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이 뭘 하는 거죠?
마케팅에 일종의 ‘리부팅’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습니다. 데이터는 넘쳐 흐르고, AI는 물론 스마트폰, 사물인터넷과 웨어러블, 블록체인, 5G 등 강력한 기술적 변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변화에 행동경제학 등 마케팅의 근간이 되던 기존 경제학 이론이 흔들리고 있죠. 때문에 기업의 의사 결정자들조차 ‘마케팅이 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마케터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마스터카드 최고 마케팅 책임자 라자 라자만나르는 ‘퀀텀 마케팅’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마케팅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마케팅을 파괴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마케팅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다시 살펴보자’는 개념에 가깝죠.
마케터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마케터는 그 무엇보다도 데이터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소비자가 광고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시간 지표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여기에 스마트폰까지 등장하며 연산능력은 더욱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AI의 발전으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통찰을 발견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브랜드 구축이라는 마케터의 임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즈니스 파트너가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관계없이, 미래를 위한 브랜드 구축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마케팅의 영역이 넓어져야 하니까요. 테크놀로지스트, 재무, 조달, 법률 전문가, 데이터 분석가, 리스크 관리자 등이 사실 모두 마케팅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퀀텀 마케팅’의 시대에, 마케터는 어떤 도전들을 맞닥뜨리게 될까요? 어떤 식으로 미래의 마케팅에 대비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에 그 개략적인 편린을 소개합니다.
마케터가 맞닥뜨린 새로운 도전들
1. 데이터 사이언스
구글을 비롯한 광고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최적화된 광고가 가능해졌습니다. 마케팅 투자 대비 효과(ROMI)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되었죠. 스마트폰은 물론 사물인터넷에 웨어러블까지 등장하면서, 데이터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이루다’ 등 데이터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죠. 이런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스마트폰 회사 중 하나인 애플은 개인 프라이버시 강화를 전략으로 삼았죠.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예측 코딩, 변혁 에너지, 심층 신경망’ 같은 어렵기만 한 신조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이터에만 휘둘려서 창의성을 잃어서도 안 되죠. 기술은 발전하지만, 핵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유하니까요.
2. AI, 머신러닝, 딥러닝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 AI는 아주 중요합니다. 마케터는 AI 솔루션을 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이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물론 AI 이전에도 어떤 프로모션이 어떻게 구매 전환을 이뤄내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적으로는 설문조사, 홍보지표 등의 도구가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A/B 테스트 등의 기법이 활용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는 일부를 확인하는 분석에 그쳤습니다. 기껏해야 ‘30대 고객’ 같은 세그먼트를 파악하는 수밖에 없었죠. 반면 AI는 막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패턴을 발견해냅니다. 그래서 한 ‘개인’에게 맞춤형인 마케팅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제는 ‘30대 고객’이며 ‘고소득자’이고 ‘미혼’인 ‘홍길동 씨’라는 특정 개인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죠. 마케터는 이제 이 도구를 어떻게 쓸 것인지, 어떤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3. 5G, 초고속 통신기술
5G의 가장 큰 특징은 저지연입니다. 저지연이란 4G에서 0.02초 이상 걸리던 서비스의 속도 지연을 1/10인 0.002초로 줄이는 기술이죠. 이 빠른 속도로 소비자의 위치정보와 구매내역을 실시간으로 분석 및 모델링해서 소비자에게 적합한 제안을 즉시 전송할 수 있습니다. 통신기술로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등의 다양한 도구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물론 아직은 좀 먼 얘기 같지만 말이죠(…)
4. 블록체인
블록체인 하면 흔히 암호화폐만 떠올리지만, 사실 좀 더 범주가 넓은 기술입니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커뮤니티가 거래의 모든 블록을 볼 수 있게 되죠. 거래 내역도 변경 불가하기 때문에, 반박 불가능한 거래 증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광고 생태계에서도 블록체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광고 생태계는 매우 복잡합니다. 중개인이 매우 많고, 이들이 가져가는 몫도 많죠. 광고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보니 부정행위가 끼어들 여지도 높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 블록체인을 적용한다면, 광고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부정행위는 사라지고 비용 대비 효율성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광고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까지 모두가 확인할 수 있죠.
아직까지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지만, 결국에는 일어날 변화입니다. 실제로 IBM은 이미 유니레버, 미디어오션과 손잡고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미래의 마케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미래의 마케터들은 어떤 도전에 맞닥뜨리게 될까요? 이들은 기술적 도전에 적응함과 동시에, 소비자 행동 양식에 대한 기존의 마케팅 이론을 과감하게 탈피해야 합니다. 라자만나르는 미래의 마케터들이 명심해야 할 조언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죠.
