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21년도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올해 가장 뜨거웠던 기업을 뽑는다면 역시 쿠팡이 아닐까 싶습니다. 쿠팡은 올해 1분기에는 역대급 상장 소식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2분기에는 불매운동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에는 물류센터 화재 사건을 시작으로 욱일기 판매 논란, 새우튀김 갑질 사건까지 하나만 터져도 휘청거릴만한 악재가 무려 3개나 연이어 찾아오면서, 일각에서는 쿠팡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하인리히 법칙, 혹시 들어보셨나요? 하인리히 법칙은 또 다른 말로 1:29:300 법칙이라고도 부르는데요. 하나의 큰 재해 뒤에는 29개의 작은 재해와 사소한 사고 300개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쿠팡 불매운동도 사실 수년 전부터 여러 전조가 있었습니다. 일본 자본 논란에서 시작해서, 외국인 임원 우대 및 한국인 차별 논란, 노동자 과로 논란까지. 한때 안티가 전혀 없던 쿠팡에게 비판적인 여론이 서서히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지난 4월 MBC의 탐사기획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아예 쿠팡을 타깃으로 저격하는 내용의 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쿠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공중파 방송에까지 올라오기 시작한 겁니다.
- 관련 글: 「스트레이트가 쿠팡을 저격한 이유」
그렇다면, 쿠팡은 정말 사라져야 할 나쁜 기업일까요? 불매운동으로 무너진 남양유업처럼 서서히 몰락의 수순을 밟게 될까요? 아니면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요? 쿠팡의 이번 위기 과연 언제까지 갈까요?
1. 고객에 대한 집착도 과하면 독이 됩니다
쿠팡이 겪고 있는 여러 논란들을 보다 보면, 딱 떠오르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쿠팡의 롤모델, 아마존인데요. 알고 보면 아마존도 한 논란 한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최근 쏟아지는 쿠팡을 향한 비판의 핵심은 아니지만, 쿠팡이 욕먹는 여러 원인 중 하나이긴 한 아이템 ‘위너 제도’, 이것 자체가 아마존의 바이박스 제도를 고대로 가져온 겁니다. 오로지 최종 소비자의 편한 쇼핑을 위해 중간 판매자들의 희생은 감수해도 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거죠.
그뿐이 아닙니다. 노동 탄압 이슈로도 아마존은 비판받고 있고요. 올해 4월에는 이를 공개 비판한 직원을 불법 해고한 일로 시끄럽기도 했습니다.
- 관련 뉴스: 「아마존 노동탄압 판정…”회사 공개 비판한 직원 불법해고」 연합뉴스
사실 쿠팡이츠 새우튀김 갑질 사건도, 이와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문한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만 집중하다 보니, 사장님들에 대한 배려는 놓쳤던 겁니다. 쿠팡의 매뉴얼 자체가 얼마나 최종 소비자 편향적인가를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여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물류센터에 대한 여러 이슈들도 결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빠른 배송에 집착하다 보니 생겨난 것들이 많습니다.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오로지 고객을 바라본다는 경영원칙은 쿠팡을 단시간 내에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고객에 대한 집착만으로 사랑받는 시대는 점차 지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 미닝 아웃이나 가치 소비, ESG 같은 키워드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단지 자신들의 편의뿐 아니라, 소속 직원, 거래처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까지 챙겨주는 기업을 점점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한데요, 거의 20% 가까이 줄었다는 쿠팡 이용자 수 중 20대의 감소 비율이 가장 크다는 것도 이를 반증합니다.
더욱이 쿠팡은 적도 많습니다. 거의 업계의 공공의 적 수준인데요. 물론 그것은 그만큼 쿠팡이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현재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걸 반증하기도 합니다. 쿠팡은 기존의 질서를 부인하고, 시장에 충격을 주는 파괴적 혁신을 실행한 대표적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반 쿠팡 연대’라는 말이 공공연히 기사에 등장할 정도로 여러 곳에서 견제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쿠팡이 한번 삐끗하자, 더 공격적으로 곳곳에서 달려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2. 쿠팡은 분명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쿠팡을 향한 비판들이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쿠팡의 잘못이 전혀 없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쿠팡은 흔히 말하는 ‘로켓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기도 했죠. 아직 조사 중이긴 하지만, 이번 물류 센터 화재에서 분명히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쿠팡이 다소 억울한 면이 있기도 합니다. 현재 쿠팡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어떤 커뮤니티든 90% 이상이 부정적인 댓글들이 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만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물론 쿠팡의 직원들이 열심히 대신 변명해주는 부분도 많지많요. 생각보다 동종 업계 직장인들이 대신 감싸주는 것도 많았습니다.
