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MOS는 지난 28년간 있었던 워치메이킹 스토리 중에서도 최고입니다.
- Robin Swithinbank, The Jackal 매거진 Editor-in-Chief
인류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예술품
시계라는 상품에 대해 가치를 어떻게 매기고, 퀄리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매우 다양한 시각과 방법이 있을 테지만, 시계는 기존의 효용 가치(시간을 확인하는 유틸리티)를 벗어난 상품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손목을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하는 것 자체는 큰 효용 가치가 없다. 시계가 그런데도 여전히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것은 인류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정교한 기술의 집약체를 손목 위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천, 수만 가지의 부품을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가공하고 조립해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계는 인간의 힘만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시스템을 손목 위에 올린다는 것, 현존하는 기술력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가치를 매길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시계가 왜 비싼지 이해가 된다.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NOMOS Glashutte
대중에게는 다소 알려져 있지 않지만, 기계식 시계의 세계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시계 브랜드가 있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디자인과 정확성과 효율을 추구하는 독일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을 담은 NOMOS Glashutte다.
NOMOS는 시계 세계에서는 비교적 신규 브랜드에 속한다. 수백 년간 시계를 만들어 온 스위스, 독일 회사들과는 달리 NOMOS는 30년 전인 1990년에 설립된 시계 브랜드다. 설립 이후 지속해서 독립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기존 시계 회사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만들어가고 있다.
NOMOS는 기존의 클래식함이나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모던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정밀하고 효율적인 공정프로세스와 자체 기술 활용 덕에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에 시계를 제공하고 있다.
Deutscher Werkbund and Bauhaus
Deutscher werkbund는 20세기 초 독일의 기술자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운동인 독일공작연맹이다. 이들은 예술과 기술을 이어 가장 순수하고,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유용한 제품을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deliver)한다는 목적이 있다. 이 무브먼트는 이후 수많은 독일의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 시계 제조사들, 정비공과 기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form follows function(형태가 기능을 따른다)의 기능주의를 만든 주체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바우하우스(Bauhaus) 학교는 사실 이 독일공작연맹인 deuscher werkbund 정신의 큰 영향을 받은 학교다.
“소파 쿠션의 디자인부터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Vom Sofakissen zum Städtebau)”
- 독일공작연맹의 모토
NOMOS는 deuscher werkbund 정신을 이어받은 브랜드다. 만드는 모든 시계에서 그 형태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시계에서는 ‘독일스러움’이 묻어 있고 디자인은 정말 필요한 것들만 남아 있는 미니멀리스틱한 기능주의를 따르며 가격 역시 산업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Made in Germany
기계식 시계의 나라라고 한다면 단연 스위스일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 국경에 인접한 독일 글라슈테지방은 스위스 못지않은 기술력을 자랑한다. NOMOS 역시 독일 시계의 성지 글라슈테 지방에 자리 잡고 있다. 위에서 말했듯, ‘독일스러움’은 NOMOS의 특별한 점이자 그들의 철학이고, 자존심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퀄리티와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 시계는 스위스가 아닙니다. 독일이지요. 독일에 있는 NOMOS를 말하는 겁니다. NOMOS는 굉장히 진중한 제품을 만들죠. 저는 그들의 시계를 좋아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기계식 시계 모으는 것을 시작하고 싶다면, NOMOS는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너무 비싸지 않지만 값을 제대로 하니까요.
- 필립 듀포 (Philippe Dufour), 현존하는 지상 최고의 워치메이커
NOMOS의 시계들은 담백하다. 화려하지도 않고, 색이 돋보이지도 않다. NOMOS의 시계들은 Plain하다.
하지만 기술력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더 화려하다. 대부분 시계 메이커들은 더 이상 자체적으로 무브먼트를 개발하지 않는다. 기술력이 부족하고 기술할 자원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고급 회사(예: 아 랑게 운트 죄네, 바쉐론 콘스탄틴, 필립 파텍 등)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스와치그룹의 ETA 무브먼트를 구매하거나 가져와 약간 수정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ETA 무브먼트는 최고 수준의 무브먼트이니 제대로 무브먼트를 개발하지 못할 거면 그냥 ETA를 쓰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다. 이런 시계 산업에서 NOMOS는 단연 돋보인다. 시계 무브먼트를 직접 개발하기 때문이다.
