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부터 12월 26일까지 미국의 코로나19 예방접종 인원은 194만 명에 머물렀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 24만 명 남짓이다. 앞으로 점점 더 빨라지겠지만 아직 가속도는 붙지 않은 상태다. 미국보다 시작이 빨랐던 영국은 어떨까? 12월 9일 시작한 후 12월 24일까지 약 80만 명이 접종을 마쳤다. 미국보다 속도가 더 늦어 하루 5만 명 정도에 그친다. 마음은 조급하지만, 백신이 ‘성공’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이런 속도로 가서야 언제쯤이나 사회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실망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도 집단면역은 가을에나 가능하다고 하니, 새해의 시간 감각을 다시 조정할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중간에 별일이 없어야 가능한 시나리오. 예를 들어 백신에 대한 불신이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이 접종을 거부하면 ‘게임 체인지’는 영 불가능하다.
한국은 영국이나 미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신을 확보했다고 가정할 때 최종적으로 각 사람에게 이르는 경로, 다른 말로는 예방접종 시스템이 더 잘 기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백신에 대한 이해와 수용도도 높으니, 사회적 구조와 역사적 경험이 일종의 인프라 노릇을 할 것이다.
하지만 장담하기는 이르다. 방역 당국은 인플루엔자 백신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낙관할 수 있으나, 상황은 매우 다르다. 백신의 배분과 접종을 둘러싼 전체 과정은 하나의 사회적 시스템으로, 코로나19 백신은 시스템 자체를 새로 구축해야 할 형편이다. 기존 시스템을 토대로 삼는다 해도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 맥락과 환경이 다르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는 대유행의 와중에서도 다음 세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금방 되지 않는 데다 모든 단계에서 여러 상대와 협력과 조정을 해야 하면, 이미 시간은 충분치 않다.
첫째, 백신 공급과 각 개인에 대한 예방접종 시스템 정비
누가 어디서 예방접종 ‘서비스’를 할지, 촘촘하게 준비되어 있는가? 의료 업무 종사자와 요양 시설 입소자는 누가 어떤 방법으로 접종을 할 것인가? 농촌 지역의 독거노인과 장애인은? ‘일반인’은 전국에 흩어진 의원과 보건소를 통할 가능성이 큰데,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이 몰릴 때 지역, 기관, 개인의 순서를 누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인력과 시설, 장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입된 백신이 적시에 문제없이 그곳에 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는 사용할 수 있는 백신 상당수를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다는 점이 맹점. 몇 달 전 약간의 소동이 있었던 인플루엔자 백신과도 다른 과제다. 공항 통관부터 일선 접종 장소까지 운반과 보관이 흐트러지면 만사휴의(萬事休矣), 다음과 같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는다.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 이하의 초저온 냉각 상태에서 유통돼야 한다는데, 국내 공급될 수 있겠느냐 의문이 제기된다… 이 조건의 유통 기업은 ‘한국초저온’이 유일한 데, 의약품 유통 경험은 없는 곳이다.
- 「신성약품의 교훈…”코로나 백신 보관·수송 지침 세우자”」, 히트뉴스
둘째, 우선순위 결정에 대한 대비
우선순위는 거시적 수준뿐 아니라 미시적 수준에서도 논란을 부른다. 그냥 가능성이 아니라 곧 닥칠 현실임을 가볍게 여기지 말 것.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 메디컬 센터의 의료진들이 병원 안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레지던트 1349명 가운데 1차 접종 대상에 오른 사람은 단 7명… 병원 측은 환자와의 거리, 나이를 감안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알고리즘에서 젊은 레지던트라는 변수를 감안하지 않아 발생한 실수라고 해명했습니다.
이런 논란은 지금 방역 당국이 말하는 수준, 예를 들어 “의료기관 종사자와 요양 시설 입소자, 환자 우선”이라는 일반 지침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난봄 마스크 배분 논란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 ‘아수라장’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1차로 50만 명이 맞을 백신이 들어왔다고 언론에 보도된 후의 상황을 상상해보라.
혼란과 그를 둘러싼 부정적 정치도 문제지만, 우리는 특히 힘의 불균형에 따른 불평등과 차별이 없기를 바란다. 의료기관에서 청소, 위생, 돌봄 등 ‘필수’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 노동자는 순서가 어디쯤 될까? 홈리스, 쪽방촌, 장애인, 미등록 이주민과 농어업 이주노동자 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이라도 준비하는지 모르겠다.
셋째, 사회적 논의, 공론화, 동의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경험한 예방접종과 가장 다른 점이다. 정책 당국이 어느 때보다 취약하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지식과 생각, 나아가 의지와 계획조차 미흡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앞서 말한 접종 시스템과 우선순위 모두, 미리 충분히 논의하고 이해하며 공감하지 않으면 큰 갈등과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규정, 지침, 기준, 매뉴얼만으로는 부족하며, 현장에서 각 개인의 인식과 사회적 규범, 문화, 원리 등이 같이 작동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여기에 가까워지려면 모든 공론장을 활용해 토론하고 논쟁하며 같이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인플루엔자 백신에 빗대면,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약한 사람이 먼저라 지금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순서가 안 돌아와”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정부와 언론의 역할이 중차대하다.
결국, 주도해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지금 어느 정도까지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으나, 방역 당국은 지금부터 이 세 가지 과제를 꼼꼼하게 챙길 것을 당부한다. 위쪽 어디에 보고한 “○○○ 종합계획”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보다 백신에 대한 상황을 예측하기가 더 쉽다. 다만, 흔히 ‘시나리오’를 말하지만, 예상 상황을 염두에 둔 연습과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배우도 정해지지 않고 극장도 계약하지 않은 상황, 혹은 배우가 정해져도 한 번 연습도 못 한 경우라면 연극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지금부터 시나리오를 다시 짜고 준비와 연습을 거듭해 백신이 도착하기 전에 리허설까지 마쳐야 한다.
원문: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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