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의 변화
손바닥만 한 기계로 택시도 부르고 주식도 거래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64화음 벨소리와 가로본능은 이제 온라인 탑골공원의 소재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겪은 변화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이다음 10년의 변화는 지금까지의 변화보다 훨씬 클 겁니다.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대단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쇄술부터 라디오, 신문, TV, 인터넷이 등장할 때마다 마케팅은 다른 누구보다 빠르게 변화를 감지하고 또 적응해 왔습니다.
마케팅의 진화
본격적인 대중매체의 시대가 열리자 마케팅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립하며 진화합니다. 마케팅의 첫 번째 패러다임은 소비자들이 합리적이란 전제에서 상품의 우위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물건이 더 좋고, 더 싸고, 더 훌륭하단 거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케터들은 마케팅에 논리와 이성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든 감정적 유대든 혹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든, 일단 그것을 확보한 브랜드는 시장에서 아주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케팅의 두 번째 패러다임, 감성 마케팅입니다.
인터넷의 등장은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다시 구성했습니다. 마케터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관심과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고, 광고의 성과는 명확한 데이터로 측정되었습니다. 이제 마케터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뿐 아니라 개인의 성향과 요구에 맞춰 효율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SNS는 인터넷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거의 신체와 다름없을 정도로 놓지 않는 물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소비자들, 거기에 각종 신기술로 위치 정보까지 더해지며 마케터들이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 가까이에 있는 시대가 되었죠.
마케팅의 다섯 번째 패러다임: 퀀텀 마케팅
이렇게 패러다임이 바뀌어 온 역사를 보고 있자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됩니다. 성공한 기업들, 특히 후발주자로서 성공한 기업들은 패러다임 전환기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대응했단 점입니다. 기성 기업들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게 아닌 이상 언젠가는 변화의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케팅의 다섯 번째 패러다임은 무엇일까요? 『퀀텀 마케팅: 한계를 뛰어넘는 마켓 프레임의 대전환』은 그 다섯 번째 패러다임과 그것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 라자 라자만나르는 마스터카드의 CMO(최고마케팅책임자)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CMO이자 CMO들의 CMO로 손꼽힙니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마케팅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변곡점의 순간이라 말합니다. SF 영화를 통해 상상만 하던 온갖 기술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시대, 그 기술을 적극적으로 응용해서 시장과 마케팅을 전면적으로 재정의할 필요성이 있다 강조합니다.
웨어러블과 사물 인터넷을 통해 과거엔 측정조차 할 수 없었던 데이터가 모이고, AI와 블록체인, 5G는 그것을 분석하고 처리하는 것을 가능케 했습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마케팅의 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고 있고, 스마트 스피커와 커넥티드 카, 드론은 새로운 기술과 우리의 일상을 접목하고 있죠.
이처럼 변화의 속도와 양 모두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해지는 시대, 저자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마케팅 패러다임으로서 ‘퀀텀 마케팅’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퀀텀 마케팅 시대의 마케팅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마케터와 경영자, 기업과 소비자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통찰 중 몇 가지를 짚어봅시다.
충성도가 아닌 친화력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브랜딩은 충성도 높은 고객을 만들고자 애썼습니다. 멤버십, 마일리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객들을 자신의 브랜드에 사로잡고자 했죠. 하지만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온갖 물건들을 집 앞에서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소비자들은 더 이상 브랜드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충성도라는 마케팅 용어를 다시 정의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가 아니라, 고객에 대한 브랜드의 충성도로요.
SNS를 통해 개인이 미디어가 되고 다양성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 소비자들은 이제 자신이 소비하는 브랜드에서 상품 이상의 것을 바랍니다. 그것은 기후 변화나 빈부격차 같은 대의명분일 수도 있을 테고,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나 셀럽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핵심은 마케터가 그것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소비자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면, 마케터는 친환경 포장을 제공하거나 환경 보호를 위한 기부 프로그램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특정 스토리나 셀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 재빠르게 협업을 준비해야 합니다. 과거의 충성도가 주로 경제적인 가치를 통해 고객을 붙잡아 뒀다면 퀀텀 마케팅은 고객과 친해짐으로써 화학적 결합을 의도하는 것이죠.
이제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성능과 스펙은 이미 아는 정보입니다. 대체제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시대, 브랜딩은 소비자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광고의 시대는 끝난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리며 광고는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가지고 다니는 기계를 통해 고객을 정확히 타케팅할 수 있게 되자 광고의 비용은 줄어들면서도 효용은 커졌죠.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한 사람이 하루에 노출되는 광고 메시지는 평균 4천여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에 반비례해 인간의 집중력은 점점 줄어들어, 최근 연구 결과는 8초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도 광고를 싫어했지만, 이제는 혐오합니다. 광고를 보는 대신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는 모델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어마어마한 혁신으로 여겨지며 앱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광고를 보지 않는 대가로 기꺼이 돈을 냅니다. 우리가 아는 광고의 수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저자는 입소문 마케팅을 제안합니다. 물론 입소문 마케팅은 전통적인 방법론입니다. 중요한 건 거기에 소셜 미디어와 소비자의 디지털 네트워크를 연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미래로의 회귀’인 셈이죠.
