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턱걸이 서울시민이다. 서울과 하남의 경계에 있는 강동구에 산다. 5호선 상일동역 근처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되어 있다. 아파트 숲 사이로 낮은 산이나 숲이 자리 잡고 있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네다. 예를 들면 A단지 아파트에서 근린공원 숲을 통해 B단지 아파트로 갈 수 있다.
덕분에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살기 좋은 동네다. 자동차의 소음 없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기 때문이다.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 집 주변만 해도 선택할 수 있는 산책 코스는 4개다.
‘고덕산 자락길’은 서울시 테마산책길 ‘강동 고덕산길’의 일부이다. 고덕산 자락길은 무장애길이다. 무장애길은 영어로 배리어 프리로드(barrier free road)이며 휠체어를 사용하는 시민도 이용할 수 있는 길이다. 흔히 데크라고 불리는 방부목으로 산책로를 만들었다.
건축 현장에서 배리어 프리 시공을 담당했던 터라 ‘배리어 프리’ 용어에는 익숙했는데, 이상하게도 무장애길은 처음 들어보는 말 같았다. 처음 보는 단어에 자극이 되었나 보다. 나는 데크 위를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정말 휠체어를 이용하는 시민에게 불편이 없는지 따져보았다. 다행히도 경사도가 거의 없고 산책로 폭도 충분히 넓어 휠체어로 교차 보행이 가능했다. 이런 산책길이 동네마다 생기길 바라며 고덕산 자락길 산책을 마쳤다.
무장애길 산책로를 빠져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장애인을 비롯한 보행약자에 대한 생각에 매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 스스로를 보행약자라고 상상하며 걸어보았다. 그리 예리하지 않은 내 레이더망에 들어온 몇 가지들이 있었다.
※ 보행약자: 임산부, 장애인, 노약자
첫째, 흰 눈에 덮인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이었다.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별표 2]에 따르면, 공원과 도로 또는 교통시설을 연결하는 보도에는 점자블록을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 한다. 인도 위에 노란색 선형블록과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들의 눈이다. 선과 점으로 길을 읽는다.
그런 시각장애인의 시야를 하얀 눈이 가려버렸다. 물론 눈을 쓸어주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지만 노란 선형 블록 위로 쌓인 눈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씁쓸했다. 거리에 시각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시각장애인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성북구에 설치된 도로 열선이 화제다. 강추위와 폭설에도 차도가 얼지 않도록 열선시스템을 적용했다. 신박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반가운 소식이다.
한편 인도가 아닌 차도에 먼저 적용되었다는 점이 씁쓸하기도 하다. 인도를 비롯해 점자블록과 선형블록에 열선 시스템을 먼저 도입했다면,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인도를 이용해 걷는 더 많은 시민에게 기쁨을 안겨다 주지 않았을까? 정부와 지자체가 좀 더 세심하게 마음을 써주길 바란다.
둘째, 상가 진입로다. 상가 진입로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약국이 있었다. 경사로는 장애인 편의시설 중 하나다. 장애인 편의시설은 장애인 화장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승강기 등이 있다. 건축물의 업종과 면적에 따라 편의시설 의무 설치 기준이 다르다.
면적 1,000㎡ 이하의 약국은 1종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한다. 1종 근린생활시설의 경우 접근로에 턱이 없거나 18분의 1 이하의 기울기로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 사진 ③의 약국은 원래 경사로가 오른편에 설치가 되어있었는데 공사 때문에 지금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공사 중이어도 임시 경사로를 충분히 설치할 수 있었을 텐데 보행약자를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보행약자는 매번 우리 삶에서 생략된다. 타인을 감시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나 주체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집 근처 자주 이용하는 생협이 있다. 생협에도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고객이 통행할 수 있는 접근로는 없었다. 통로 ⓐ는 계단이 있고 통로 ⓑ는 턱이 있다. 통로 ⓒ는 건물 뒤편 주차장으로부터 들어오는 입구다. 사진에서 파란색 화살표로 된 공간을 통과해야 한다. 유모차 정도는 통과할 수 있지만 휠체어가 통과하기엔 어림없는 폭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별별의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된다. 프로 불편러, 별일 아닌 일에 예민한 사람들, 누군가의 눈에는 진상, 남 일에 간섭하는 오지라퍼.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 동네에도 있다. 바로 나다. 나는 해당 업체의 본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조합원 OOO입니다. OO매장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매장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명일 매장은 장애인 통행이 불가하네요. 장애인도 장을 볼 수 있도록 출입통로를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OOO에 장애인이 통행할 수 없다면 과연 우리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꿀 수 있을까요? 문의 관련해서 피드백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해 선물 귤은 정말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3일 후 답장이 왔다.
조합원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OO매장은 장애우, 유모차 등 통행이 어렵습니다. OO매장 출입구 아래에 기계실(공조실)이 위치하고 있어서 불가피하게 slop공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건물주와 협의해서 건물 주차장 방향에서 들어오면 유모차 크기 정도 들어올 수 있도록 개선공사는 진행했습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OO 매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매장은 slop공사를 진행하여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합니다. 신규, 리뉴얼 매장은 slop공사 및 매장 내부 동선 폭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더 나은 매장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애우라는 표현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이라고 표현해야 옳다.)
생각해보니 휠체어를 이용하는 시민이 매장 안으로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장을 보기는 어렵다. 매대 간 통로를 휠체어로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매장은 온라인 주문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배송이 가능하다. 하지만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장을 볼 수 있도록 매장 환경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당사의 캐치프레이즈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과연 우리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이미 사회 구석구석 비장애인이 살기 편한 형태로 촘촘히 짜여 있다. 시민 한 사람이 프로불편러가 되고 오지라퍼가 되면 조금 더 빨리 더불어 사는 세상에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해당 글에서는 두 개의 예시를 들었지만 이 외에도 실제 우리 삶에 생략된 배려와 그로 인해 생략된 약자들이 많다. 내가 던진 메일은 하나의 기도였다.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생략되지 않는 세상을 소망하는 기도. 모두가 자유롭게 길을 거닐고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내가 너무 이상적인 사람인 걸까?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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