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환경 열사의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씩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다. 분명 얼마 전에 분리수거를 하고 왔는데, 며칠 사이에 분리수거 통이 넘칠 정도로 쓰레기가 왕창 쌓여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는 ‘지구 온난화’와 ‘수입되지 않는 쓰레기’, ‘사실은 재사용이 불가능한 분리수거 품목들’ 같은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떡볶이나 김치찌개를 먹고 난 후 빨간 기름으로 오염된 플라스틱 용기를 분리수거 통에 담기에는 누군가가 재분류 작업을 해야 한다는 죄책감이 들었고, 일반 쓰레기로 종량제 봉투에 담기에는 부피가 너무 커서 불편했다.
열심히 설거지를 해도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배달 음식은 식사 준비와 정리에 대한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서 주문하는데, 실링기로 밀봉해 덕지덕지 붙어 떨어지지 않는 비닐 조각은 번거로움과 스트레스의 원흉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쌓여 가는 쓰레기 때문에 오히려 쓰레기장에 자주 가야 했다. 전혀 간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쓰는데 더 귀찮아지다니.
그렇다고 퇴근 후에 매번 식사를 차려 먹을 에너지는 당연히 없었다. 코로나가 창궐해버린 이 시대, 외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기도 부담스럽고, 배달/포장 음식을 끊을 순 없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1.
시작은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있던 작년 여름, 런치 메이트인 선배가 아이를 품고 있었던 시기라 밖에서 점심을 먹기가 더욱 꺼려졌다. 도시락을 싸 올 여력은 없었고 고민 끝에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회사에서 먹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만 하던 ‘다회용기 포장’에 도전하기로 했다.
선배는 나보다 한발 앞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던 사람이었다. 재사용이 가능한 대나무 빨대도 선배의 제안으로 함께 구입했었다. 그런 그와 함께라면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고, 사장님이 전화를 마무리하려고 할 때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나 : 저… 제가 통을 가져가려고 하는데요.
식당 사장님 : 통이요?
나 : 네, 일회용 용기에 포장하지 마시고, 제가 가져가는 통에 담아 주실 수 있나요?
식당 사장님 : 아… 네…
사장님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듯이 이런 요청을 하는 손님이 처음이었을 거다. 잠시 후 선배와 함께 가게에 갔다. 테이블이 다섯 개 정도인 작은 가게였지만 점심시간이라 만석이었고, 사장님은 정신없이 주문을 처리하고 계셨다. 주섬주섬 가져온 용기를 꺼냈다.
포장 용기를 꺼내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사람들로 꽉 찬 매장 안에서 집에서 쓰는 허술한 반찬통을 꺼내는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억척스러워 보였다. 정신없이 바쁜 사장님과 직원을 보며, 괜한 번거로움을 초래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반찬통에 담긴 오믈렛을 받아 들고 가게 밖을 나왔을 때, 여러 마음을 비집고 튀어나온 건 뿌듯함이었다. 내가 쓰레기를 줄였다는 뿌듯함.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작은 용기를 냈다는 성취감도 있었다. 식당 입장에서도 적은 금액이지만 일회용 포장용기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사용하지 않은 플라스틱 용기의 비중이 전 세계의 쓰레기를 생각하면 티끌보다도 작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내 마음이 좋았다. 생각보다 더 긍정적이고 화사한 마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2.
기세를 몰아 저녁 식사도 이 반찬통에 포장하기로 했다. 퇴근 후에 자주 가는 갈비찜 가게에 가서 다회용기를 꺼내며 포장을 부탁드렸다. 역시나 조금 당황하셨지만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셨다.
갈비찜 2인분의 양이 어느 정도 될지 몰라서, 뚜껑으로 밀폐가 되는 락앤락 계열의 김치통과 점심때 오믈렛을 포장한 용기를 함께 드렸다. 잠시 후 나온 갈비찜은 김치통이 아니라 함께 드린 허술한 용기에 넘칠 듯이 담긴 채 내 앞에 놓였다. 일단 받아 들고 가게를 나섰는데, 걱정이 앞을 가리는 것이다. 점심때는 포장된 음식을 손에 소중하게 들고 회사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야 했다. 자전거 바구니에 이걸 그대로 넣고 달렸다간 분명 뚜껑이 열리고 내용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매장 앞에는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래, 여기서 어떻게든 재정비를 하고 가자.