1. 소비자는 브랜드에 충성하지 않는다
브랜드에 소비자가 충실하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입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브랜드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가 자신에게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일종의 ‘친화력 플랫폼’으로 로열티 전략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브랜드와 소비자를 계속해서 결합시켜야 하는 거죠.
2. 사람들은 광고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광고를 보지 않습니다. 보더라도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단 광고를 ‘보게 만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소문 홍보는 가장 든든하고 효과적인 방법이고, 이 기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미래의 마케팅에서는 그것이 경제적으로, 대규모로 이뤄져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죠. 마케터는 오피니언 리더나 프로슈머에게 접근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연상 이미지를 떠올리게끔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마스터카드의 프라이스리스(Priceless) 프로그램은 매우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프라이스리스는 광고 캠페인을 경험적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마스터카드의 프로젝트 이름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모조리 마스터카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죠. 실제로 2020년에는 디지털 콘텐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디지털 프라이스리스 익스피리언스(Digital Priceless Experience)’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카밀라 카베요의 공연을 비롯해 600여 개의 콘텐츠를 플랫폼에서 생중계하거나 무료로 즐길 수 있도록 제공했습니다.
다만 몇몇 콘텐츠는 마스터카드 고객에게만 제공되었죠. 결국 이 콘텐츠에 대한 소문을 듣거나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스터카드로 이끌리는 마케팅인 셈입니다.
3. 소비자는 소비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 마케팅 이론은 ‘구매 행동 모델’로 소비자 행동을 설명했습니다. 인지, 관심, 욕망, 행동, 만족의 점층적 구조를 거쳐 의사 결정까지 도달한다는 모델이죠. 하지만 실제 구매 과정에서는 모든 단계가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소비자가 여러 생각을 거쳐 구매하는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소비자를 ‘모델로서의 소비자’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 접근해야 합니다. 소비는 인간 활동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러니 마케터는 인간 생활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고, 그 생활을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걸 가장 잘 하는 기업이 애플입니다. 애플은 소비자들조차 자신이 그런 걸 원한다고 예상하지 못했던 제품을 만들었죠.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존 고’도 좋은 사례입니다. 쇼핑에서 가장 불편한 요소였던 계산대를 없애고, 선반에서 물건을 고르고 상점을 나가기만 하면 되도록 설계한 것이죠. 앞으로도 마케터는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여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상품을 파악해야 합니다.
4. 마케팅에도 마케팅이 필요하다
마케팅에도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이제 마케팅은 데이터 사이언스뿐만 아니라 법률, 리스크 관리, 재무 등 총체적인 협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많은 임원들은 아직도 마케팅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마케팅 기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기업 내부에서부터 탄탄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타트업과의 협력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신생 기업을 위한 도약의 발판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신생 기업의 아이디어에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공공, 민간 부문과 파트너십을 맺는 것도 좋습니다.
마스터카드가 큐빅과 맺었던 파트너십이 좋은 예입니다. 마스터카드는 런던 지하철을 조사한 후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설치한 후, 런던 시민들은 지하철 이용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습니다. 시민과 마스터카드, 모두에게 이익이 된 것이죠. 물론 티머니와 교통카드겸용 신용카드에 너무 익숙한 한국인으로서는 이런 게 이익인가 싶을 뿐
5. 목적은 마케팅의 필수 요소다
모든 마케팅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기업의 목적에는 반드시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대의명분만 내세우고 막상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신뢰를 잃게 되죠. 그렇다고 메시지를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어서도 안 됩니다. 비즈니스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링크드인의 프로젝트인 ‘이코노믹 그래프’가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세계 경제와 고용, 수요 동향에 대한 인사이트를 보기 쉽게 제작해 사람들에게 공유한 콘텐츠입니다. 왜 링크드인은 이런 수고를 들였을까요? 바로 이들의 기업 정체성이 ‘경제와 고용에 대한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업 모델과 일치하는 공익 모델이었던 것이죠.
마치며
코로나19로 인해서 전세계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저자인 라자만나르는 마케팅이 반드시 원래의 자리에 돌아올 것이며, 그때 마케팅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케터는 팬데믹 시대에 한 차례 뒤집힌 사회의 흐름을 따라잡고, 사람들의 억눌린 욕구 속에 숨겨진 새로운 욕구를 찾아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이전과 차원이 다른 마케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혁신을 좋아하는 우리 마케터들에게는 재미있는 도전이 되겠지요.
우리는 이것을 ‘퀀텀 마케팅’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신세대의 마케팅 리더에게 필요한 관점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싶다면, 이 책 <퀀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 이 글은 「AI와 빅데이터의 시대,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가?: 마스터카드 CMO가 말하는 마케팅의 새 패러다임」으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