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을 연구하는 교수라 그런지, 명절이 되면 선물 질문이 많이 들어온다. 그래서 단지 ‘맛이 좋아서’가 아닌, ‘레어템’을 추천하고자 한다.
왜 레어템인가? ‘아무거나 사서 먹는다’는 지구를 해친다. 예컨대 ‘삼겹살이 다 똑 같은 삼겹살이지, 싸고 선 좋은 거 사는게 최고지!’라는 생각이 세상을 멸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
레어한 먹거리가 맛과 환경을 지킨다
물론 ‘싸면서 좋은’ 상품도 있다. 그런데 이게 되려면 모든 것을 표준화하고 단일화해야한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기르는 돼지의 97%는 YLD, 3원교잡종이라고 불리는 품종이다. 다산하고 빨리 자라기 때문에, 우리가 저렴한 삼겹살을 즐길 수 있지만,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게 된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효율성을 위해 모든 것을 표준화했다. 그래서 후지(부사)라는 품종의 사과가 절대 다수가 되었고, 수십 년 간 국광, 홍옥, 인도 등은 거의 사라졌다.
지구의 기후는 급격히 변하고 있고, 예상치 못했던 질병이 우리를 덮치고 있다. 이미 온난화로 대구 이남의 평지에서 사과 농사는 거의 불가능하다. YLD 돼지도 축사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종이다. 인간이 동물과 작물을 ‘잘 자라고 많이 수확’할 수 있는 종으로 획일화시켰기에, 기후변화에 적응할 다양한 유전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멋진 소비는 ‘싼 게 좋은 것이여!’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다. 내 취향에 맞는 품종의 농산물을, 제 값 내고 사먹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소비다. 2021년 설에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취향을 선물하자. 그 품종의 농산물에서 정말 멋진 내 취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 소: 칡소
황희 정승의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는가?”라는 질문에 농부는 “얼룩소입니다”라고 답한다. 이 얼룩소는 바로, 짙은 황토색과 짙은 흑갈색이 섞인 ‘칡소’품종이다. 누렁이 한우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재래 품종이다.
올 설에 소고기 선물을 하기로 결심하기로 했다면, 칡소 선물세트를 고려해보자. 물론 비싸다. 칡소는 ‘빨리 자라는’ 유전자가 없어서 천천히, 천천히 자란다. 그러니 더 비쌀 수 밖에 없다. 칡소는 어디서든 사도 상관없다. 내 추천은 심지어는 화식(火食: 소에게 건초를 끓여 익혀 먹이는 방식)으로 키우는, 아산 아침목장을 추천한다. 아주 깨끗한 축사 안에서 해풍 맞으면서 자라고 있더라.
2. 돼지: 난축맛돈과 우리흑돈
제주도에서 판매되는 흑돼지의 대부분은 한반도 재래돼지의 특성을 물려 받은게 아니다. 국내 사육 흑돼지 중 87%는 버크셔라고 하는 영국 출신의 흑돼지이다. 나머지 13%가 우리나라 토종돼지인데, 그 대표적인 품종의 이름이 ‘난축맛돈’과 ‘우리흑돈’이다.
난축맛돈은 현재 전수 제주도에서 기르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송훈 셰프가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난축맛돈을 알리고 있다. 송훈 셰프의 노력 전에는 순종 난축맛돈을 기르는 농가는 하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알려지며 다섯 농가로 늘었고, 사육 두수도 늘고 있다.
난축맛돈은 흑돼지 특유의 짙은 육색과 일반 삼원교잡종에서 나타나지 않는 근육내 마블링이 특징이다. 물론 육향 자체도 강하다. 다양한 부위를 판매하고 있지만, 스테이크처럼 구워 먹을 수 있는 ‘뼈등심’ 부위를 추천한다.
