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창밖엔 봄비가 내린다. 요 며칠 하늘에 잔뜩 낀 미세먼지를 씻어내는 이 비는, 돋아나는 새싹을 흠뻑 적셔줄 이 비는, 차디찬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을 알리는 이 비는, 동네 작은 빵집엔 그저 무거운 물줄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아무래도 오늘 장사는 그른 것 같다. 일기예보에 봄비가 내린다고는 했지만, 내심 비켜갔으면 하는 기대로 끝끝내 고집을 피운 게 화근이었다. 전날 반죽을 준비하고 당일 새벽에 빵을 만드는 패턴이라 사실 이런 날엔 반죽 양을 줄였어야 했다. 몸집만큼 잘 부풀어 오른 반죽이 오늘만큼은 버겁기만 하다.
길바닥이 젖은 만큼 작업장도 축축해졌다. 그럼에도 숨을 쉬던(발효하는) 빵은 대견하게도 반죽막을 힘껏 차고 올랐다. 이를 보고 있자니 평소와 다름없이 빵을 굽지 않을 수 없었다. 들쭉이지 않는 일정한 힘으로, 빠르지만 꼼꼼히, 모난 것 없이 반듯한 모양으로.
커다란 반죽을 정량으로 떼어낼 때엔 두 손이 바쁠 뿐이지 머리는 느긋하다. 별별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해서 아무런 모양 없이 헐렁해진 반죽 덩어리에 별안간 ‘너는 꼭 주인을 찾아야만 해’ 같은 실없는 주문을 건다거나, 유난히 예쁘게 모양이 잘 잡힌 반죽 덩어리엔 안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같이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꼭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파고든다. 어차피 손님도 없어서 팔리지도 않을 건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지? 누군가의 식탁은커녕 쓰레기통으로 직행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 대체 나는 뭣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지? 만신창이가 된 마음이 끊임없이 자문한다. 대답 없는 질문은 그렇게 계속 새벽을 배회한다.
사실 빵이 남은 것 없이 다 팔린 다음 날이면 이보다 행복한 순간도 없다. 작은 작업장 안에는 오븐과 작업대 사이를 누비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의 흥겨운 내가 있다. 반죽은 보드라운 살결과 같아서 손에 착 감겨서 원하는 대로 잘 빚어진다. 이 작은 마음은 반죽 덩어리만큼, 아니 그보다 더 부풀어 올라있다. 매일 이러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축 처진 건 마음뿐만 아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분을 머금어 그런지 평소보다 반죽도 어째 늘어진 느낌이다. 빵. 나의 정성이 밀가루와 물과 섞여 구수한 향을 내는 빵. 어딘가 식탁에 놓여 누군가에게 맛있는 기쁨을 주었으면 하는 빵. 푸짐한 한 끼를 차릴 여유가 없는 이에게 위로를 전하는 기특한 바람이 깃든 빵이거늘. 요리 한 접시에도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나인데, 이 빵에겐 오죽하랴. 밖에는 눈치도 없는 비가 아직 그칠 줄을 모른다.
그래도 어쩌랴, 허연 밀가루는 이미 물과 섞여 반죽이 되어버렸고 내 손을 거친 반죽 덩어리는 나란히 서서 오븐 앞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애써 노래를 흥얼거렸다. 커피를 찾는 것도 바로 이때쯤이다. 따끈한 커피 한 모금에, 동이 터 오르는 새파란 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맞은편에 서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십여 년 전, 교복을 입고 수시로 드나들던 이 서점은 내가 인천을 떠나 있을 때에도 매일 아침 아홉 시 반이 되면 불이 켜졌을 테다. 지금은 대를 이어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데, 여자 사장님과 부쩍 친해져서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됐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1995년 서점이 생긴 이래로 단 한 번도 ‘임시’ 휴일은 없었으며 명절 당일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문을 연다고 했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는 명절 전날이나 혹은 다음 날 하루 정도는 쉰다고 했다. 이마저 오랜 가족회의 끝에 결정된 것이라고 했다.
