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한국을 말할 때면 빼놓지 않고 언급하게 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노인들의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이죠. 이 두 가지 사실은 물론 그 자체로 충분히 심각한 것입니다만, 한국을 한국답게 만드는 것이 뭔가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더욱 의미심장해 보이는 사실들이기도 합니다.
한국을 한국답게 만드는 것이 뭘까요? 저는 바로 ‘효’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지배해 온 강력한 이데올로기죠. 한국에서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식을 아끼는 사람이라거나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꼽곤 했습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말이죠.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뭔지 알아내는 주요한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바로 대중문화, 그것도 드라마 속 주제를 살피는 겁니다. 한국 드라마에는 영원히 반복되어온 주제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조부모, 부모, 손자손녀로 이어지는 대가족입니다. 그냥 드라마 주제가 ‘엄마’라고만 말해도 사람들은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세상을 불태운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부모에게는 차마 덤빌 수 없다는 금기가 반복되는 것이 한국 드라마입니다. 특히 막장드라마들이 이렇죠. 이 방면의 좋은 예는 바로 드라마 <대장금>입니다. 주인공 장금이는 죽은 부모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평생을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살죠.
어린이 쪽은 어떨까요?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한 주제지만, 한국에서는 유달리 가족 윤리와 효의 윤리에 얽혀서 ‘반칙 중의 반칙’인 요소가 됩니다. 한국에서 어린아이를 울리거나 버리는 일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빈다. 얼마 전 나온 영화 <승리호>는 이 주제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인생에 희망을 잃어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목숨을 던질 만큼 적극적으로 변하는 기적은 종종 어린 자식 때문에 생겨납니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구원받고 생의 목적을 얻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한국 문화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린아이 보기 부끄러워서 열심히 사는 부모, 나이 들어 늙어버린 부모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자식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사회
부모는 아이를 위해 삽니다. 아이는 부모를 공경하고 훗날 책임집니다. 이는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윤리입니다. 한국은 너무나 가난했던 해방 이후의 가난 속에서도 지독한 교육열로 뛰어난 인력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자식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서 과로와 갑질에 시달리며 일했던 삶,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지독한 일이든 참아내는 윤리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적이 똑바로 선다는 뜻에서, 이건 아이를 통한 구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건 비슷하겠지만, 제가 보기엔 한국 같은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지독한 가난을 탈출하여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 열의 없이 한국이 성공할 수 있었을 리 없습니다.
2.
그런데 왜 저는 이 글을 높은 자살율과 낮은 출산율을 말하면서 시작했을까요? 제가 말한 것과 이 사실을 조합하면 하나의 그림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깨어진 가족’이죠. 버림받고 외로운 노인들과 더이상 아이를 만들고 가족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청년들 이야기입니다.
한국을 한국답게 만들던 문화가 역사 이래 가장 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다는 뜻입니다. 불과 반세기가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너무나 변해 버렸습니다. 가족을 위해 살고 죽던 사람들이 이제는 개인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가족 이야기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고까지 말하는 실정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정말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저는 아파트의 구조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가 지역 사회를 파괴하고 가족 문화를 파괴했다는 것이죠. 한국의 아파트는 사생활이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파트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집에 들어오기 싫으니 가족들이 바깥으로 떠돌아다니다 잠만 잡니다. 그게 아파트입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닙니다. 한국의 빠른 발전이 지역사회와 가족을 파괴한 것도 있습니다. 극심한 변화 속에서 모든 공동체가 깨어졌고, 가족도 그 일원이 된 것이죠. 대표적인 사례가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죠. 성공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에 가족이 돈 버는 기계처럼 변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방에서 땅 팔아 자식을 교육시키고 서울로 보내 후원했던 노인 세대의 일을 현대에서 더 큰 스케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인 세대가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조금씩 자기를 잃어왔습니다. 이것은 정체성 위기입니다. 정체성은 삶의 의미를 주고, 살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지 가르쳐 주죠. 그래서 효 문화는 어린이부터 청장년, 노인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그 문화가 무너져 내리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체성이 변화하는 것이라면, 삶의 목적이나 의미에 대한 다른 답이 있어야 합니다. 효의 문화가 다른 지속 가능한 가치관으로 대체되었어야 합니다.
목적이 없는 삶의 문제, 좋은 사람이 뭔지 도통 알 수 없게 된 세상의 문제가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부자 나라의 국민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정작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좁은 골목길 옆 평상에 모여앉아 잡담하는 동네 아줌마들을 그리워합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자신의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여전히 미래를 위해 참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다 질문에 부딪칩니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요? 나는 뭘 위해 참는 것일까요? 하고 싶은 게 있기는 할까요?
이제 한국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한국 사람은 왜 공부하고, 왜 살고 있을까요? 답은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안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한국인은 무엇을 위해 자신을 지켜야 할까요?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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