제주도의 ‘난축맛돈’ 중에는 순종이 아닌 교잡종이 많다. 농장과 협업하여 순종 난축맛돈을 계약 사육하는 업체로는 ‘제주드림포크’가 있다. 제주드림포크는 송훈 셰프와 함께 난축맛돈을 발굴하고 전국에 알린 주인공이다. 사전에 맛보고 싶으시다면 송훈 셰프의 식당 ‘크라운돼지’에 방문해 보시길.
우리나라 재래돼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또 다른 토종 흑돼지 품종은 ‘우리흑돈’이 있다. 박영식 장인은 경남 함양에서 평생 흑돼지만 기른 생산자로, 우리흑돈 돼지 사육 경험이 가장 많은 분이다.
우리흑돈은 고소한 육향의 특성을 갖고 있다. 물론 흑돼지의 특성인 마블링도 강하고. 까매요를 까매요 농장에다 직접 전화해서 구매해도 되고, 온라인에서는 프롬샵에서 선물세트를 구매할 수 있다.
3. 닭: 한협 토종닭
닭도 95%가 외국 품종으로 대체되었다. 치킨으로 먹는 닭은, 영국의 코니시(Cornish) 품종을 선조로 하는 품종들로, 30일이면 1.5kg이 될 정도로 빨리 자란다. 반면에 우리 토종닭은 천천히 자란다. 그래서 근섬유가 더 촘촘하고 육향이 강하다. 특히 다릿살 쪽에 육향이 강하다.
현재 우리나라에 법적으로 인정되는 식용 토종닭은 3종이다. 한협 토종닭, 우리맛 토종닭, 소래 토종닭. 오해하지 말자. 토종닭은 시골에서 놓아 기르는 닭이 아니라 엄연한 품종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그나마 쉽게 찾을 수 있는 토종닭 품종이 바로 ‘한협 토종닭’이다.
나와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은 이 한협 토종닭을 알리기 위해 수년간 노력하고 있다. 토종닭은 스테이크처럼 구워 먹었을 때 맛이 일품이다. 내가 MBC 마리텔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이 토종닭 스테이크를 알려야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결국, 뼈까지 제거한 스테이크 제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었다.
‘만개의 레시피’의 온라인 샵인 ‘만개 스토어’에는, 닭다리 스테이크와 가슴살 스테이크가 있다. 우리 서울대 비즈랩에서 양념 레시피 개발을 한 제품이다. 양념이 다되어 있으니, 냉동 보관하다가 먹고 싶을 때 해동해서 구우면 끝이다. 저렴한 만큼 혼밥용으로도 제격이다.
한협 토종닭은, 너무 고급스럽기보다 친근한 패키징이다. 젊은 지인에게 선물하기에는 ‘마장동 소도둑단’의 토종닭 스테이크도 좋다. 좀 젊고 먹는 양이 많은 친한 지인에게 선물해보시라. 칭찬 크게 받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주문해 먹었던 모든 밀키트 중에서 가장 만족했던 것이 바로 이 밀키트다.
4. 술: 칠성몰 전통주
원래 술은 온라인에서 주문해서 집으로 배송할 수 없다. 그러나 전통주는 가능하다. 전통주의 품질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의심이 된다면 칠성몰의 전통주 코너로 들어 가보자.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내가 상품 기획을 함께 했고, 그렇기에 품질을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추사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향인 예산에서, 예산 사과로 만든 고도수의 증류주다. 오크통에서 숙성했기 때문에, 굳이 분류를 하자면 ‘사과 브랜디’다. 주력 상품은 ‘추사40’이고, ‘소서노의 꿈’도 추사40과 같은 원액을 쓴다. 고도주이긴 하지만, 꽤 강한 오크향을 가지고 있고, 끝에는 예산 사과의 향이 스르르 올라오다가 사라지는 매력적인 술로, 고기와 함께 하기도 좋다.
