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제 시작인 것 같습니다. 2008년 경제위기 때처럼, 혹은 IMF시절처럼 주가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강력한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처럼 살면서 이 위기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기도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는 사스나 메르스와는 다릅니다. 그때는 이렇게 세계가 멈춰서고 경제가 폭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세계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어 영원히 바뀔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세계인들이 던지고 싶은 질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겁니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 중국 같은 나라와 긴밀하게 경제 협력 체제를 맺었던 것이 문제였을까요?
- 관광산업을 키우는 것은 환경뿐만 아니라 보건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 앞으로 나라와 나라는 문을 잡아 걸어야 할까요? 아니면 세계 정부를 수립해서 다른 나라여도 문제가 발생하면 주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조기 진압해야 할까요?
- 의료보험은 어떻게 할까요? 부족한 의료 인력이나 장비 수급 문제, 의학 산업 전반의 현실은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 민주주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보 공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의 동선 파악을 위해서는 과감히 프라이버시를 침해해도 될까요?
- 신천지처럼 정체를 숨기는 컬트 사교 집단은 국가를 넘어 세계적 위협이 되는 것으로 판단할까요?
- 일상생활 속 관습에서 밥을 나눠 먹거나 볼을 비비는 인사 등의 관습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 사람이 많이 모이는 축제나 종교 행사는 죽음의 파티가 되는 걸까요?
- 되도록 재택근무를 보편화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콜센터 집단 감염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 게 아닐까요?
- 바깥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라이프스타일을 개발해야 하는 걸까요?
이 수많은 질문 속에서, 우리는 자연히 코로나19 같은 위험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어떤 나라와 어떤 시스템이 바람직한지 찾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제기한 모든 질문에 다 답하는 것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긴밀히 연결된 두 개의 사실만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한 나라를 평가하는 데 있어 보건이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세상이 올 겁니다. 자연히 공중 보건을 믿을 수 없는 나라와의 소통은 자제하게 되겠죠. 여기서의 소통은 무역, 관광뿐만 아니라 투자까지 포함됩니다. 이번에 중국의 공장이 멈췄죠. 그 큰 나라가 통째로 멈춘다는 것은 세계 경제에 큰 위험이 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몇 달 생산이 멈추기만 해도 산업 경쟁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빨리 굴러가니까요. 세계는 중국에 공장을 세우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겁니다.
보건은 서방 국가의 정치에서 더욱 중요한 주제가 될 겁니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본래 악명이 높은데, 그게 이번 일을 기회로 다시 큰 주제가 될 것입니다. 인종적 화합의 문제도 보건, 선거 문제와 얽혀 악화될 수 있습니다. 선거는 본디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기회가 되는데,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어떤 나라가 공공보건이 훌륭한 나라인지 자문하게 될 것입니다. 보건이 국방 이상으로 중요해진다는 겁니다.
한국이 새로운 세계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이유
지금 세계는 중국과 일본을 비판하고 한국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의료 한류’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삶의 질을 따질 때 의료는 아주 기본적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의 습격 속에서 빨리 검진도 못해내고, 통계도 믿을 수 없고, 물건 사재기로 공포감이 올라올 때 사람들은 묻게 됩니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가,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미국도 일본도 유럽도 한국을 지목하는 것이죠.
왜 저 나라는 되는데 우리나라는 안 되는가?
이것은 근본적인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의료 모범국가로 떠오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한국이 유일한 의료 모범국가이며 의료체계의 확립이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된다고 주장한다면, 세계는 한국을 모방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지적할 것은, 보수적 세계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리라는 것입니다. 세계는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는 그런 문제들이 ‘언젠가는 해결되겠지’라고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들은 한국을 제외하면 백 년 이상 현재의 지위를 지켜온 나라들입니다. 그래서 대개 보수적입니다. 지나간 황금기를 그리면서 세계의 질서가 그때처럼 유지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그들을 만든 것은 과거니까요. 그래서 과거로부터 내려온 것들을 전통이나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소중히 간직합니다. 전통의 미명 하에서 사회는 느리게 굴러갑니다. 낡고 적체된 문제를 외면하고, 그러면서도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은 유지합니다.
코로나19는 그렇게 낡은 체제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어떤 나라 사람들이 지금 상황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들은 묻습니다.
한국은 저렇게 많이 진단하고 저렇게 저렴하게 진단을 한다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는가? 우리는 이렇게 노벨상 수상자가 많고, 명문대를 많이 가지고 있고, 많은 돈을 쓰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19는 보여줍니다. 세계는 지금 당장 개혁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가장 최근 선진국이 된 한국이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이미 경제 선진국이고 민주화된 나라이면서도 개혁의 동력이 남아있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IT 문화의 선두주자로서 코로나 사태에서도 기술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서구는 깊은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드라이브 스루 같은 시스템 말이죠.
사실 기술적인 측면으로야 이런 기술이 없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대중입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세계 최초로 만든 것은 한국이 아닐지라도, 대중적이고 문화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한국입니다. 이미 선진국인데도 선진적이고 미래적인 것에 도전하려는 정신이 남아 있는 겁니다. 민주주의와 경제선진화, 그리고 개혁 정신의 3가지를 모두 갖춘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엄청난 기회 앞에서, 발목을 잡는 무리를 뿌리쳐야 할 때
세계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모두가 느낄 때, 더 이상 세계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겁니다. 세계는 더 합리적이고 빠르게 판단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지금 세계의 정치권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은 그 반증입니다.
한국은 지금 엄청난 기회 앞에 있습니다. 그걸 사이비 종교나 보수 정치권의 비판과 발목잡기로 망치지 말고, 행복해지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