갈비찜을 김치통으로 옮길까? 김치통은 날개 뚜껑으로 잘 고정되는 타입이라 훨씬 안전할 것 같은데. 근데 지금 갈비찜을 옆으로 부으면 육수가 통 겉면에 다 묻고 더러워질 거야. 저 통을 당장 씻을 수도 없는데. 흠… 그럼 저걸 통째로 김치통에 넣어볼까?
가장 번거롭지 않고 안전한 방법이 김치통에 포장된 용기를 그대로 넣고, 김치통의 단단한 뚜껑을 닫는 것이었다. 쏙 들어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 허술한 용기는 김치통에 꽉 꼈고, 그 위에 뚜껑을 닫을 수가 없었다. 그냥 김치통에 갈비찜을 부어서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안에 넣었던 용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 허술한 용기의 뚜껑이 열렸다. 갈비찜이 들어 있던 용기 전체가 살짝 공중에 떠 있던 상황이었다. 뚜껑과 본체가 분리되고, 무거운 본체는 중심을 잃고 옆으로 기우뚱하며 하강했다. 정신을 차리니 매장 앞 바닥과 의자는 갈색 육수 범벅. 모든 건 1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 망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갈비찜은 무사하고 국물만 엎어졌지만 당황한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일단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매장 앞에서 꼼지락대고 있는 나를 지켜보시던 사장님은 이상한 기운을 눈치채곤 밖으로 나오셨다.
나 : 제가 이걸 옮기다가 쏟아가지고…ㅠㅠ
사장님 : 아이고! 이걸 아까워서 어째…
나 : 그래도 국물만 쏟아진 것 같아요ㅠㅠㅠ 이게 뚜껑이 열릴까 봐 옮기려고 하다가….
사장님 : 아유… 이거 다시 넣어 줄게요.
나 : 죄송해요… 걸레나 휴지 같은 거 주시면 제가 치울게요.
사장님 : 아유,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희가 치울게요.
화가 날 법도 한데, 친절하신 사장님은 육수가 묻은 내 옷과 신발을 보곤 매장 내 화장실에서 닦고 가라고 안내해 주셨다. 휴지에 물을 적셔 적당히 닦곤 화장실의 페이퍼 타월을 왕창 뽑아 밖으로 가져갔다. 내가 흘린 육수를 열심히 닦아 내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다시 화장실로 가서 또 페이퍼 타월을 왕창 가져왔다.
괜히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다고 난리를 쳐서 남의 가게 앞에서 사고나 치고… 처음부터 김치통에 담아달라고 제대로 말하든지… 차라리 그대로 가져가든지… 아님 그냥 김치통에 붓기만 했어도… 제로 웨이스트는 무슨, 사고 쳐서 페이퍼 타월을 이렇게 낭비하고 있는데… 난 환경 파괴범에 쓰레기 메이커야…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사장님은 김치통에 안전하게 담은 갈비찜을 다시 건네주셨다. 깨끗하게 씻은 사고뭉치 용기도 함께. 페이퍼 타월로 바닥을 닦고 있는 나를 보며, 어차피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물이랑 걸레로 닦아야 하니, 직원들이랑 같이 처리하겠다며 괜찮으니 가라고 하셨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곤 자전거에 올랐다. 죄송함과 자괴감에 휩싸인 채 그곳을 떠났다.
3.
몇 시간 전의 화사한 마음이 갈비찜 국물로 얼룩졌다. 아주 푹 젖어 냄새가 났다. 집으로 돌아와 김치통을 열어보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깨끗한 갈비찜이 들어 있었다. 육수도 새로 잘 넣어주신 듯했다.
민망하고 죄송해서 다시는 그 가게에 못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조금 창피하더라도 자주 가서 매출을 올려드리는 게 은혜를 갚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열심히 만들 수는 없었다. 2인분 정도의 양을 안전하게 포장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번뜩!
3단 도시락을 사자!
넉넉한 크기의 3단 도시락 용기와 전용 가방 세트만 있다면, 오늘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자전거 바구니에 넣어도 쏟아질 우려 없이 쾌적하게 음식을 포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있는 반찬통은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라 가방에 넣어도 가방 안에서 움직이고 뒤섞일 수 있는데, 같은 크기의 도시락통을 차곡차곡 쌓아 전용 사각 가방에 넣으면 빈 공간 없이 딱 들어맞으니 그럴 위험도 없었다.