이른바 관행으로 이루어진다고 옳다고 여기면 안 되겠지만, 정말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타 기업보다 분명히 쿠팡이 더 진보적으로 대처한 부분도 싸잡아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사업 구조상 쿠팡의 책임이 거의 없는 부분에 대해 비판받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 불매운동을 촉발시킨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쿠팡 물류센터 근로 환경에 대한 폭로인데요. 이러한 폭로 내용은 사실 왜곡이라는 게 쿠팡 측의 주장입니다. 화재 당시 보안직원이 신고해달라는 요청을 무시했다거나,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갈 정도로 억압적인 통제가 있었다는 등 자극적인 내용들로 화제가 되었던 기자 회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미 아래 내용은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쿠팡을 향한 악화된 여론에 이미 불을 붙인 뒤였습니다. 그리고 쿠팡의 해명보단 악성 루머들만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아래 노조와 진보당 측 주장과 쿠팡의 주장이 담긴 기사와 보도자료를 비교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 관련 글 1: 「쿠팡 전현직 직원들 “화장실 갔다고 시말서”···쿠팡 “거짓말”」
- 관련 글 2: 「노조와 진보당은 사실을 왜곡하는 주장을 중단해 주십시오 – 쿠팡 뉴스룸」
더욱이 쿠팡에게 호의적인 언론 자체가 없다는 것은 정말 치명타입니다. 기성 언론 등은 물론이고, 뉴미디어 매체들도 등을 돌린 지 오래입니다. 뉴닉과 같은 MZ세대를 대표하는 뉴스레터에서도 쿠팡의 여러 잘못들에 대해 지적하고 있고요.
더욱 뼈아픈 것들은 이러한 집중 기사 자체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거라는 점입니다. 더욱이 마케팅 주제의 뉴스레터에서도 쿠팡 불매운동에 대해 조명하는 등, 나쁜 이슈는 끊임없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 관련 글1: 「쿠팡 화재에 대한 (거의) 모든 것」
- 관련 글2: 「#쿠팡불매, 이용자가 떠나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번에 기회를 잡은 경쟁사들이 조직적으로 쿠팡 때리기에 나섰다는 음모론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일정 부분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쿠팡의 언론 관리 능력 자체가 뛰어난 편은 아니니 말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뉴미디어 매체들마저 등을 돌렸다는 점은 쿠팡이 다소 억울한 면이 있더라도, 이번만큼은 확실히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잘한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는 자기반성과 사과,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고쳐나간다면,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쿠팡은 다시 한번 도약의 시기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3. 쿠팡, 과연 버틸 수 있을까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한들, 아예 무너져 버리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불매운동이 제대로 터지면 정말 무서운 게 남양유업은 아예 창업주 일가가 회사를 완전히 매각하게 만들었고요. 유니클로는 불매운동 이후 폐점한 점포 수만 50개에, 매출은 2019년 1조 3,780억 원에서 작년 6,297억 원으로 절반 이상 급락하였습니다. 쿠팡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관측도, 이러한 불매운동이 가져올 파급력이 엄청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28일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기사화되었는데요. 물류센터 화재와 쿠팡 불매운동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진행한 내용이었습니다. 결과는 쿠팡의 책임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모양ㅇ새입니다. 10명 중 9명 정도가 쿠팡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대다수의 여론은 쿠팡의 책임을 지적하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쿠팡이 준비한 보상안에 대해서 충분하다고 여기는 비율도 40% 내외에 그쳤다는 겁니다. 이러한 수치는 이용 빈도를 줄이지 않겠다는 응답이나, 불매운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율로도 그대로 이어졌는데요. 쿠팡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응답 비율은 모두 40% 내외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60%에 가까운 고객들은 이용 빈도를 줄이거나 불매운동에 참여한다고 답했으니, 쿠팡에게는 매우 좋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은 교차 분석 결과, 쿠팡의 충성 고객들은 상대적으로 불매운동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겁니다. 충성고객의 50% 이상은 불매운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하거나, 비슷한 이용 빈도를 유지하겠다고 답을 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일간 활성 사용자 수는 20% 가까이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인당 이용 시간 자체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이탈하지 않는 기존 충성 고객들은 확실히 두텁게 존재하는 걸로 보이고요. 아예 이탈을 하지 않은 고객들은 쿠팡 이용 빈도도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는 걸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또한 쿠팡이 잘하고 있는 점은 그래도 빠르게 피드백하며 대안을 내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순직하신 소방관 유가족분들께 평생 지원 혜택을 약속한 점이나, 물류센터 직원들의 전환 배치를 빠르게 완료한 점 등은 어찌 되었든 급속도로 부정적 바이럴이 퍼지는 건 그래도 일단 막은 모양새입니다. 아무튼 40% 정도의 고객은 쿠팡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처럼만 빠르게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변화해 나간다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위기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물론 논란으로 몰락해간 일부 기업들처럼, 계속 잘못된 대처를 보인다면 아무리 쿠팡이라도 침몰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현재처럼 낮은 자세를 유지한 채, 정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쿠팡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일 듯합니다.
4. 리스크 관리, 쿠팡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쿠팡이 위기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과 이면에 가려진 부분들, 그리고 쿠팡의 향후 전망까지 알아보았습니다. 쿠팡은 고객 집착이라는 가치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니 위기에 빠졌습니다. 다소 과도한 비판에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 잘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자기반성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직까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의 대책은 잘 진행 중인 걸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쿠팡의 사례에서 우리가 배워할 점은 무엇일까요? 미닝 아웃이나, ESG 등의 키워드가 말해주듯 이제 기업들이 관리해야 할 영역이 엄청나게 확장되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객과 직접 만나는 경우가 잦은 유통 기업들은 이러한 부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독 쿠팡뿐 아니라, 여러 유통 기업들이 여러 논란에 휩싸였던 한해였는데요. 무신사나 GS 리테일은 젠더 이슈 논란으로 홍역을 앓았고요. 신세계-이마트 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정치적 발언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각기 불매운동을 낳거나, 혹은 기업에게 부정적인 꼬리표를 달리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쿠팡이 집중포화를 맞고 있지만, 내일은 또 어떤 기업이 불매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결국 기업의 생존과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리스크 관리 능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문: 기묘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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