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에 출연했습니다. 신간 『더 좋은 곳으로 가자』의 내용 중, 15분 내외로 핵심 내용을 추려서 다섯 가지 요령을 정리해보았는데요(사실 시간이 좀 초과하여 녹화는 20분 정도 진행했습니다). 강의를 위해 준비했던 대본을 공유합니다.
강의 대본은 숙지만 할 뿐 달달 외우진 않아서 실제 말한 내용과 대본은 약간 차이가 있다는 점 참고하시고 봐주세요^^ 그럼, 각자의 삶에서 SELF-MADE하시고, 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랄게요.
정문정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 더 좋은 곳으로 가려면’ 세바시 대본
- 최초 공개: 2021. 4. 9
안녕하세요, 작가 정문정입니다. 3년 만에 세바시에 다시 찾아왔어요. 지금은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고요. 전에는 10년간 직장생활을 했어요. 2018년에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냈고, 최근에 『더 좋은 곳으로 가자』란 책을 냈습니다. 지난번 책의 부제는 ‘인생은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였고요. 이번 책 부제는 ‘능력에 요령을 더하면 멋지게 갈 수 있다’ 예요. 전작이 “무례한 세상 속 나를 지키는 요령’이었다면, 이번 책은 ‘무례한 세상 속 나를 키우는 요령’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요령이라고 하냐면, 훈계와 충고와 요령은 다르잖아요. 제가 회사에서 큰 실수를 했을 때 ‘그렇게 정신 상태가 썩어선 아무것도 못해. 내가 네 나이 때는 말이야…”라고 하는 게 훈계고 “자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딴 일하는 게 어때?” 하는 게 충고이고 요령은 “나도 저번에 같은 실수를 했는데 이렇게 하니까 쉽더라. 한번 해봐”하고 알려주는 거니까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돈도 없고 문화적 자본도 없는 사람이 각자도생의 시대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제가 알아낸 요령을 말씀드리려고 해요.
“지금의 모습이 되는데 부모로부터 어떤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았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한참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어릴 때 제 주변엔 닮고 싶은 어른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책을 열심히 읽었어요. 책에는 닮고 싶은 사람이 많았거든요.
이 말을 하고 보니까, 저희 남편이 생각났어요. 저희 남편은 시험용 빼고는 완독한 책이 제가 쓴 책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연애할 때는 저 만나느라 바빠서 그런 줄 알았죠. 결혼하고 보니까 그냥 원래 책을 안 읽더라고요.
근데 제가 놀랐던 건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어요. 공부 열심히 안 하는데 성적은 잘 나오는 사람 있잖아요? 재수 없잖아요? 저희 남편이 딱 그런 느낌인 거예요. 책은 안 읽는데 현명해! 성숙해! 우린 동갑인데? 뭐지? 저 비결은? 그 이유를 남편의 가족과 교류하면서 만나면서 알게 된 거예요. 남편은 주변에 책 같은 사람이 많았네. 저 가족은 대화하면서 비난의 말하기로 빠지지 않고 실질적인 조언을 다정하게 말해주고 있네. 남편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람 책’을 읽었구나. 저는 그전까지 가족끼리는 원래 세 마디 이상 안 하는 건 줄 알았어요.
이 차이는 저 혼자 발견한 게 아니고, 이미 전문가들이 알아낸 거예요. 심리학자 베티 하트와 토드 리슬리는 부모의 계층에 따라 아이들 간에 ‘대화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냈는데요. 3세 정도가 되면 전문직 부모를 가진 아이는 가난한 가정의 아이보다 집에서 약 3000만 단어를 더 듣게 된대요. 말을 많이 거는 부모를 가진 아기들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언어 능력이 높았고요. 언어적 격차뿐 아니라 문화적 경험의 격차도 심각해요.
『20 VS 80의 사회』라는 책에 등장하는 사례를 볼까요? 경제학자 그레그 던컨과 리처드 머네인의 연구에 따르면 자녀가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출은 상위 20퍼센트 가구가 하위 20퍼센트 가구보다 10배 많다고 해요. 이러한 아이들 사이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질 거라는 게 진짜로 무서운 점이고요.
지난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이 시대 키워드가 ‘각자도생’이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스스로 살아남아라! 저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우울했어요. 사회가 도와줄 수 없으니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건데, 우리 남편 같은 환경의 아이는 부모님이 이끌어주겠죠. 돈이 있거나 문화적, 사회적 자본이 있다면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잖아요. 근데 책을 읽어서 문화 자본을 간접 경험해야 했던 저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남편 같은 사람이 후에 성공하면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겠죠. 저 같았던 아이가 이 시대에 잘 안 풀리면 노력이 부족했다고 하겠죠. 이게 진짜 공정한 게 맞는 거예요?