다음 날, 마트에 갔더니 내가 생각한 것에 딱 맞는 락앤락 도시락 세트가 있었다. 크기도 적당하고, 정사각형 3단 도시락에, 보온보냉이 가능한 가방이었다. 도시락 사이즈와 똑같은 전용 아이스팩까지 들어 있었다. 통 하나에는 반찬을 담을 수 있게 3 분할되어 있는 내부 용기도 추가로 있고, 뚜껑도 날개가 달려 똑, 똑 하고 안전하게 닫을 수 있었다.
플라스틱을 줄이려고 플라스틱 도시락을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버리지 않고 오래오래 쓸 것이고, 하나의 재사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앞으로 발생할 수많은 쓰레기를 줄인다면 훨씬 괜찮을 거라는 마음으로, 마음에 쏙 드는 3단 도시락을 집으로 데려왔다.
며칠 후, 다시 갈비찜을 포장하러 갔다.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날은 정말 죄송했다고 말씀드리며 그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새로 도시락통을 구입했다고 했다. 사장님도 예쁘고 좋다고 말씀해주셨다(정말 좋은 분이다ㅠ_ㅠ). 2개의 통에 갈비찜 2인분이 딱 맞게 들어갔고, 나머지 1개에 반찬을 담을 수 있었다. 완벽했다. 어떠한 추가적인 일회용품도 필요 없었다.
도시락통에 포장해온 갈비찜을 먹고 난 후, 단 하나의 쓰레기도 나오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갈비찜, 채소, 각종 반찬이 담긴 크고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5-6개는 나왔을 것이었다. 비닐도, 플라스틱 용기도, 플라스틱 뚜껑도 없었다.
4.
모든 건 역시 아이템빨. 3단 도시락과 함께 나의 제로 웨이스트 배달 음식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배달을 줄이고, 따릉이(서울시 공용 자전거)와 3단 도시락으로 대부분의 음식을 포장해왔다. 기름진 배달 음식을 먹기 전 운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얼마 전 전기 자전거를 장만한 이후에는 조금 더 거리를 늘려 가고 있다.
떡볶이, 치킨, 탕수육, 가츠동, 연어덮밥, 갈비찜, 오믈렛 등등 수많은 음식을 제로 웨이스트로 즐기고 있다. 직접 내가 먹는 음식의 라이더가 되는 방법으로. 배달 팁도 아끼고, 쓰레기도 줄이고, 종종 테이크 아웃 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아무래도 플라스틱 도시락을 사용하다 보니, 붉은 계통의 음식은 도시락통 내부의 이염이 생긴다. 너무 뜨거운 음식을 바로 넣어도 좋지 않고, 바닥에 조금의 변형이 생긴다. 예쁘고 깨끗하게 도시락통을 유지하고 싶다면, 속상하다(나야 나…). 도시락통 이염을 방지하기 위해, 빨간 음식은 최대한 포장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건강을 위해서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자고 마음먹어보자. 제로 웨이스트가 내 건강까지 챙겨주네!)
너무 뜨거운 음식은 보통 기름에서 갓 꺼낸 튀김 요리인데, 튀김 요리를 포장할 때는 바닥에 키친타월을 조금 깔아 두었더니 도시락 바닥과 바로 닿지 않아 안전하고, 기름도 흡수해 좋았다(건강을 생각해도 튀김은 포기할 수 없다!).
이런 번거로움 없이 더욱 편하게 제로 웨이스트 배달(포장) 음식을 즐기려면, 스테인리스 도시락을 구입하면 된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건 템빨이다). 스테인리스라면 뜨거운 음식도, 고춧가루나 고추장이 팍팍 들어간 붉은 음식도 만사 OK!
마치며
제로 웨이스트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용기내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식당 등에서 재사용 용기로 포장하는 챌린지가 벌어지고 있다. 정말 잘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container)’를 내는 것은 정말이지 ‘용기(courage)’가 필요한 일이니까.
일상이 힘들고 에너지가 없을 땐 나도 여전히 배달 음식을 주문한다.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본다.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는 햄버거, 피자, 치킨 등 보통 종이 포장재를 사용하는 음식을 먹고, 조금 덜 피곤하면 그냥 일어나서 나가게 된다. 작은 인식과 작은 행동이 모여 변화하는 일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이긴 하지만 정말이라는 걸 요즈음 느끼고 있다.
지구를 살리려는 거창한 이상도 중요하지만, 그런 마음이 없더라도 제로 웨이스트는 일상을 조금 더 건강하게 한다. 타고난 귀차니스트인 내가 귀찮은 분리수거 때문에 적극적인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 것처럼. 이상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사실 나와 직접적으로 맞닿은 문제로 시작되기도 한다.
원문: 스키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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