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협상을 위해서는 개인의 업무 성과를 타인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만 많은 이가 협상 테이블에서 통보를 당한다. 표면상 이유는 상사에게 기가 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성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로 인해 자리 잡은 일에 대한 잘못된 태도’가 협상이 아닌 통보받는 상황을 만든다. 이걸 바로 잡으면 ‘협상의 여지’를 가질 수 있다.
연봉을 ‘협상’해본 적 있어요?
연봉 협상, 말만 하지 실상은 전혀 아니다. 회사에서 정해진 일정한 임금 테이블이 있고, 그 테이블대로 움직인다. 대리 ○○년 차 혹은 과장 ○○년 차에 따라 호봉이 올라가면 그에 맞춰 약간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전년 대비 올해의 성과를 따져보거나 혹은 내년도 성장세를 반영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상승 폭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회사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연봉 협상이라고 부르고, 통보라고 읽는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다.
첫째,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어떤 요구를 강력하게 하는 것 자체가 실례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있다. 그것도 매우 오래전부터 말이다. 심지어 그걸 반항 또는 역린이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리더가 정한 룰에 맞춰야만 조직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같은 팀(편)이라고 보지 않는다. 마치 조폭들처럼 말이다.
둘째, 윗사람을 섬겨야 하고, 그 윗사람이 이끄는 조직을 위해 희생과 헌신 등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분명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최우선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일을 하는 현장에서는 철저히 ‘나’는 배제된다. 어느덧 내가 모시는 상사와 조직을 위해 일한다. 내가 모셨던 선배들이 일은 그렇게 하는 것이라 가르쳐줬으니 나 또한 내 후배들에게 대물림한다. 오래전부터 그래 왔으니 이를 쉽게 거부할 수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그보다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충분한 경험과 그에 따른 학습을 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으면 되는데, 그럴 수가 없다. 그럴만한 눈도 없고, 그게 잘못된 것인지 이야기해주는 주변인도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이게 어디 연봉협상뿐이겠는가…라는 생각뿐이다).
협상은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용주(主)와 피고용인(人), 개인과 조직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갑을 관계’가 협상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협상 무드로 이끌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다. 일시적으로 ‘대등한 관계는 아니지만 대등한 분위기’라도 조성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걸 위해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이 ‘(개인의) 성과’이다.
- 나는 얼마나 성과를 만들어냈는가.
- 과거(작년)에 비해, 얼마나 나, 조직, 우리 비즈니스를 나아지게 했는가.
- 이를 어떤 단어와 표현을 빌어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 실제 그게 얼마나 우리와 거래를 하는 고객과의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 그걸 나 스스로 얼마나 의도했으며, 주도했는가.
위의 질문에 상대방을 이해 및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자료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걸 평소에 잘 준비하고, 갈고닦아야 하고, 그걸로 내 연봉을 높이고, 더 나아가 커리어의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일만 하느라, ‘나의 성과’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연봉을 협상할 때는 ‘성과를 들이대’야 한다. 단 성과는 명명백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조직마다, 조직이 일을 하는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다. 확실한 것은,
- 조직이 매긴 성과 체계는 개인에게 특화되어 있거나, 맞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직이 개인들을 줄 세우기 쉽게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 아무리 정해진 절차대로, 경험이 많은 이가 팀 또는 개인 단위의 MBO, OKR, KPI를 뽑는다고 해도, 한 달도 못 가서 무용지물이 된다.
- 시장과 고객의 변화가 빠르기도 하고,
- 해마다 선정 과정 및 방법을 최신화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그러다 보니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 KPI는 KPI대로 일을 하고, 회사와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일도 함께 한다. 정작 연봉 협상에 필요한 개인 입장의 준비는 꿈과 같은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의 성과를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법론
1. 나의 직무상 책임과 역할을 스스로 재-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직무는 개인이 맡고, 직무에 따라 정해진 책임과 역할(R&R)이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에 있다. 어떤 양식이든 관계없다. 거기에 나와 있는 책임과 역할이 어떤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 부분이 혹시 현재 하는 여러 업무와 큰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이 부분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럼, 책임 범주 속 주요 역할(업무)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를 실제 나의 업무에 반영해 운영하고 그 증거를 함께 남겨야 한다.
2. 주요 업무(역할) 중 조직 기준의 중요 업무를 분류해 과정과 결과를 빠짐없이 기록한다.