이제 고작 삼 개월째 작은 빵집을 운영 중인 나에겐 가뜩이나 커다란 간판이 더 크게 보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점을 드나드는 학생이 드문 방학에도 저 커다란 문은 아무 이유 없이 닫힌 적이 없다. 매일 아침 부부가 커튼을 치고 불을 켜는 장면과 함께 감히 그 마음을 짚어본다. 단 한 명의 손님이라도 편하게 책을 읽었으면 하는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동네 한편을 지키는 우직함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빵이 다 팔리지 않으면 다른 것보다 애써 만든 빵이 버려지는 게 제일 맘이 쓰리다. 당일 아침에 만든 빵은 당일에만 판매하는 게 원칙이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유지비며 뭐며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이긴 하지만, 막상 계산기를 두드려보기 전까지는 그저 나동그라진 빵의 안위가 걱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일을 준비해야 하며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받아들여야만 한다. 책임을 전가하거나 누군가와 나눌 수도 없고, 버겁다고 잠시 쉬어가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곤욕인 것은 어찌 됐든 간에 내일 만들 빵의 반죽을 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틑 날 새벽엔 어김없이 또 빵을 구워야 한다. 어느 날은 몸과 마음이 지친 나머지 미치도록 괴로웠다. 그날 그 순간 마음은 또다시 아득히 깊은 곳에 처박혀버렸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우문현답이 떠올랐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었다. 눈치도 없는 VJ가 어느 사장에게 장사가 안될 때는 대체 어떻게 버티냐고 물었다.
아유, 뭘 그런 걸 물어.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준비하면 되지. 뭐, 오늘 장사 안됐다고 내일도 안될 일 있나. 어제만 신경 쓰면 오늘은 못 해.
사장님은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 유쾌하게 대답했다. 당시엔 방송이니까 하는 말씀이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기억이 따끔하게 스쳐 간다.
나도 그래야만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 팔려나갈 것처럼 빵을 굽고 또 구워야 한다. 기왕 ‘동네 작은 빵집’으로 자리 잡기로 한 이상 이 모든 것이 익숙해져야 한다. 한낱 이 작은 빵집을 찾아준 사람들에게 보답할 것이라곤 빵 밖에 없다. 그래서 날이 좋든 궂든 간에, 나는 항상 이곳에서 빵 고수운내를 풍겨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 않은 일이다. 아무도 내게 주지 않은 책임을 품는다는 것, 단언컨대 그건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일이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칭한 ‘동네 작은 빵집’이라는 타이틀이 가끔은 무겁게 느껴진다.
또다시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이번엔 볼륨을 더 높여보았다. 무거운 비로 축 처진 공기에 혹여 음악도 처질까 싶어서다. 나긋한 멜로디가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면서 둔탁한 비트로 바뀌었다. ‘오로지 한 길 로망’을 외치며 시작되는 이 노래로 말할 것 같으면 십 년도 더 전에 머나먼 타국에서 듣던 노동요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 새벽녘에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봉고 차 위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더 비장해지자고(?) 다짐했던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바보처럼 서러워도 걸어야 할 길이었다고, 그리해야만 했다고.
띠디 띠디- 오븐 타이머가 요란하게 울린다. 느긋하게 즐기던 컵을 황급히 내려놓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제 막 오븐 밖으로 나온 깜빠뉴는 겉은 반질하고 윤기가 흘렀다. 뒤이어 달콤한 무화과 깜빠뉴와 구수한 통곡물빵도 나왔다. 기다란 바게트를 마지막으로 어느새 진열대엔 빵이 그득했다. 틈 없이 빵이(그것도 내가 만든 빵) 가득 찬 진열대를 보고 있자니 참 신기했다. 밀가루가 물과 만나고 내 손을 거쳐 빵이 된다는 것 또한 분명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오픈 시간이 다 되어서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엔 비구름이 부랴부랴 걷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봄비가 아니던가. 긴긴 겨울이 드디어 끝났음을 알리는.
하아, 그나저나 오늘도 다 구웠다. 단 한 번도 빵이 남아돌지 않은 것처럼!
PS. 글을 쓴 당일, 그러니까 봄비가 내린 토요일엔 기분 좋게 모든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평소보다 빵이 더 일찍 나갔거든요. 새벽에 잠깐 커피를 마시면서 쓴 몇 줄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문장 투성이었습니다. 글을 수정하고 다듬으면서 순화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자영업 하는 분들 대부분 공감하실 것 같아요. 우리 모두 힘내요!(갑자기?) 현재 참여 중인 수플레 매거진 덕에 드문드문 소식 전합니다.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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