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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셔터를 내리는 말, ‘아니’

2021년 9월 14일 by 호사

티키타카(Tiqui-taca). 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의미로 축구에서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뜻하는 단어로 널리 알려졌다. 이제 ‘티키타카’는 축구를 넘어 일반적으로도 흔하게 쓰는 말이 됐다. 서로 간의 합이 중요한 부분으로 요즘은 합이 잘 맞는 대화와 만남을 두고 ‘티키타카가 잘된다’고 표현한다.

수다 떨기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티키타카가 잘 되는 대화는 신호 하나 걸리지 않고 자유롭게 달리는 드라이브를 하는 것처럼 최고의 쾌감을 선물한다. ‘아’하면 ‘어’하고, ‘쿵’하면 ‘ 짝’하고 토스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다.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마르지 않는 샘처럼 쉼 없이 수다를 떨다가도 특정 단어로 시작되는 문장이 펼쳐지면, 수다의 의욕이 짜게 식어 버린다.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의 셔터가 드르륵 내려가게 만드는 문제적 단어는 바로 ‘아니’. 온라인에서 한국인의 4대 문장 시작 요소(아니, 근데, 진짜, 시X)를 본 후 ‘아니’의 존재감이 새삼 더 크게 다가왔다.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단어 ‘아니’와 마주할 때면 지금까지 함께 공들여 쌓아 온 대화의 시간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다.

한국어의 4대 문장 시작요소 pic.twitter.com/xXAdgVaYcU

— loop (@bokuga_loop) April 7, 2020

오늘 너무 덥지 않아?
‘아니’ 여름이니까 더운 거지.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아.)

오랜만에 마라샹궈 먹었더니 속이 놀랐나 봐. 종일 화장실 들락날락했어.
‘아니’ 마라 들어간 거 왜 먹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

(난 네가 좋아하는 민초 음료 안 먹지만, 민초 음료 먹는 걸 이해 못하진 않아. 그저 취향이니까!)

차가 좀 막히네. 밖에 나오는 사람 많은가 보다.
‘아니’ 다들 이 시국에 어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우리도 지금 돌아다니잖아…)

’아니’로 시작되는 문장이 내게 쏟아질 때는 ‘그래서 대화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아니’라는 단어는 예리한 제초기처럼 느껴졌다. 정성 들여서 뿌린 대화의 씨앗들이 자라 이제 막 틔우기 시작한 싹을 날카로운 제초기 칼날로 잘라냈다.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뿌리까지 몽땅 털어버릴 정도다.

‘아니’ 하나가 붙는 순간 ‘지금까지 네가 한 말은 다 틀려. 더 들을 필요 없겠어’와 같은 뜻으로 들렸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넉넉하게 들어간 단어, ‘아니’ 앞에서 말을 더 잇고 싶은 의욕이 꺾인다. ‘아니’는 대체 왜 나를 괴롭히는 걸까?

전문가들 의견을 찾아보니 ‘아니’는 내가 생각한 만큼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니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아니’ ‘근데’ ‘진짜’가 많이 쓰이는 이유나 배경에 대해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은 없다”면서도 “문장에 없어도 의미상 전혀 영향이 없는 군더더기다. 일단 입 밖으로 뱉어 발언권을 남에게 넘기지 않고 생각할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추정된다”라고 했다.

아니 근데 솔직히 진짜 한국인이면 아니 근데와 솔직히 진짜를 쓰지 않고서는 문장을 시작할 수 없는 듯

— ite (@woodyscent) August 8, 2019

때에 따라 ‘솔직히’나 ‘이제’ ‘약간’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저 추임새이자, 생각할 시간을 벌려는 용도로 쓰이는 별 의미 없는 군더더기 같은 단어, ‘아니’ 하나에 난 체한 듯 속이 불편했다. ‘아니’라는 단어 하나가 마음이 걸려서 대화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아니’와 마주할 때마다 대화의 의욕을 잃고, 조개처럼 입이 꾹 닫혔다.

나도 한국인이니 ‘아니’를 한 번도 안 썼다 단언할 순 없다. 하지만 무의식 중이라면 몰라도 내가 사용하는 ‘아니’는 분명 의도가 있었다. 내 의견을 상대방에게 강력하게 관철하기 위해 썼다. 평소에는 ‘늘 그럴 수도 있지 모드’지만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아니’를 선택해 썼다.

내가 그런 의도로 썼으니 남들도 그렇게 쓸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자연히 ‘아니’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왔다. 내게는 호랑이처럼 거대하고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던 단어 ‘아니’.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살이처럼 가볍고 하찮은 단어였다. 똑같은 단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무게는 다르다.

무게의 차이를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난 ‘아니’를 신중하게 쓴다. 다만, 남들이 쓰는 ‘아니’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받아들인다. ‘아니’가 만드는 체증(滯症)을 내리기 위해 내가 찾은 소화제는 바로 이거다. 테니스에서 스매싱을 날리듯 바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면 ‘그냥 추임새다, 생각할 시간을 벌려고 쓰는 거다.’라고 되뇐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한 호흡 크게 숨을 내뱉어 뜨거워지는 마음의 온도를 끌어내린다. 쌓여 봤자 속만 불편한 그 단어를 마음에 남지 않게 흘려보낸다. 일부러 의식해서 쓰는 게 아니니 누군가의 말버릇을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 의식하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체한 듯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단어나 말투를 사용할지 모를 일이니까.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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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문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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