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계약’만큼 설레는 말이 또 있을까. 누군가 내 글을 봐주고 인정해 그것을 책으로 내자는 것이,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일까. 첫 출간 계약이 그리도 선명하다. 물론, 모든 출간 계약의 순간이 소중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은 ‘첫’이란 말에 온 기억과 감정을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처음 느꼈던 그 무게도 생생하다. 일순간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로 무섭게 돌변했다. 계약금을 받았으니 어디 도망갈 수도 없고 기한 내에 원고를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계약 이후에 연락이 잘 안 되거나 마감에 이르러 소위 말해 잠수를 타는 작가님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출간 계약은 여전히 희열이고 설렘이다. 또 하나.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우스갯소리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살다가 몇 안 되는 ‘갑’이 되는 순간이에요!
그렇다. 출간 계약서를 보면 작가가 ‘갑’이고, 출판사는 ‘을’이다. 저작권은 ‘갑’에게, 출판권은 ‘을’에게 귀속된다. 사실, ‘갑’과 ‘을’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단, 내 글을 종이에 활자로 인쇄해 세상에 내어 주겠다는 천군만마를 얻은 그 기분이 더 좋은 것이다.
1. 출간 과정에 대하여: 원고 작업 전
본 장에서는 앞서 살펴본 출판 방식 중 ‘정식 출판(상업/ 기획 출판)’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참고 글: 글린이를 위한 출판 방식 대정리!) 내 글이 출간 계약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과정 이후에 이루어진다.
- 작가가 출판사에 투고하거나,
- 출판사가 작가를 발굴 또는 작가에게 원고를 의뢰하는 경우다.
투고했든 출판사에서 연락을 줬든 중요한 건 1차 미팅이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가동해야 한다.
1차 미팅은 일종의 탐색전이다. 1차 미팅에서 바로 계약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지진 않는다. 출판사는 작가를, 작가도 출판사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서로가 바라는 바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라면 1차 미팅 전에 출판사 이름을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 어떤 책을 주로 출판하고, 어떤 성향을 가졌으며 마케팅은 어떻게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좋다.
1차 미팅에선 주로 출판사가 원하는 기획 의도를 이야기한다. 작가도 이에 동의하거나 조율이 완료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할 수도 있고, 계약일을 다시 조율할 수도 있다. 보통은 후자의 과정을 따른다. 1차 미팅한 것을 바탕으로 출판사도 내부 협의를 하고, 출판사 대표 승인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첫 출간 계약의 에피소드가 있다. ‘일상이 축제고 축제가 일상인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다. 1차 미팅에서 출판사는 ‘축제’를 키워드로 책을 기획하자고 했고, 사람들이 모르거나 오해하는 부분을 역사와 문화 기반으로 흥미롭게 그리고 인문학적으로 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란 말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한 것이다. 만약 콘셉트나 제목에 대한 조율이 안 되었다면, 어쩌면 1차 미팅에서 계약은 중단되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계약이 되고 출간이 되었으나 제목은 길어진 것이다.
이후 계약 단계로 넘어가면 계약금을 받는다. 자, 이제 여러분은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글을 기한 내에 써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여전히 기분은 좋을 것이다. 더불어, 인세는 통상 7–10% 수준으로 이야기가 된다. 출판사마다 부수에 다른 차등을 두거나 세세한 조건이 별도로 있으니 자세히 확인하는 게 좋다. 계약 기간은 5년이지만 별 이상이 없으면 5년 단위로 자동 갱신된다.
2. 출간 과정에 대해: 원고 작업
2차 미팅을 거쳐 이후에 이루어지는 모든 회의는 출판사 주도로 이루어진다. 정식 출간의 장점이다. 잘 팔리는 책이 되도록 출판사는 여러모로 고심한다. 목차 재배열부터 대상 독자 분석 및 책의 전체 콘셉트와 마케팅 아이디어까지. 물론, 작가도 함께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다만, 작가는 글쓰기와 마무리에 좀 더 신경 쓰는 게 좋다.
실제로 에디터, 교정/교열, 조판, 북커버 디자인, 마케팅, 인쇄 등 출판사 각 부서와 담당자분들은 나의 글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글쓰기에 집중하며 개고 및 윤문 과정을 거치면 된다. 원고를 주고받으며 맞춤법이나 문장, 문단 및 전체 구성까지 의견을 나누는데 3교에까지 이르러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트렌드가 급격히 바뀌었거나, 전체 콘셉트를 다시 잡아 재구성하는 등의 이유로 작거나 큰 변동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이후 최종 원고가 나오면 이제 인쇄되어 서점에 내 책이 깔리는 시간만을 기다리면 된다.
3. 출간 과정 및 계약 시 주의 사항
출간 과정을 밟는 중이거나 계약을 해야 하는 분들이라면 다음 사항을 유의하는 게 좋다.
첫째, 출판사 분들은 나보다 전문가라는 걸 인정할 것.
『직장 내공』 제목과 콘셉트가 최종 결정되지 않았을 때였다. ‘슬기로운 직장 생활’ 등의 제목이 거론되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직장인이어도 괜찮아’란 제목을 제안했다. 뻔한 제목보다는 차라리 공감 코드를 던져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집어 들게 하면 어떻겠냐는 내 생각이었다.
