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데, 이 발 냄새 같은 영상은…. 계속 생각나게….
철이 없었죠. 이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완전히 ‘준며든’ 시대다. 유튜브 댓글을 타고 각종 SNS와 포털로 스며드는 밈들, 정상급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심지어 먼 과거 본캐에 대한 사생급(?) 추적까지. 피식대학은 유튜브 유머 콘텐츠로 시작해 이제는 대한민국 유머의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다. 어쩌다가 우리는 피글렛도 아니고 피글렛 꼬리 밟히는 소리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1. 특권화된 개그의 종말
사실 유머성 콘텐츠는 피식대학 이전에도 다수 존재했다. 방송 3사의 고전적 개그 프로그램부터 유튜브 시대까지 ‘유머’는 모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베이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바로 해학의 민족 아니겠는가.
한편 모두의 일요일 저녁을 책임지던 개그콘서트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시작했다. 흑인 비하, 장애인 비하, 여성 비하 등 한 회가 끝날 때마다 논란이 끊이질 않았고, 개그맨들이 설 영역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에 답답했던 몇몇 개그맨들은 대중을 상대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시청자가 유별나게 까다로워졌는가? 아니, 나는 오히려 지난 ‘개그’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유별나게 특권화되어 있으면서 교묘히 그 안에 ‘서민’이나 ‘가족’ 키워드를 섞어서 시민들을 기만해 왔다고 생각한다. 개그맨 공채, 방송 3사에서 꽉 쥐고 있는 개그 및 예능 프로그램들, 그리고 누구를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방송 심의의 3중 콜라보로 웃음은 지나치게 특권화되어 있었다. 누가 개그맨들을 천박하다고 하였는가. 오히려 지금까지의 개그는 ‘웃을 수 있는’ 사람들만 웃고, ‘웃길 수 있는’ 사람들만 웃길 수 있는 무언가였다.
유튜브는 그러한 점에서 특권화된 개그에 종말을 선언했다. 누구나 유머의 생산자가 될 수 있고 소비자는 ‘웃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방송 3사의 웃음 독식이 종말한 것이다.
일요일 저녁은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언피씨’로 점철된 개그 콘서트의 자리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내 웃음을 디자인할 수 있게 된 것. 유튜브의 다른 단점들을 고사하고서라도 이것만큼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2. 세상에서 제일 웃긴 한국인들: 제목학원 졸업해서 피식대학 왔다
피식대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무해한 다큐성 콘텐츠
- 하이퍼 리얼리즘의 크리피한 B급 웃음
- 구독자들의 해석에서 더해지는 인사이트와 선순환
- 착즙으로 웃음을 직접 만드는(design) 시청자들
피식대학은 ‘B대면 데이트’, ‘05학번이즈백’, ‘한사랑 산악회’등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일반인들의 삶을 허구의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띄고 있다. 그래서 개그콘서트나 코빅처럼 뚜렷한 웃음 포인트가 존재하거나 웃음을 강요하지 않고, 드라마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성공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피식대학에서는 다큐가 대상(material)이고 시청자가 예술가(artist)다. 최준과 방재호만 웃음을 만들지 않는다. 실존하는 인물의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인격을 가진 개체를 조롱하는 것이기에 물리적 피해자가 발생한다. 인간극장을 보고 드립을 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피식대학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등장인물의 자아를 깨끗이 세탁한다. 그 안을 드립으로 채우는 건 시청자의 몫이다. 댓글창 없이 피식 대학은 성공할 수 없다. 애당초 댓글 창이 없었다면 피식 대학은 개교(開校)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쌍방을 전제로 하는 유튜브 플랫폼 + 무자아적 개그맨 + 드립에 미쳐있는 한국인들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진짜 웃음은 댓글창에서 시작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는가. 21세기에는 사공이 많으면 제일 웃긴 사공이 베댓이 된다. 몇 년 전 제목학원 수상작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면 지금은 유튜브 댓글 모음이 SNS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학의 민족인 한국인은 드립 못 하게 막아두면 좀이 쑤시고, 남을 웃길 때 그 누구보다 뿌듯해한다.
웃음은 웃는 이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이제 구르는 걸 보고 같이 구르면서 웃는 민족이 아니다. 내가 웃길라고 작정하는 예능 프로그램보다 내 주변 사람들 손에서 나온 댓글 드립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다. ‘수용자 자급자족형’ 개그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피식 대학은 드립이 마음껏 오고 갈 수 있는 그라운드이자 플랫폼을 제공했다.
3. 해학의 미래
흔히들 웃으면 복이 온다고 말한다. 웃음은 달콤하다. 하지만 아무거나 보고 웃는 것은 언제 나와 남을 해치는 칼날이 될지 모른다. 지금까지 소비한 유머성 콘텐츠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도마 위에 올렸던 것처럼 말이다. 웃음에도 철학과 취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웃음 취향이 ‘picky’해진 것은 좋은 식재료를 골라서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아무거나 맛있다고 먹으면 나도 모르는 새에 체한다. 웃음에 취향이 생겼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가장 비천하게 여기고 가장 쉬운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해학이 어려워지는 순간부터 나는 우리나라가 시민의식의 중요한 국면 하나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리지 않으면서 웃길 수 있다. 무해한 콘텐츠는 생산 가능하다.
원문: 정혜숙의 브런치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