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콘텐츠 끝판왕 디즈니의 OTT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진출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당초 예상되었던 3월보다는 3개월 밀리긴 했지만, 올해 6월이면 만나 볼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연말부터 국내 콘텐츠 시장이 심상치 않다. 콘텐츠 시장 왕좌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최종 결전을 앞두고 플레이어 간의 물밑 움직임이 치열하다.
여기서 더욱 재미있는 점은 글로벌 OTT 서비스 중 압도적 1위이면서, 국내 시장도 제패한 넷플릭스. 이를 위협하는 도전자 디즈니 플러스뿐 아니라, 여러 국내 플랫폼들도 이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단지 국내 시장만 아니라 글로벌을 겨냥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본격 콘텐츠 전쟁의 원년이 되지 않을까 싶은 2021년. 3가지 주요한 포인트를 통해 이들의 경쟁 구도를 예측해보자.
통신사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내 콘텐츠 시장의 문을 연 곳은 어디일까? 아마 카카오페이지와 넷플릭스가 아닐까 싶다. 카카오페이지는 무료라고 인식되던 웹툰과 웹소설의 유료 모델을 안착시켰고, 동시에 국내에서도 슈퍼 IP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또한 넷플릭스는 OTT라는 비즈니스를 국내에 실질적으로 도입시켰고, 무엇보다 오리지널 콘텐츠의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숨겨진(?) 업적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통신사를 콘텐츠 시장의 지배자 위치에서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이른바 통신 3사, SKT, KT, 유플러스는 콘텐츠 시장의 큰손이었다. 통신 요금제와 결합한 모델을 통해, 음원 서비스, VOD 서비스를 독식한 것은 물론, IPTV를 앞세워 안방마저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이들은 곧 콘텐츠 플랫폼 그 자체이기도 했다. 통신업계 1위 SKT의 멜론과 옥수수가 음원 서비스 및 OTT 서비스 점유율 1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현재 멜론은 여전히 음원 서비스 1위긴 하지만 카카오에 인수되었고, 옥수수는 푹과 합쳐 웨이브가 되었으며, 넷플릭스에 압도적으로 뒤쳐졌다.)
그랬기에, 넷플릭스가 처음 국내 시장에 진출하던 당시만 해도 통신사는 확실한 갑이었다. 잠재적으로 자신들의 IPTV 서비스를 위협할 가능성이 큰 넷플릭스를 당연히 아무도 반기지 않았고, 단지 만년 3위 유플러스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넷플릭스와 제휴를 겨우 맺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넷플릭스 효과로 유플러스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이렇듯 상황이 바뀌면서 이번 디즈니 플러스 진출에는 역으로 통신사들이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다. 결국 KT와 유플러스 두 곳과 모두 제휴를 맺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아마 디즈니에게 엄청 후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것이 뻔해 보인다.
이렇듯, 통신사의 전성기는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사실 여전히 이러한 제휴는 당장의 가입자 수 확보에나 도움이 될 뿐, 장기적으로는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를 사용하는 고객이 굳이 통신사의 IPTV를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통신 3사 중 하나인 SKT는 이번 제휴에서 빠지지 않았을까?
더욱이 SKT는 자체 OTT인 웨이브도 보유한 데다가, 망 사용료 이슈로 넷플릭스와 소송전을 벌이는 중이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이렇게 SKT는 시장 1위의 자존심을 이번에는 겨우 지켰을지도 몰라도, 아마 날이 지날수록 이조차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고? 이제 콘텐츠를 가진 자가 갑인 세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제압하는 자가 시장을 제압한다
사실 국내 시장만 보면, 콘텐츠 회사보다는 플랫폼 회사의 지위가 더 우월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통신사도 그랬고, 공중파 방송국들이 절대권력을 잡았던 것이 국내 콘텐츠 시장의 과거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실 오늘날도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 회사들이 주도권을 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착각하는 건, 넷플릭스가 플랫폼인 동시에 콘텐츠 회사라는 점이다. 더욱이 넷플릭스의 고향 북미 시장을 보면 콘텐츠가 핵심이라는 게 더 잘 보인다. 자체 IP를 가진 디즈니와 HBO가 순식간에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떠오른 것은 이를 반증한다.
이처럼 야구는 투수놀음이란 말이 있듯이, 콘텐츠 시장은 결국 IP 싸움일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것도 솔직히 8할은 잘 만든 콘텐츠 드라마 ‘킹덤’ 덕분이었다. 국내 진출하고도 한동안은 지지부진하던 가입자 수 추이가 2019년 ‘킹덤’의 릴리즈 이후 1년 사이 3배나 증가하며, 안정적인 추세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넷플릭스가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진출을 앞두고, 펼친 반격의 한 수도 콘텐츠 투자였다. 작년 12월 아시아 최초로 콘텐츠 발굴, 투자를 위한 별도 법인을 국내에 설립한 것이다. 이는 본격적으로 콘텐츠 확보에 집중하겠다는 포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미 업계에서는 이미 국내 1티어, 2티어 제작사들은 모두 넷플릭스가 포섭했다는 말이 돌 정도이다.