직접 무브먼트를 개발하는 회사들 중에서도 사실 NOMOS가 더 돋보인다. NOMOS는 무브먼트를 포함해 부품 95% 이상을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이 정도 수준의 기술력은 정말로 위에서 언급한 아 랑게 운트 죄네나 파텍 같은 최고급 메이커들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NOMOS는 뽐내지 않는다. 멋진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힘주는 법이 없다. 시계가 너무 화려하거나 돋보여 모든 시선이 시계에 쏠리는 경우가 있다. 최근 많은 스위스 시계 제조사들이 시도하는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 시계들이 보통 그런 편인데, NOMOS는 제조를 크게 시도하지도 않는다 (Note: NOMOS의 라인업중에 complication이 없지는 않다. World Time과 Power reserve가 있다).NOMOS의 시계는 전혀 그렇지 않다. 착용자가 누구든 간에, 어떤 옷을 입었든 간에, 어떤 상황이든 간에 NOMOS의 시계는 subtle하고, 착용자의 분위기에 조용하게 스며든다.
Tangente – 가장 Versatile한 “everyday watch”
NOMOS의 시계 콜렉션 중에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팔리는 콜렉션은 아마도 탕겐테(Tangente)일 것이다. 탕겐테는 NOMOS의 첫 제품이기도 하다 (1992년). 나도 탕겐테 라인업 중에서 Ref.139 탕겐테 모델을 갖고 있다.
이 시계의 지름은 35mm로 작은 편에 속한다. 작고 아담해서 어떻게 이 작은 원 안에 엄청난 기술을 집약시킬 수 있었는지 감탄만 나올 뿐이다. 손목에 착 감기는 느낌, 착용한듯하지 않은듯한 느낌, 어떤 옷을 입든 (포멀이든, 캐주얼이든) 튀거나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 느낌 — 이런 느낌들이 탕겐테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느낌’일 것이다.
탕겐테는 굉장히 얇고 가벼워서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 시계를 착용하고 있다 보면 착용하고 있는지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을 정도다.
가격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가 힘들 만큼 합리적이다. 가장 기본 모델인 Ref.101은 $1,900에 구매할 수 있다 (뒷면이 스테인레스 플레이트로 막혀있다. 사파이어 유리로 마감된 모델은 Ref.139, $2,180이다). 200만 원 남짓에 무브먼트를 포함해 95% 이상의 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 및 제조하고, 모든 부품을 직접 조립하며 다른 브랜드와는 달리 독립적인 디자인이 담긴 시계를 판매하는 브랜드는 NOMOS밖에 없다.
Excellent Craftsmanship
NOMOS Tangente 시계에 들어간 완벽한 장인정신은 시계의 여러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다. 시계에 각인되어 있는 숫자들은 전통적인 독일 바우하우스 타이포그래피를 그대로 따랐다.
NOMOS의 매력은 시계를 뒤집었을 때 더 돋보인다. 탕겐테의 경우 시계를 뒤집으면 글라슈테 지방의 시계들의 특징을 잘 담고 있는 스트라이프 패턴과 아주 조그맣게 각인된 Glashutte 지명, 그리고 NOMOS가 처음으로 직접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는 인하우스 무브먼트인 Alpha caliber가 태엽을 감으면 미세한 소리를 내며 아름답게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알파 칼리버의 스트라이프 패턴 마감처리는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 초고가 시계 브랜드인 A Lange & Sohne (아 랑에 운트 죄네)의 무브먼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 랑에 운트 죄네 역시 글라슈테 시계다.
탕겐테의 다이얼은 아래 사진과 같이 galvanized 처리된 white-silver 색을 갖고 있다. 덕분에 들여다보면 탕겐테의 다이얼은 grainy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멀리서 보면 그저 흰색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느 흰색 다이얼과는 달리 탕겐테의 다이얼에서는 훨씬 더 ‘peculiar’함을 느낄 수 있다.
아래 초침 지름에 들어간 나이테 같은 마감을 보라. 탕겐테의 지름 자체가 하도 작아 이런 디테일은 돋보기로 봐야 확인이 가능하다.
시계회사로부터 배우는 제품을 만드는 장인의 정신
제품에 대한 집착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것으로 인식된다. 특히 인터넷,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더욱 이 부분이 많이 강조되는데, 속도와 효율을 추구해 최대한 빨리 시장에 런칭하고 운영하라는 조언이 가장 대중적이다.
그러나 영업과 마케팅이 있기 전에 제품이 존재한다. 제품은 영업과 마케팅을 가능케(enable)하는 것이고, 비즈니스의 출발점이다. 제품을 제대로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는 영업과 마케팅은 아무쪼록 의미가 없다. 그래서 최고의 마케팅은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제품에 대한 집착은 때로 기업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핵심 역량으로 굳어질 수 있기도 하다. 좋은 제품이 기본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나, 좋은 정도를 넘어 사용자들에게 “delight”을 주는 제품은 그리 많지 않다.
NOMOS는 분명 그런 제품이다. 제품에 예술과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어 사용자들에게 행복한 감정을 전달한다.
원문: Craft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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