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즈는 종영 후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미국의 시트콤이다. 오늘은 특히 대단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주인공, 로스 겔러에 대한 글을 소개하려 한다.
어릴적부터 공룡을 좋아하던 로스는 결국 고생물학자가 되어 주변 친구들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늘 자기 분야에서의 새로운 발견들에 아이처럼 기뻐한다. 스스로가 뭘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고 또 그걸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위너. 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런 그의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곤 한다. 학구적인 것이 얼마나 ‘쿨하지 않은’ 것인지, 프렌즈가 그리는 학자의 모습을 재조명한 한 글을 소개한다.
TV 시트콤은 어떻게 서구문명의 몰락을 촉발시켰나
※ 「How a TV Sitcom Triggered the Downfall of Western Civilization」, BY DAVID HOPKINS
한때 나와 내 아내가 정주행했던 Netflix의 인기 TV쇼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이는 잘못된 무리들 사이에 던져진, 가정적인 가장이자 천재 과학자인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일련의 사건 후 서서히 광기와 자포자기에 빠져들면서 괴물이 되는 이 남자. 바로 시트콤 <프렌즈>의 비극적인 주인공, 로스 겔러다.
당신에겐 이게 코미디로 보이겠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다. 적어도 내게 프렌즈는, 재능있고 지혜로운 사람이 멍청한 동료들에 의해 박해받는 미국의 가혹한 반(反)지성주의를 시사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생각일지라도 라이브 스튜디오 관객들의 끊임없는 웃음소리는 우리의 이런 ‘예민한’ 반응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TV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누구나 프렌즈를 알고 있을 것이다. 목요일 밤 프라임타임에 방영된 이 쇼는 아주 호감가는 캐스팅 조합의 “must see” TV프로였다. 여섯 명의 주인공 모두 젊은, 중산층의, 이성애자, 백인이며, 매력적이면서도 친근하고,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온아한, 이해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조이는 바보고, 챈들러는 빈정대는 캐릭터, 모니카는 강박관념이 있으며 피비는 히피다. 레이첼은… 글쎄, 레이첼은 쇼핑을 좋아한다. 그리고 로스가 있다. 로스는 지적이고 로맨틱한 캐릭터다.
이들은 처음부터 서로 티격태격하는데 극중에서 로스가 자신의 생각이나 관심사, 연구에 대해 말할 때마다 그의 “친구들” 중 한명은 괴로워하며 말 허리를 끊고 로스가 얼마나 지루한 인간인지, 똑똑한 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라이브 스튜디오에는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이런 ‘개그’는 열 개의 시즌 동안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연출됐다.
그리스 신화의 비극처럼, 우리의 주인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한다. 쇼의 제작자들은 로스가 레이첼과 엮어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쇼핑하는 그 레이첼 말이다. 솔직히 나는 로스가 아깝다.
쇼는 2004년 막을 내렸다. 페이스북이 시작된 해이자 조지 W부시가 재선출된 해, 리얼리티쇼 <아메리칸 아이돌>이 대중문화계에서 8년간의 공포의 지배를 시작한 해, 패리스힐튼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함께 자서전을 출간한 해. 프렌즈의 스핀오프 시리즈인 <조이>도 이때 나왔다. 2004년은 우리가 완전히 포기하고 무지를 가치로 수용하기 시작한 해다. 같은 해 발매된 그린데이의 앨범 『아메리칸 이디엇(idiot)』이 그 해의 그래미까지 받았으니 이렇게 시의적절할 수 있을까.
그렇다. 내 말은 프렌즈가 서구 문명의 몰락을 촉발시켰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로스의 말을 빌려보자면 “오 정말? 그래? 내가 미친걸까?”
2004년 당시 나는 교사였다. 학교의 체스클럽을 지도했는데, 내 학생들이 어떻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봤다. 학생들을 지키려고 했지만 내가 어디에나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똑똑했고, 엄청난 괴짜였고, 남들이 봤을 땐 적대적이고 비우호적인 영역에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점심시간마다 내 방으로 찾아오는 체스클럽학생들을 괴롭히기 위해 밖에서 숨어있기도 했다. 교사로 재임하는 동안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괴짜들의 보호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장담하건대, 나쁜 놈들보다 내가 훨씬 악명이 높았다.
어쩌면 지식인들은 항상 박해당해 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특히 더 심각하다. 소셜미디어가 진실된 논쟁과 정치적 담론을 대체하고, 술 한잔을 같이 하고 싶은가/아닌가 정도의 호감이 정치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과학적 합의가 거절당하고 연구들은 자금부족에 시달리며 저널리즘은 유명인의 가십거리 속에서 허우적댄다. CNN.com의 메인화면에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가 걸려있는 것을 보며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라이브 스튜디오 관객들의 선의의 웃음소리처럼 전부 무해한 재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가 지적 호기심을 길러내기 위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을 나는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다.
다행히 이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다. “너 그거 아니(Did you know)…”로 시작하는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길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그런 사람들. 현실세계에서의 로스들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체스클럽에서 봤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미술관에서, 중고책 서점에서, 공공 도서관과 카페에서, 대학 안에서 빛나는 그들의 눈빛을 보았다.
어리석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의 분별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몇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하나, 책을 읽어라. 정신 없는 현대문화로부터 한발짝 물러서 소설에 빠져들 때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새로운 아이디어, 신선한 경험, 처음 접하는 관점에 마음을 열어보라. 뉴욕 뉴스쿨의 연구에 따르면 문학은 공감능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사실이다. 독서는 당신을 ‘덜 별로인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자주 읽어라. 어려운 책을, 논란이 되는 책을 익어라. 당신을 울게 하는 책을, 재미있는 책을 읽어라. 어찌됐든 읽어라.
둘, 배워라. 뇌는 무궁무진한 것들을 할 수 있으니 뭐라도 던져줘라. 진보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은 우리가 아는 문제들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렵거나 복잡하다는 믿음이다. ‘빈곤을 없앨 수는 없어,’ ‘인종차별은 항상 존재하겠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너무 어려워,’ ‘공교육 시스템은 고장났어’ 이런 믿음들 말이다.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스스로 깨쳐라. 과학과 수학을, 철학을 탐구하라. 고생물학을 연구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라. 유창할 필요도 없이 몇 마디만 머릿속에 넣으려고 해보라. 교육용 팟캐스트를 들어보라. 뭘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교사로서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멍청하다는 말을 들어온 아이들에게 그들이 똑똑하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일이었다.
셋째, 쓸데없는 것들을 그만 사라. 지적 성취와는 무관한 말로 보이겠지만, 나는 소비문화와 바보문화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을 단순화하라. 집으로 들여오는 물건들에 대해 조금 더 고심해본다면 조작된 충동들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괴짜들을 보호하라. 시애틀 출신의 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빌앤멜린다게이츠(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라는 재단을 통해 세계의 빈곤, 기아, 질병을 구제하는데 현재 미국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이 기여하고 있다.
괴짜들은 백신을 만든다. 교량과 도로를 설계하고 교사와 도서관 사서가 된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영리한 사람들. 그들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한숨 쉬며 눈치를 주고, 움츠러들게 할 수는 없다. 로스에게는 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원문: 뉴욕월매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