그리고 또한 이제 국내 콘텐츠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국내에서 두각을 나타낸 IP는 곧 아시아 시장에서 통하는 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넷플릭스라 불릴만한 OTT 서비스 아이치이가 올해 최대 기대작 중 하나인 드라마 ‘지리산’의 글로벌 판권을 비싸게 구매한 것처럼, K-콘텐츠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상품으로 각광받는다. 따라서 넷플릭스의 법인 설립은 국내 시장 사수는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한 수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국내 기업들도 뒤늦게나마 IP 확보를 위한 투자에 나섰다. 왓챠만 해도 360억 규모의 시리즈 D 투자를 받아, 콘텐츠 제작에 나선다고 하고, 티빙을 가진 CJ나 웨이브를 운영하는 공중파 방송국들도 원래 콘텐츠 제작하던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본 체급 차이가 존재하기에, 넷플릭스나 디즈니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는, 결국 자본의 규모가 콘텐츠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콘텐츠 플랫폼들이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오리지널 콘텐츠로 경쟁하려면, 결국 어느 정도의 덩치를 확보해 자본력을 갖춰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이젠 글로벌밖에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넷플릭스, 디즈니 같은 거대 기업들과 한 판 붙을만한 잠재력을 지닌 콘텐츠 회사가 국내에도 있을까? 다행히도 무려 2개나 존재한다. 어디냐고? 국내 IT 기업을 상징하는 네이버와 카카오 빼고 누가 있겠는가? 공교롭게도 네이버는 네이버 웹툰, 시리즈, 카카오는 카카오페이지라는 스토리텔링 기반 콘텐츠 플랫폼을 각각 보유했으며, 최근의 성과도 무척이나 좋다.
먼저 네이버 웹툰은 월 사용자 수만 7,200만 명에 달하는 명백한 글로벌 플랫폼이다. 라인 이후 네이버가 만든 최고의 글로벌 히트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지난 1월 19일 전 세계 최대의 웹소설 왓패드를 인수하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왓패드의 월 사용자 수는 약 9,000만 명. 단순 합산 시 네이버의 스토리텔링 플랫폼의 이용자 수가 무려 1억 6,000명. 근래에서야 넷플릭스의 이용자 수가 2억 명을 돌파했으니, 단순 트래픽 규모만으로는 거의 다 따라잡은 셈이다.
더욱이 웹소설과 웹툰은 시너지를 내기 참 좋은 콘텐츠이다. 이를 잘 활용하는 곳이 바로 카카오페이지이다. 대표적으로 카카오페이지의 히트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웹툰으로 다시 만들어져 글로벌한 인기를 누렸다. 미국 청원 사이트에 애니메이션 제작을 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할 정도로 말이다.
이뿐 아니다. 카카오페이지의 원소스멀티유즈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OCN 채널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경이로운 소문’도 알고 보면 다음의 웹툰이 원작이다. ‘이태원 클라쓰’도 웹툰이 원작인데, 넷플릭스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일본 사업인 픽코마의 성장까지 견인했다.
이와 같이 국내에서 가장 IP를 가장 잘 다루는 기업이라 손꼽히던 카카오페이지도 1월 25일 카카오M과의 합병 소식을 발표하며 글로벌 진출을 위한 덩치 키우기에 들어갔다. 카카오페이지가 콘텐츠 플랫폼이자, 수많은 웹툰과 웹소설 IP를 보유했다면, 카카오M은 국내 최고의 제작 역량을 보유한 회사 중 하나이다. 풍부한 IP와 검증된 제작력이 합쳐졌을 때 시너지는 어마어마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모회사 카카오가 가진 자본력이 더해진다면 글로벌 슈퍼 IP 회사도 결코 꿈이 아닐 것이다.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내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SM의 수장 이수만 회장은 평소 콘텐츠 사업에 대해 2가지 지론이 있다고 한다. 먼저 하나는 플랫폼보다는 콘텐츠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말 좋은 콘텐츠를 가진 회사가 갑이 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가지려면 무조건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고 동시에 주장한다.
콘텐츠의 질은 앞서 말했듯이 투하하는 자본의 양에 따라 좌우되는데, 한국 시장 규모로는 충분한 자본을 투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국내 시장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시장으로 해외 진출에 사활을 걸었고, K-POP이라는 문화 콘텐츠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이는 한국 콘텐츠 시장에도 정말 그대로 적용된다. 콘텐츠 시장에는 작년 12월 갑작스러운 쿠팡 플레이 론칭을 시작으로, 큰 변화의 바람이 분다. 넷플릭스가 압도적인 OTT 1위 자리에 올라섰지만, 디즈니의 역습이 곧 시작될 예정이고, 네이버와 카카오도 웹툰과 웹소설을 앞세워 이를 공공연히 노린다.
여기에 통신사와 방송국 기반의 여러 플랫폼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아, 정말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좋은 콘텐츠를 보유한 글로벌 플랫폼이 되지 않을까? 이수만 회장이 그린 경쟁 구도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말이다.
이제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참전한 콘텐츠 회사들은 산업 특성상 아주 극히 소수만이 생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과연 누가 될까? 물론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IP에 대한 투자는 아마 점점 더 늘어날 거라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올해는 콘텐츠 전쟁인 동시에, 제작사들에게 새로운 르네상스의 시대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원문: 기묘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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