그 고민 때문에 제가 이번에 새 책을 쓰게 된 거예요. 각자도생하라고 하는데, 능력으로 증명하라고 하는데, 주변에 책 같은 사람이 없으면 좌절하기가 너무 쉽다는 걸 저는 일찍부터 체감했거든요. 우리는 살면서 그 누구라도 어떤 좌절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럴 때는 누구든 패닉에 빠져 시야가 좁아져요. 이때 필요한 도구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랑 정보력, 그리고 이것들이 가능하게 하는 예비비예요. 이게 없으면 자꾸 절박해지고, 절박하면 실수하고, 실수했을 때 누군가가 도와줄 수 없으니까 다시 도전할 기회가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반대로 돈과 사회자본이 많은 사람들에게 실패는 경험이 되고요.
저희 남편처럼 문화 자본이 많은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주변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을 듣고 자라요.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게 좋고 요즘은 어떤 분야가 전망이 있고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저 같은 배경의 아이들은 맞춤식이 아니고 지시적이기만 한 언어에만 노출되기 쉬워요. 제가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말, “여자는 선생이 최고다” “공무원 해라” 이런 거요. 일단 내용적으로 본인이 잘 모르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말에는 힘이 없어서 귀에 때려 박힐 수가 없어요. 그냥 발화되는 순간 날아가 버려요. 저도 그렇게 휴지처럼 날아가는 말들에 익숙했죠.
이건 부모 잘못이 아니에요. 그들도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고, 잘 모르지만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다만 제가 묻고 싶은 건 이거예요. 어떤 사람은 단지 운이 좋아서 문화적 유산을 많이 물려받아요. 그런데, 이걸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알아낸 것, 제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핵심이라고 찾아낸 요령은 이거예요. 첫째, 뭐든지 해보지도 않고 ‘해 봤자 별거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기. 제가 어릴 때 뭘 하고 싶어 하면 어른들은 말했어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되는 거야.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걸 보면 사실은 그걸 원하면서도 그걸 원하는 자신과의 괴리를 의식하는 게 괴롭기 때문에 애초에 필요 없는 거라고 무시하기가 쉬워요. 근데 그렇게 되면 영원히 내게 없는 거는 계속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거예요. 저도 한때는 시니컬했죠. 그렇게 되니까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뀌어 버리더라고요.
진짜로 별게 없는지는 해봐야 알아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고, 반대로 또 너무 대단하다고 여겨서 압도되지도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좋아 보이는 게 있으면 그저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어요. 저걸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네? 왜 좋은 거지? 하고 어떻게든 일단 한번 경험해보고 그 후에 온전히 판단하려고 했어요.
세상은 직접 경험해보고 나면 절대 다 똑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이뤄져 있더라고요. “그놈이 그놈이다” 저는 이런 말 싫어해요. 어떻게 그놈이 그놈이에요? 겪어보면 얼마나 다 다른데요.
두 번째, 자기 의지만 믿으면 안 돼요. 제가 보기엔 이건 능력주의가 만든 거대한 음모예요. “의지가 부족하다’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의지로 극복해라’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근데 제가 보기에 진짜 강력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극소수예요. 보통의 사람들이 자기 의지를 너무 과대평가하다가 자꾸 실패하는 것 같아요.
의지의 문제라고만 이야기하면 기득권 입장에서는 너무 좋죠. 성공도 실패도 다 의지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면 얼마나 간단해요? 얼마나 으스대기 좋아요? 사회 구조를 개선할 필요도 없죠.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을 지켜보니까 특별히 의지가 강력한 게 아니라 그걸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더라고요. 예컨대 연예인이 출산 후에 바로 10킬로 빼는 걸 대단한 의지라고 치켜세우는데, 여러분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회사 가는 것처럼 그들은 매력자본을 가꾸는 게 직업이고 트레이너가 있고 식단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고 살 못 빼면 위약금 낸다고 계약서에도 쓰여 있고 이렇단 말이죠.
오늘부터 최소한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겠어, 다짐할 게 아니라 독서모임에 가입하면 돼요.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진리가 있었어요. 그게 바로 뭐냐면, 일단 ‘마감이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예요. 그걸 알고는 진짜 너무 억울했어요. 그전에 저는 제가 의지 약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회사에 다니며 글을 썼는데, 그걸 안 후로는 ‘글을 써야지!” 다짐한 게 아니라 일단 마감 일정부터 만들었어요. 글쓰기 모임에 가서 반강제적으로 원고 마감 일정을 잡았고, 잡지사 사람들에게 “원고료 조금만 받거나 안 받아도 되니까 원고 좀 실어주세요” 부탁했어요. 그렇게 강제적으로 마감을 만들었어요.
