부터 판매를 시작하고자 했지만 그 목적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프로젝트 자체를 접었다고 한다.
제작에 드는 비용, 그리고 고급 전기차 시장에서 다이슨이 살아남기엔 너무 치열해졌다. 알고 보면 BMW의 i8이 2억 원에 가까운 수준이고 메르세데스 벤츠의 EQC가 약 1억 원, 재규어의 i페이스가 약 1억 2,000만 원, 테슬라의 모델 X가 1억 4,000만 원 수준인걸 감안하면 다이슨의 전기차는 성능상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비싼 가격이다.
하지만 다이슨은 좌절하지 않았다. 전기차 프로젝트를 위해 채용했던 인력들은 또 다른 분야에 분산 배치했고 전기차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기술력을 다이슨이 가진 주력 분야에 접목하는 등 일종의 실패를 발판 삼는다. 해외 사이트에서는 ‘Failed’라는 말을 써가며 실패처럼 말하지만 다이슨은 오히려 도전이자 경험이라고 말한다.
실패와 도전, 그리고 경험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남들에게는 실패와 좌절이겠지만 도전의 가치를 알게 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원문: Pen 잡은 루이스의 브런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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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관리 해외 이슈: 2040년 전기자동차 시장 전망」, 에너지관리공단
- 「Dyson Automotive update 10th October 2019」, dyson
- 「New images of Dyson’s £500M failed electric car revealed」, trendswide, 2020.6.3.
- 「New images of Sir James Dyson’s axed £150,000 electric car revealed as Britain’s richest man admits his continued ‘interest in mobility’ despite failed project that cost £500m of his own cash」, thisismoney, 202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