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prit de l’escalier(계단참에서 생긴 생각).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의 경험으로부터 발생한 프랑스 관용어다. 친구 집에서 한참을 떠들고 난 후 계단을 내려가 현관에 도착할 때쯤 ‘아, 그때 이런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란 생각이 드는 상황을 표현한 말로, 후회를 나타낸 대표적인 표현이다.
후회는 이처럼 시간이 지난 후 몰려온다. 수많은 영화에 나오는 타임머신도 모두 후회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손에 쥘 수 있다면…” 하고 바라는 생각과 욕망 또한 후회스러운 일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그 실패의 팔 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후회다.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란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실패를 맛보는 것이다. 후회의 힘과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삶은 어쩌면 덜 후회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란 합리적인 의심까지 들 정도다. 후회하는 우리네 모습은 서로 꽤 닮아있다.
나는 그것을 왜 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는 그때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까?”
“나는 그것을 왜 꾸준히 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을까?
이 후회의 말들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알려진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이야기는 이 질문들을 하나로 엮고 만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계단참에서 드는 후회의 마음을 멋지게 표현한 문구다(다만 이 문구의 번역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후회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
후회는 시간과 밀접한 상관이 있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거짓말처럼 줄어들게 되거나,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여 하지 못한 무수한 일이 결국 후회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시간을 초월해야 한다. 시간이 많다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 혹은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의지와 내 실천이 더 중요하다. 그 의지와 실천이 가동할 때 비로소 우리의 후회는 줄어들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후회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첫째, 지금 당장 가장 하기 싫은 그 일 하기
그 일 말이다. 지금 나와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미루고 미루던 일 또는 지금 당장 하기 싫은 일들. 내겐 양치가 그렇고, 어학 공부가 그렇고, 운동이 그러하며 글쓰기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이것들을 해내면 기분이 좋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후회가 되어 밀려온다. 시간이 있음에도 마음먹은 것들을 하기 싫다고 미루다 보면, 시간이 흐른 뒤 시간을 낭비했다고 자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의 하기 싫었던 마음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 자신을 다그치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붓게 될 것이다. 낭비한 시간에 대한 후회가 더 큰 시간 낭비라는 것을 잊은 채.
둘째, 선택할 때 영혼을 갈아 넣지 말기
또 다른 후회는 선택으로부터 온다. 살아오면서 후회 없는 선택을 얼마나 해봤는지 묻고 싶다. 내 대답은, 후회 없는 선택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선택을 했어도, 선택했거나 또는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늘 있어왔다. 후회라는 마음이 있는 한 세상에 ‘완벽한 선택’은 없는 것이다.
선택 이후에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결과는 추억으로, 그와 반대되는 결과는 경험으로 쌓으면 된다. 거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같은, 내 능력 밖의 것들도 제대로 선택하려 아등바등 살아오던 것을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난 무언가를 선택할 때 온 영혼을 갈아 넣지 않기로 결심했다.
실패한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게 더 어리석은 법이다. 영혼을 갈아 넣으면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하게 된다. 우선 선택하고,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남는 장사다.
셋째, 후회는 없을 수 없다고 인정하기
앞서 말했듯이, 완벽한 선택 따위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후회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어쩌면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후회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후회가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 이불킥을 한다는 건 나를 돌아봤다는 것이고, 그다음부턴 아무래도 이불킥의 횟수를 점차 줄여갈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거나,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클수록 우리는 오기를 만들어내고 동기를 키워갈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이룬 것들의 많은 것들이 후회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회하지 않을 일을 만들기보다는, 후회는 어찌할 수 없으니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그 후회를 줄여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더 낫다.
마치며
후회가 실패를 낳는다면? 후회하지 않으면 실패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거나,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린 경우가 참 많았다. 후회했지만 후회할 일이 아니었고, 후회하지 않았지만 후회할 일로 뒤바뀐 일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게 아닐까. 지금 당장 하기 싫은 일을 해보는 것. 선택할 때 내 영혼을 갈아 넣지 않는 것. 후회는 없을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인정하는 것. 나는 이것이, 내 삶에 있어 후회를 줄이며 나를 지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이 필자의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