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에 잠긴 제주에서, 차를 몰아 가는 길에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오늘 기분 좋을지 나쁠지는 내가 선택하는 거야. 여보는 오늘 어떤 기분을 선택할 거야?
나는 조금 처져 있었는데, 아내의 말을 들으니 역시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날은 가만히만 있어도 저절로 기분이 좋다. 선택할 것도 없이 마음이 잔잔한 기쁨으로 채워지는 날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날, 매 순간 어떤 결단 앞에 놓인다. 계속 기분 나쁠 건가, 그래도 오늘의 좋은 기분을 만들어볼 것인가, 하고 말이다.
삶은 매번 기분과의 전쟁이다. 자기 기분을 잘 알고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시간을 망치고, 무엇보다도 차츰 신뢰를 잃어간다. 반면 스스로의 기분을 알고, 기분이 어떻든 그런 기분에 대해 상대에게 이야기할 줄 알고, 그 기분을 이겨내고자 애쓴다면 신뢰 어린 관계도 맺어갈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 기분이 처져 있거나 답답해, 그러나 이 기분을 이길 거야, 그래서 당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거야, 좋은 시간을 만들 거야, 그런 마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시절, 아내는 우울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어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후 정도였을 것이다. 산전우울증이든, 산후우울증이든, 그 밖의 다른 이유 때문이든 아내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나는 아내 기분을 위해 꽃을 사거나, 요리를 하고, 아내를 데리고 바다로 떠나곤 했다. 아내를 위해 글쓰기 모임과 독서 모임을 만들고, 좋은 영화를 찾아 보여주기도 했다.
반대로 내게도 우울한 시절이 있었다. 아내는 내게 전화하고, 편지 쓰고, 선물을 주고, 매일같이 내게 힘내라며 요정처럼 응원을 해주곤 했다.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기분을 달래주는 것, 그 언저리에 있는 무엇인 것 같다.
아이는 우리가 다소 처져 있을 때도, 맑게 웃으며 혼자 신나 있곤 하다.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별것 아닌 새로움에도 신남을 느낀다. 웃고, 춤추고, 우리가 어떻든 혼자만의 즐거움에 빠진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피곤하다가도 웃음이 난다. 아이에게서 기분을 얻는다.
그러나 역시 반대인 경우도 있다. 아이가 기운이 없고 약간 짜증을 낼 때는, 아이를 달래서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맘마파워’로 힘을 내게 도와주고, 아이랑 같이 바다로, 들판으로 달려 나간다. 아이에게 사소하게 건네는 제안들, 아이의 상상을 도와주는 말들, 어떤 식으로든 아이를 즐겁게 해주려는 작은 순간들이 있다. 그러면 아이는 “기분이 생겼어.”라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기분을 달래준다. 서로가 행복하길 바라며 애써준다. 혹은 의도치 않더라도, 서로의 기분을 북돋아 준다. 셋이서 기분을 품앗이하듯 살아간다. 사랑이란 그런 건가 보다,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란, 그렇게 서로의 기분을 달래주는 존재인가 보다, 생각한다.
서로가 아니면 아무도 알아줄 리 없는 일이고, 역사나 경력, 명예로 남는 일도 아니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그렇게 건네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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