지금까지의 입소문 마케팅이 주로 인플루언서를 섭외하여 브랜드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의 입소문 마케팅은 앞서 말한 친화력과 연계해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상상력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시대의 입소문 마케팅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스토리 메이킹’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어비앤비는 루브르 박물관을 통해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박물관 정규 관람 시간이 종료된 후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모나리자 초상화 앞에서 식사를 했죠.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과도 같은 유리 피라미드 아래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들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고객들이 집에 가며, 그리고 집에 가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에이전시의 개념이 바뀐다
대중매체의 시대, 광고대행사는 업계의 중요한 행위자로서 광고와 홍보, 각종 이벤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마케팅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접어들며 에이전시는 지각변동에 가까운 큰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과거 에이전시 활동을 기업 내부에서 처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업의 장기 기획을 자문하던 전략 컨설팅 회사들은 역으로 전통적인 에이전시 영역에 진출하는 중입니다. 딜로이트나 액센츄어 같은 글로벌 회사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마케팅이 제품 광고를 넘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고, 고객과 친해지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오늘날의 마케팅은 기업의 정체성 및 장기 전략과 나누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거죠.
기존의 에이전시 역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세계적인 종합광고대행사로 잘 알려진 맥켄 그룹은 데이터 수집·분석 전문 기업인 액시엄을 인수했습니다. 구체적인 역할과 형태를 아직까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의 에이전시는 지금까지의 에이전시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입니다.
알고리즘에게도 마케팅을 해야 한다
구글과 애플로 대표되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등장은 마케터들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한계가 되었습니다. 고객이 어떤 브랜드의 상품을 검색했을 때 해당 제품이 눈에 띄는 곳에 배치되지 않는다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은 더더욱 떨어진다고 봐야겠죠.
초기의 검색 알고리즘은 단순히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한 광고를 더 잘 보이는 곳에 노출시켜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쌓이고 알고리즘이 정교해지고 AI를 통한 개인화된 선별방식이 적용되자 검색 노출에도 수많은 요소가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마케터들은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전에 알고리즘에게 선택받기 위해 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알고리즘이 어떤 로직으로 구성되어 어떤 작용을 하는지 끊임없이 분석하고 공부하지 않는다면 브랜드는 소비자의 선택은커녕 존재조차 인식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사물 인터넷과 스마트 스피커가 확산될수록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예컨대 소비자가 아마존의 AI 비서 알렉사에게 어떤 제품의 추천을 요청했을 때 내 제품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 제품은 점점 도태되겠지요. 실제로 사람들은 열 번 중 일곱 번 정도는 알렉사의 추천에 따라 구매한다고 합니다. 여전히 마케터에게 소통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이제는 기계와의 소통이 다른 무엇보다 한 발짝 앞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윤리와 도덕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사실 사람들은 마케팅을 썩 신뢰하지 않습니다. 마케팅을 일종의 사기나 기만으로 여기는 풍조도 여전하죠. 물론 이런 인식엔 오랜 기간 관행처럼 여겨진 실제 사기성 마케팅의 원죄도 있을 겁니다.
SNS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은 한편으론 이런 경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각종 합성과 딥페이크 기술로 무장한 허위·과장 광고는 마치 가짜뉴스처럼 퍼져 나가며 단기간에 달콤한 성과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신뢰의 가치도 커졌습니다. 이제 마케팅의 역할이 고객에게 친밀감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옮겨가는 만큼, 신뢰는 마케팅의 가장 큰 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스스로 미디어가 되어 서로 연결된 소비자들은 허황된 마케팅에 속지 않을 뿐 아니라, 비윤리적인 기업을 심판하기까지 합니다. 원래도 윤리와 도덕은 중요한 가치였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그 중요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입니다.
앞으로의 마케팅을 위한 교과서
『퀀텀 마케팅』은 사실 실무자를 위한 구체적인 지침서는 아닙니다. 제목에서 제시된 것처럼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진단·분석하는 교과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지금 그 전환기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지나간 변화를 되짚는 게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환경과 조건을 차근차근 진단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책의 가치는 그런 변화를 미리 예견하고 대비하는 통찰에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글로벌 기업의 여러 CEO, CMO가 찬사의 추천사를 보낸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견문과 지식이 가득한 이 책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케터들에게 필독서가 되어줄 것이다.
- 미셸 펠루소(IBM 디지털 세일즈 상무/CMO)
이 책은 미래에 닥쳐올 마케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체적인 틀을 잡아준다.
- 안다 간스카(노치 CEO)
마케팅이 어떤 식으로 진화를 이어갈지 그리고 성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마케팅의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 수닐 굽타(하버드대학교 경영학 교수)
우리 앞에 놓인 변화가 정확히 어떤 변화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몇 가지 확실한 건, 성공한 기업과 사람들은 예외 없이 그 변화를 대비하고 선도했단 점과, 패러다임의 전환은 항상 새로운 블루오션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마케터와 CEO는 당연하거니와, 앞으로 사업을 하려는 이들과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 이 글은 「마스터카드 최고 마케팅 담당자가 말하는, 마케터가 가져야 할 필수 소양은?」으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