이른바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보면 된다. 어떤 업무를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하고, 그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중간 과정, 그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피자. ‘연대기 순으로 정렬’하는 것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도 함께 기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업무는 기간에 맞춰 분류할 수 있고, 몇 회나 진행했고, 그때마다 과정상 투입되는 여러 자원의 효율적 배치 및 배분 등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개선했고, 조직의 어떤 부분에 영향을 주었는지 정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이전시의 마케터라고 한다면, 전년도에 비해 올해는 실제 유치한 캠페인이 ○○개이고, 금액으로 환산하면 ○○○원이며, 이때 투여된 리소스(투입된 인력, 전과 달라진 기획 등)가 작년과 다르게 어떤 부분이 추가 및 개선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지원 성격 직무라고 한다면, 전년도 대비 실제 추가된 업무상의 루틴이 무엇이고 업무상 누가 어떤 식으로 주도했는지, 그 결과 얻게 된 효과, 진행 중에 발견하게 된 새로운 프로세스 등이 있다면 그걸 비교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3. 업무상 ‘목적, 목표, 성과, 성취’를 위주로 정리하고, 필요에 따라서 ‘프로세스’를 정리/정렬한다.
회사에서 하는 어떤 일이든 위의 요소에 의해 기획 및 계획되기 때문이다. 단, 처음 시작할 때와 실제 그 일을 마무리 지을 때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Gap이 얼마나 났고,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업무를 내 관점에서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4. 매회 특정 업무를 혼자 또는 함께 실행할 때마다 관리해야 하는 영역을 꾸준히 기록/관리한다.
여기서 단순 반복 업무는 제외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 업무상의 PM(PO)은 내 상사가 아니라 ‘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남의 일을 내가 대신해주거나,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다는 접근은 성과 관리의 영역을 오히려 과소하게 한다. 실제 나의 성과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을 관리 소홀로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5. 정리된 업무상 성과 및 업적을 우리 비즈니스와 연계해 어떤 부분에 직간접적 효과를 냈는지 합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직무상의 책임과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을 전년도 대비 혹은 조직 성장에 대비해 다각도로 표현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다이어그램을 포함한 타인을 이해시킬 수 있는 여러 자료를 만들어보고, 충분한 개연성(비즈니스에 만들어 낸 효과)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위와 같이 평소에 관리하는 연습이 몸에 배고, 꾸준히 특정 기록물로 관리가 되면 연봉을 협상할 수 있다. 협상 시기 또는 내 차례가 찾아오면, 테이블에 앉기 전에 협상을 하게 될 당사자에게 평소 관리하는 파일을 건네주는 것이다. 여기에 특정 기간에 해당하는 나의 성과를 요약한 내용을 함께 첨부하면 그걸로 끝이다. 더욱 강하게 나가려 한다면, 내가 원하는 연봉 상승의 협상 불가한 마지노선(“min ○○% 상승을 요구합니다”)도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그럼 실제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 협상의 무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성과를 평소 ‘스스로 관리’해 연봉도 커리어도 주도적으로
지금 이 시기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성과는 평소에 관리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의 성과를 평소에 관리하지 않는다. 이유는 많다. 1) 당장에 닥친 일을 해내야 하거나, 2) 다음에 해야 하는 일을 준비 및 대비를 해야 하거나, 3) 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거나, 4) 조직 혹은 윗사람이 알아서 해준다는 등의 갖가지 이유로 말이다.
이런 이유를 대는 이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현재의 일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 하는 일은 오래가기 어렵다. 결국에 내 일 대한 목숨(생명)이 남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굳이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도, 최선을 다할 필요도 없다. 정말 필요한 만큼 하는 것이고, 그 필요를 요구하는 누군가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만 하면 된다.
혹은 성과평가 시즌이 찾아와, ‘바짝 일을 해서 부족한 성과를 채운다’는 접근으로 일을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대부분 해낸다). 만약 실제로 쉽게 채울 수 있는 성과면 목표치를 미리 거의 채우고, 잠시 쉬거나 놀면서 늘어지다가, 평가 시즌에 가까워서 나머지를 채우면 된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와 같은 태도로 일할 바에는, 평소의 성과를 잘 관리하면서 일을 하라고 권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왜 하고, 그게 나 또는 조직에게는 각각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수시로 살피면서 말이다. 일을 하는 이유도, 그 이유를 지속적으로 ‘다르게 갖기 위해’ 평소의 성과를 관리하는 것이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가 남에게 이야기하기 편한 겉치레가 되지 않도록 ‘내가 관리’하는 것이다. 그 생각과 태도가 결국 ‘성장하는 커리어‘를 만들 수 있게 한다.
일이 재밌으려면, 일 속의 재미를 찾아야 하고,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중에 가장 쉬운 것이 연봉이다. 평소의 아주 간단한 노력이 내 연봉을 높이는데 아주 유효한 역할을 한다면, 그걸로 일의 재미는 올라간다. 또한, 위의 노력은 연봉뿐 아니라,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내 나름대로 일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간편한 의식’이 내 업무를 객관화해 연봉 협상도 준비하고, 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문: 이직스쿨 김영학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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