이후 그 생각은 매우 짧은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에디터님께서 개인 브랜딩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런 일침을 주셨다.
작가님, 이제 강연도 하시고 할 텐데 “『직장인이어도 괜찮아』 저자 스테르담입니다.”라고 소개하실 거예요?
아차, 강연장 무대에서 내 소개를 하며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는 나 자신이 그제야 그려졌다. 에디터님은 다시 목차를 재점검해 결국 『직장 내공』 콘셉트를 만들어 오셨고, 나는 강의 무대에서 『직장 내공』 저자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 것이다. 더 전문적이고, 더 내공 있는 프로 직장인의 모습으로.
그때 깨달았다. 출판사 분들은 나보다 내 책이 더 많이 팔리기를 원하시는 분들이란 걸. 그래서 난 그 경험 이후엔 8:2 법칙으로 내 의견을 제시한다. 8이 출판사, 2가 내 의견이다. 내 글을 더 멋지게 담아주고 영향력 있는 책으로 만들어주실 거라는 믿음과 함께.
둘째, 에디터는 항상 아이디어에 목마른 분들이라는 걸 알아챌 것.
나는 투고 없이 7권의 책을 냈다. 각 에디터님께서 나를 발굴하셨다는 뜻이다. ‘발굴했다’는 말은 다시 ‘검색했다’는 말로도 바꿀 수 있다. 즉, 내 글과 생각은 독자와 출판사를 거치기 전에 에디터님의 마음에 먼저 가닿아야 한다. 그분들의 일은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글과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다.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는 퇴사 광풍이 불고 난 뒤, 결국 직장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멋지게 버텨야 함에 대한 책을 기획하신 에디터님에 의해 발굴되고 출간되었다. 당시 브런치에서 ‘직장인의 품격’이란 에세이를 연재했는데, 아침 만원 지하철에서 ‘직장인’을 검색하신 에디터님의 눈에 내 브런치 글 하나가 띈 것이다. 에디터님은 내 브런치를 방문해 수많은 글이 있는 것을 보시고는 바로 연락해야겠다 마음먹었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내 글 중 ‘앞날에 대한 희망은 미래에서 오지 않는다. 오늘의 나에게서 온다.’라는 문구를 읽고는 눈물을 흘리셨다는 말도 전해주셨고.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글쓰기에 대한 관념의 틀을 좀 더 넓혀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는 물론 출판사 에디터님까지 고려하며 글쓰기를 이어 간다면, 출간 계약의 확률이 더 커질 수 있다.
셋째, 기획 원고도 ‘브런치 매거진’을 활용할 수 있다
『견디는 힘』과 지금 쓰는 책은 ‘기획 원고’에 기반한다. 즉 다른 내 책은 내가 쓴 글을 엮어서 낸 것인데 반해 이 두 권은 출판사에서 기획 의도와 함께 일정의 목차를 정해준 것이다. 그래서 에디터님께 역으로 제안을 드렸다. 해당 원고를 브런치에 연재하겠다고 말이다.
다행히 두 분 모두 흔쾌히 동의를 해주셨다. 혹자는 책에 올라갈 내용이 브런치에 있으면 나중에 책 판매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오픈소스’의 시대다. 숨기려 하기보다 내어놓아야 더 큰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쓰는 이 글이 홍보가 되어 개인 브랜딩과 책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견디는 힘’을 집필할 때 ‘견디는 힘은 무엇인가’란 글이 브런치 카카오톡에 소개되면서 10만 단위 조회 수를 기록했는데 출간 후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물론 브런치에 있는 글이 책에 올라가는 글과 100% 같진 않다. 출간 과정에서 콘셉트와 기획 그리고 개고/ 윤문으로 인해 글이 보정되거나 바뀌기 때문이다. 이처럼 브런치로 연재하며 책 쓰기를 하면, 출판사 입장에서도 작가가 어느 정도 작업 진행 중인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작품의 반응을 미리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사전 홍보도 되니 단점보단 장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을 너무 내고 싶다는 마음에 (수백, 수천만 원) 고액의 책 쓰기 속성 강의에 등록하시는 경우가 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 추천하지 않는다. 아래와 같은 생각 때문이다.
- 책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내 글이 없는데 어떻게 책이 되는가.
- 책 한 권 낸다고 인생 바뀌지 않는다. 삶이 바뀌었기에 글을 쓰고 책이 나오는 것이다.
- 단기간에 인용구 위주로 쓴 글에는 내 목소리가 없다. 차를 우려내듯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내 목소리와 생각을 내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
- 책은 돈을 들여 내는 게 아니라, 돈을 받으며 내야 한다.
많은 분이 ‘글쓰기’와 ‘책 쓰기’를 구분할 줄 알길 바란다. ‘글쓰기’라는 본질을 꾸준히 이어갈 때, 출간 계약의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더 강력하게 다가올 거라고 말하고 싶다. 더불어 출간 계약의 희열과 그 무게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그 날을 기대한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