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맥스(HBO Max)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상영작 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해 큰 이슈가 됐다. HBO맥스는 인종차별적 묘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잘못된 것이기에 상영 중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 시대의 산물로서, 불행하게도 미국 사회에서 흔한 인종적 편견을 일부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종 차별적 묘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잘못된 것입니다… (중략) 우리가 좀 더 정의롭고 공정하며, 포용적인 미래를 만들려면, 먼저 우리 역사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영화다. 1939년 작품으로 당시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 아카데미 8개 부문을 휩쓸었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도 주말 TV 명화 극장이나 명절 특집으로 빠지지 않고 상영해주고는 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와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의 강렬한 러브 스토리와, 비비언 리의 도도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강인한 여성 스토리와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인종차별적 콘텐츠로 이슈화 된다는 점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졌다. 어쩌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흑인에 대한 차별적 요소가 너무나 당연하게 지금도 사회 여러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덜 민감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지적받는 인종 차별적 요소는 다음과 같다.
- 흑인은 농장에서 일하거나 주인 아가씨의 시중을 드는 노예로 폄하돼서 나온다.
- 흑인 노예들은 이런 삶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들은 무척 평온하고 행복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 백인 우월주의 집단 ‘쿠 클럭스 클랜(KKK)’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타이틀에서 보이듯이, 미국 남북전쟁 이후 사라진 남부 대농장의 삶과 그때로 돌아가고픈 향수(nostalgia)를 느끼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분을 휩쓴 것에 대해 “요즘 어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 없냐”며 비아냥거린 일화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선거를 앞두고 백인 보수층의 지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모든 특권이 백인들의 전유물이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자극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외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픔의 역사가, 누군가에게는 장밋빛 승리의 역사로 기억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얼마나 나쁜지 여러분은 봤죠? 최종 승자가 한국 영화랍니다. 말이 됩니까?… (중략) 어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 없나요?
지금 미국 사회 최고의 화두는 인종차별과 갈등이다. HBO 맥스의 결정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불같이 번지고 있는 항의 시위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뿐만이 아니다.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앤트 제미마 (Aunt Jemima)’라는 팬케이크·시럽 회사는 브랜드에 사용하던 흑인 여성 캐리커처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전형적인 흑인 노예 유모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뒤이어 나비넥타이를 맨 흑인 남성 노인을 브랜드로 사용한 ‘엉클 벤즈 (Uncle Ben’s)’ 제품도 브랜드 로고를 바꾸기로 발표했다. 매우 용감하고 긍정적인 변화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인종차별적 요소에 대해 생각해본다. 영화 제품뿐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나 글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묻어나올 수 있다. 그만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차별에 무감각해져 있을 수 있다.
작은 움직임일 수 있지만, 인식을 바른 쪽으로 환기시키는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박수를 보낸다.
원문: 켈리랜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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