이번에 제가 책을 내고 나니까 사람들이 저보고 대단하대요. 어떻게 갓난아기를 키우면서 했어요? 의지가 대단하대요. 대단하긴 뭐가 대단해요. 그냥 마감이 있으니까 하는 거예요. 내 의지를 믿는 게 아니라, 안 할 수 없도록 환경을 만들어서 최종적으로는 고민하지 않고 하는 단계, 의지가 아닌 습관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세 번째, 앞의 의지를 믿지 말라는 거랑 연결되는 건데, 돈을 써서 새로운 걸 배우면 좋아요. 그럼 의지가 별로 없어도 하게 되거든요. 헬스장 가는 거 빠지는 사람은 많은데 그런 사람도 필라테스는 절대 안 빠져요. 비싸니까 돈 아깝거든요. 돈이 아깝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할 수 있어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 일단 당장의 돈을 버는 건 중요하죠. 그런데 이렇게 받은 작고 귀여운 월급이 너무 소중하니까 자기에게 돈 쓰는 게 너무 아깝게 여겨져요. 그냥 퇴근 후에는 집에만 있게 되는데, 이게 그때만 할 수 있는 경험치와 기회를 날려 버리가 쉬워요.
문화 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투자한다는 개념을 갖기가 어려워서 자꾸만 같은 자리에 머무릅니다. 부모 돈이 아닌 자기 돈으로 벌어서 배우는 사람들은 이때 진짜 눈빛이, 흡수력이 달라요. 부모 빽이 없는 사람이 여기서 오히려 유리해져요. 더 좋은 곳으로 가려면 이때 꼭 자기에게 투자해야 해요. 최소 10프로, 가능하면 그 이상 자기가 배우고 싶었던 걸 배우면서 안목을 키우고 취향을 쌓으면 30대 이후에 자기 몸값을 올릴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카피라이팅, 사진, 글쓰기 같은 걸 계속 배웠고 그걸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어요.
넷째, 성장하고 싶으면 새로운 자극을 주는 새로운 사람들을 자꾸 만나야 해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평균이 나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지고는 퇴근하고 회사 사람 일부러 안 만났어요. 의식적으로 퇴근 후에는 다른 회사 사람 만나고, 다른 일 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있는 사람을 만났어요.
“약한 연결의 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연구했죠. 마크 그라노베터가 ‘약한 연결의 힘’ 이야기했고요. 이건 잘 아는 사람보다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 약간 아는 사람한테 새로운 기회를 소개해주기 쉽다는 유명한 이론이죠. 같은 맥락의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덜 교육받은 사람들이나 사회의 하위계층은 같은 계층 내의 강한 연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약한 연결이라고 해도 그 계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좀 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약한 연결은 실제로 더 높은 계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한마디로 깊이 아는 사람 말고 조금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성공하기 쉽다는 거예요. 만나는 사람만 자꾸 만나면 새로운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질투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멋지다고 생각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닮아가요.
마지막으로, 자기가 자주 등장하는 장소(배경)를 정해야 해요. 좌식 테이블에 가면 구부정하게 있게 돼요. 미술관 가면 어쩐지 우아한 척하게 돼요. 어떤 곳에 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공기를 느끼면서 거기에 어울리는 척 연기를 하게 되고 그 기운이 몸에 익으면 어느 순간 그 공간에 진짜로 어울리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편안한 곳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가능한 자꾸 어색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곳으로 가야 해요.
저는 의식적으로 회사에 다닐 때 놀더라도 파주 출판단지 가서 놀았어요. 시간 나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 있었어요. 매일 가보면 베스트셀러의 흐름이 보이고 신간들이 보여요. 처음에는 나도 책을 쓰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자꾸 보다 보면 어,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의 변화가 핵심이에요. 어떤 분위기에 자꾸 있다 보면 하고 싶던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라던 마음이 “생각보다 해볼 만한데”로 옮겨지는 거예요.
내게 주어진 조건이 좋지 않다고 해서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이런 경험을 반드시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딘가 도전하고 싶어질 때 솔직하게 상태를 말할 수 있고 긍정적인 지지를 받거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원하는 인생을 사는 길에 가까워지거든요.
제가 책에서 『더 좋은 곳으로 가자』라는 제목을 쓴 건 결국 그런 뜻이고요. 더 높은 곳으로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꾸 어떤 수저를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지금 영 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지금 아니면 끝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불안으로 밀어 넣잖아요. 물론 그 말들을 아예 다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 걸 믿으셨으면 좋겠어요. 각자 자기의 삶에서 애써 더 좋은 것들을 옆에 두시고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걸 믿으셨으면 좋겠어요.
자수성가란 말을 영어로는 ‘SELF MADE MAN(WOMAN)”이라고 하는데요. 자기를 만드는 건 셀프라는 말 참 씩씩하지 않나요? 물은 셀프, 나를 만드는 것도 셀프! 우리 담대하게, 더 좋은 곳으로 갑시다. 함께,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문: 정문정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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