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길에 누워있는 10명의 노숙자에게 하나의 제안을 했다. 가장 게으른 사람에게 술과 빵을 살 수 있는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10명 중 9명이 내가 가장 게으르다고 하며 벌떡 일어나 돈을 요구했다. 돈은 누가 받았을까? 돈을 받은 사람은 그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단 1명의 노숙자였다.
돈을 받은 노숙자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다가 돈을 받은 건지 아니면 용의주도하게 전략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돈을 받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경우든 돈을 받은 노숙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노력은 덜하고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 돈으로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술과 빵을 살 수 있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그냥 일하는 사람과 고민하며 일하는 사람
직장에서도 잔인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정보다는 결과다. 의사결정권자의 눈으로 직접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실무자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일을 처리하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 고생하더라도 기존의 방식대로 그냥 일한다.
-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한 후 일한다.
직장에 필요한 유형은 어떤 유형일까? 어느 한쪽 유형만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일의 유형에 따라 혹은 각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최적화된 방법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첫 번째 유형의 일 처리 방식이 훨씬 적합할 때도 있고 또 다른 때는 두 번째 유형의 일 처리 방식이 훨씬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번째 유형보다 두 번째 유형이 훨씬 유능한 사람이거나 곧 유능해질 사람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으로 일을 처리하다가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버린 채 결국 기존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라는 것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두 번째 유형은 어떤 문제를 스스로 진단해보고 해결방안을 찾는 힘을 차곡차곡 길러 습관으로 만들 것이다. 결국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일을 바라보고 길러온 통찰력으로 시간과 노동의 소비를 최소화하고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같은 일을 하더라도 첫 번째 유형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를 인정받을 것이다. 아마 앞서 얘기한 돈을 받은 노숙자도 두 번째 유형에 속할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쭉정이가 쓴 글
이직에 성공 후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상사와 일했다. 나에게 던져진 미션은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직원 워크숍을 계획하는 것이었다. 당시 3년 정도 비슷한 업무를 한 경험이 있었고 글을 쓰거나 보고서를 만드는 일에는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계획안을 작성 후 검토를 요청드렸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다시 해.”였다.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작년에 작성된 계획안을 참고해 동일한 양식에 내용을 업데이트한 것이기 때문에 잘못될 일이 전혀 없었다. 오타도 없었고 양식이 잘못되지도 않았다. 모든 게 완벽했다. 결국은 도저히 어떤 부분을 수정할지 감이 오지 않아 어떤 부분을 수정해야 하는지 상사에게 물어보았다.
이 보고서는 쭉정이가 쓴 글일 뿐이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쭉정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나름 어떤 업무를 맡아도 항상 책임감이 있었고 주변에서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냈다. 이후 상사는 덧붙여 말했다.
레퍼런스를 참고해 기존과 동일한 내용으로 문서를 작성해도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너도 발전이 없을 것이고 회사도 발전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문제가 안 되면 그냥 똑같이 진행하면 되지 뭣 하러 구태여 내용을 추가하고 보완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사의 마지막 말은 나를 180도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쭉정이로 평생 살지 주도적으로 네가 살지는 네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작년 워크숍 계획안의 기안자가 누군지 찾아보았다. 옆에 앉아 있는 상사였다. 추가로 재작년 워크숍 계획안을 찾아보았다. 그 문서도 옆에 앉아 있는 상사였다. 작년 계획안과 재작년 계획안을 비교해보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좀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 그의 흔적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쭉정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없는 곡식이나 과일 따위의 열매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말을 비유적으로 쓸모없게 되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사실 기존 레퍼런스를 참고해 수치나 간단한 내용만 업데이트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내가 당장 퇴사하고 다른 사람이 바로 업무를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이런 식으로 업무를 하면 사전에 나와 있는 말처럼 쓸모없는 직원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같은 일을 하면서 동일한 시간과 노동력을 소비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쓸모 있고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도록 특별함을 가질 방법으로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신입사원 때는 출력, 복사, 자료조사 등 간단하거나 반복적인 업무를 주로 한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고 복잡한 힘든 업무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이때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습관을 미리 기르고 대비하지 않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상사와 부하직원들에게 인정은 받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어차피 문제는 계속 생긴다
어떤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무조건 기존의 것들을 따라 하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없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고 더 나은 방식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연습 해야 한다. 문제의 일부분만 해결하거나 전혀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은 점점 짙어져 언젠가 아득하게 보이던 해결의 실마리를 손에 움켜쥘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들고 힘들어, 난 그냥 쭉정이로 길고 가늘게 직장생활 할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직장에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사건과 사고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손해를 보고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국은 스스로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일이며 이는 본인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삶이란 본래 문제의 연속이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곧 다른 문제가 생긴다. 문제없는 삶을 꿈꾸는 대신 좋은 문제로 가득한 삶을 꿈꿔야 한다.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습관을 꾸준히 기르는 사람은 좋은 문제가 계속 찾아올 것이고 이 좋은 문제들은 솜뭉치처럼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습관을 기르지 않은 사람은 문제 하나하나가 무거운 쇳덩이처럼 버겁게 느껴질 것이다. 문제없는 삶은 판타지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원문: 김화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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