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j, Välkommen
2016년 8월, 그토록 오고 싶었던 북유럽 스웨덴에 터를 잡았다. 한국은 한창 한 여름일 때 이곳에는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난생처음 보는 언어에 둘러싸이자 비로소 스웨덴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2년간의 낯선 곳에서의 항해. 항해의 목표는 이때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사는 것이었다. 일명, 청개구리 같은 삶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렸을 적 많이 들었던 청개구리 전래동화에서 청개구리는 무엇이든 부모님이 시키는 반대로 행한다. 늘 반대로 행동하던 자식을 보고 청개구리의 엄마는 ‘내가 죽거든 강가에 묻어다오’라고 유언을 남겼다. 엄마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청개구리는 비로소 부모님의 말씀을 듣기로 한다. 엄마의 유언에 따라 청개구리는 엄마의 무덤을 강가에 만들었는데, 강가에 만든 무덤이 온전할 리가 있을까. 비가 내리자 엄마의 무덤은 강물에 휩쓸려 가고 만다.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던 청개구리는 너무 슬퍼 비가 올 때마다 개굴개굴 운다는 이야기다.
새드엔딩으로 끝난 청개구리의 삶. 어릴 적 나는 청개구리처럼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배웠다. 청개구리는 내가 닮아서도 안 되고 닮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성인이 돼서야, 청개구리 이야기의 결말이 꼭 새드 앤딩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부모님이나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살지 않아도 충분히 해피엔딩을 맺을 수 있지 않나!
가족과 내가 태어난 사회에서 벗어난 스웨덴에서의 2년만큼은 청개구리처럼 살기로 했다. 그게 더 행복해지는 길일 수도 있으니까. 부모님이나 사회가 시키는 대로만 살지 않으며, 나에게 익숙한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상의 실험을 시작했다. ‘청개구리는 행복하고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부모님도 행복해했습니다.’ 청개구리의 해피엔딩을 꿈꾸며.
청개구리 행복 찾기 실험.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고민만 하다 너무 막막하게 생각하기보다 내가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행복이라는 막연한 단어도 막연하게만 생각하기보다,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나에게 행복이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였고, 행복한 상태는 그런 내 욕구가 충족된 상태였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어느 사회에 살든 간에 인간이 가진 욕구에는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우선순위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우리 몸을 따뜻하게 보호해줄 옷과 집이 필요하고, 생명 유지 및 활동을 위해 음식을 통해 필요한 에너지를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고 했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우리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안전의 욕구를 느끼며, 내가 물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확보한 순간, 어떤 집단이나 사회에 소속되고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 모든 게 충족되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을 향유하고 싶은 상위 단계의 욕구- 인간의 최상위 욕구- 가 발현된다. 욕구에 위계가 있고 없고의 논란을 떠나, 나는 내 행복이 욕구 충족의 상태라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스웨덴에서 이 욕구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한국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충족시켜보기로 했다.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실험 1: 더 이상 쿨하지 않기로 했다.
스웨덴에 도착한 첫날의 기억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2년 동안 살 북부 우메오로 가기 위해 스톡홀름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였다. 탑승 게이트 주변에는 하늘색, 분홍색 머리, 문신한 사람들, 수염을 기른 남자들, 민머리의 여성과 남성, 장발 남성, 피어싱을 한 스웨덴 사람들이 가득했다. 태어나서 외적으로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본 적은 없었다.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람들도 없는 것으로 보아, 스웨덴에는 유행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아무도 누군가에게 시선을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머리색이 튄다고, 온몸에 문신을 했다고, 뚱뚱하거나 남자가 머리가 길다고 또는 여자가 머리를 밀었다고 힐끔힐끔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각양각색의 사람들 틈에서 나만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바쁠 뿐이었다.
어릴 적 나는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기 싫어, 부모님께 매번 유행하는 물건을 사달라고 떼쓰곤 했다. 친구들이 가진 아이템 하나쯤은 들어야 멋지니까. 나이키 운동화, 노스페이스 패딩, 떡볶이 코트 등 입는 것뿐 아니라 가로본능 폰, MP3, 샤기 컷 등 시즌별로 유행하는 상품과 스타일을 빠르게 소비했다.
정말 내게 필요한지는 중요치 않았다. 남들이 가진 아이템 하나쯤은 들어야 쿨한 것 같았다.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트렌디한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해 유행하는 아이템이나 유명한 브랜드는 나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왜 그렇게 유행을 좇아가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다들 사니까 사고 싶었고, 그래야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낄 수 있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우리나라만큼 유행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미적 욕구가 충만한 젊은이들이 모인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친구들이 많았다. 다들 내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 같달까. 다른 사람과 비슷한 옷을 입거나 비슷하게 화장을 하기보다 지신의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는 게 친구들에게는 중요해 보였다.