칠성몰에 현재 판매중인 추사47은 한정판이다. 물을 타서 도수를 맞추지 않은, 숙성 오크통에서 꺼내서 바로 병입한 술이다. 딱 361병을 생산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30여병 재고가 남은 것으로 알고 있고, 한정판이라 그게 다 팔리면 끝이다. 그리고 이 제품은 정말 초.강.추. 아이템이다.
2) 레돔 시드르
이 술도 사과술이다. 그런데 타입이 다르다. 먼저 원료가 다른데, 충주 사과로 만들었다. 그리고 도수는 6도 정도로 가벼운 술이며, 느낌이 샴페인과 맥주의 중간쯤의 느낌이다. 충분히 가볍고 향기롭고, 살짝 달콤하다.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온다.
소설가 신이현 작가님과, 그녀와 사랑에 빠져 한국으로 장가 온 프랑스 남자 도미니크가 함께, 충주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며 직접 양조하고 있다. 새롭게 출시한 레돔 로제는 이 두 부부가 직접 재배한 우리나라 포도로 만든 핑크색의 시드르다. 이 두 종의 술 모두 식전 건배주로 좋다. 새콤한 맛이 있어서 식욕을 돋운다.
3) 매실원주/원매/서울의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매실주는, 실은 매실 엑기스를 스페인산 화이트 와인에 섞은 술이다. 그 매실 엑기스조차 설익은 청매로 만든 것이다.
매실원주/원매/서울의밤은, 진짜 우리 전통 방식의 매실주다. 매실이 충분히 익어 황매가 될때까지 기다린 후 수확하여 쓴다. 황매를 주정(높은 도수의 소주)에 우려내고 숙성시켜 만들기에, 향과 맛에서 큰 차이가 난다. 아로마가 풍부하며, 생으로 먹은 살구와 비슷한 맛이 난다.
매실원주/원매/서울의밤은, 원매 정도면 명절 차례용 술로도 손색이 없다. 어려운 분께 선물할 때에는 원매 프리미엄이 제격이다. 훌륭한 매실주다. 서울의 밤은 이 침출 매실주에 노간주나무 열매를 넣어 우려 낸 후 다시 증류를 한 일종의 ‘매실 진(Gin)’이다.
4) 문배술
문배술은 소주다. 싸구려 수입 주정에다가 물을 탄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예전 평양 방식의 증류식 소주다. 국내에서 제배한 메조와 찰수수로 술을 내린 후 증류하여 만든다. 25도의 깔끔하고 드라이한 술이다. 소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새로운 장을 열어 줄 수 있다. 칠성몰에서는 선물 세트로 판매하고 있다.
5. 해심노을김
김에도 품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풀무원이 재래김 품종을, 무려 15년여의 시간을 투입하여 육성, 개발했다. ‘해심’이라는 품종과 ‘노을’이라는 품종의 김인데, 이 두 품종의 김을 전북 부안에서 계약 재배한 후 블랜딩하여 만든 새로운 김이 ‘해심노을김’이다.
현재 전장김 10팩이 한 박스에 들어간 선물세트로만 판매되고 있다. 조미를 전혀 하지 않았으며, 우리나라 프리미엄 재래김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아직 생산량이 한정적이라 여러 곳에 판매되고 있지 않다. 대량 생산되지 않는 프리미엄의 맛을 즐겨 보시길 바란다.
희귀한 식품을 소비해야 생태계 다양성이 커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길 한다. 희소하고 귀한 것은 아끼고 보호해야지 왜 자꾸 더 먹고 소비하라 하냐고.
역설적이게도 소비자들이 희소한 것을 더 소비하면, 생산자들은 더 많이 생산한다. 개체수가 얼마 안되는 토종품종 가축도 좋은 상품 기획으로 소비자들이 더 소비하면, 생산자들은 개체수를 더 늘인다. 난축맛돈에서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다양성을 만들어 나가고, 다양성이 존재하는 시장, 생태계가 언제나 더 건강하다. 지속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