대학교는 그 시즌의 대중 패션 트렌드를 파악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 생각했는데 친구들의 패션은 각양각색이었다. 롱 패딩처럼 비슷한 옷을 입고 무리 지어 다니는 친구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스웨덴에서도 롱 패딩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외국인 친구들조차도 한국인임을 한 번에 알아봤다. 한국에서는 튀면 눈총을 받기 일쑤기에 소수보단 다수가 되는 입장이 더 편하고, 남들이 가진 것 하나쯤은 있어야 쿨한데, 스웨덴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쿨함을 추구했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로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자기만의 미적 기준과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소유한 물건으로 뽐내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뽐내지 않으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은 유지하는 친구들. 튀지 않으면서도 톡톡 튀며, 사소한 것에도 자기 결정권을 가진 친구들이 남들과 비교하며 쿨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나보다 더 쿨해 보였다.
우연히 대학교 2학년 때 쓴 일기장을 집어든 적이 있다.
아, 뚱뚱한 내 모습이 정말 싫다. 어떤 옷을 입어도 다리가 두꺼워 보여 옷을 사기도 싫다.
그 시절의 일기장에는 그다지 행복한 모습은 없었다. 대학교 2학년, 친구들과 한창 경쟁적으로 다이어트를 할 때의 자기혐오가 오롯이 녹아 있었다. 나는 남과 나의 외모나 몸매를 비교하고 나를 비하하곤 했다. 169cm의 한국 여성의 평균 키보다는 크고, 68kg에 이르던 육중한 몸은 그 당시 미의 기준이던 소녀시대만큼 마르지도 않은 내 몸은 내게는 큰 문젯거리였다. 내 주변에는 ‘청바지에 딱 붙는 흰 티만 입어도’ 예쁜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꿈도 꾸지 못할 패션이었지만 그게 또 제일 예쁜 패션이었다.
늘 청바지는 허벅지가 얇아 보이도록 어두운색으로, 흰 티는 오버사이즈를 골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친구는 흰 바지를 입고 간 내게 허벅지도 두꺼운데 흰 바지를 입을 용기가 나냐며 빈정댔다. 친구는 농담이었지만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아직도 흰 바지를 입지 않는다. 타인의 미적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발버둥 치던 때 내 아름다움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내가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스웨덴에서 나는 남의 시선으로 나를 판단하지도 않기로 했다. 판단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나만의 미적 기준을 세우고 내가 가꾸고 싶은 대로 지내고자 용기를 냈다. 누구도 나의 외적인 모습을 평가하지 않았고, 외적인 것을 넘어 모든 나의 취향을 존중해줬다. 존중은 평가를 입 밖으로 내지 않거나, 타인의 선택에 간섭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형태로 표출됐다. 언어의 폭력보다는 무관심이 더 나으니까.
화장을 하지 않고 처음 학교를 갔다. 한국이었으면 집 앞 편의점만 가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갔을 텐데, 맨 얼굴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 누구도 ‘오늘 쌩얼이야? 뭔가 아파 보인다~’ 등 지나친 관심을 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운동을 할 때는 화장을 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한국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스키니 청바지도 레깅스도 자신 있게 입었다. 행사가 있을 때는 평소 입지 않던 드레스를 입어 보기도 했다. 나는 뚱뚱한 사람도 아니었고,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으며 어떤 스타일이든 내가 원하는 모습과 나에게 잘 어울리는 모습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2년 동안 스웨덴에서 머무른 시간은 해방의 시간이었다. 물리적으로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익숙했던 친구들로부터 멀어졌지만, 나를 속박하던 엄격한 외적 기준 및 타인의 기대를 벗어 던져버렸다. 이것저것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도 탐구해봤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고자 노력했으며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내게 어울리는지 나에게 꼭 필요한지 물었다. 내가 언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모습이고 싶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등 내 안에서 발생하는 욕구들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들. 무얼 입을지 살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사소한 일에서도 삶의 무게 중심과 주도권을 스스로 잡을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더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너한테 잘 어울려.”
어느 날 학교 캠퍼스를 거닐 때였다.
머리스타일 너무 예쁘다, 너한테 잘 어울려.
나의 짧은 단발머리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칭찬 한마디를 건넸다. 모르는 사람이 건넨 칭찬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다. 몇 년 째 고수하는 짧은 단발머리. 긴 생머리나 긴 웨이브 머리보다 짧은 스타일이 가장 나한테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였지만 내게 남긴 여운은 참 길었다. 나의 개성을 존중받으려면 나부터 타인의 개성을 더욱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먼저 한 마디 건넬 수 있길 바라며.
그 스타일 너무 너한테 잘 어울려!
원문: 검은머리 왜국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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