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말 탈고 후, 전자책 출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자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책에 포함된 50여 개의 외부 참조 URL 때문. 종이책으로 내면 URL 타이핑하다 열받을 독자들이 눈에 밟혔다. 출판사와의 밀당도 지겹고.
1. 전자책 플랫폼 선택
좀 알아본 결과 처음 점찍었던 아마존은 탈락. 한글과 pdf 출판을 지원하지 않는다. 구글링해보면 한글 출판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어느 아마존 출판 대행업체에 문의해보니 공식적으로 한글은 아직 지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글 출판이 가능하다고 해도 pdf 지원을 안 하기 때문에 원드 원고를 epub로 변환해야 하는데 온라인 변환 서비스를 한 번 써보고는 바로 포기했다.
epub가 뭔지 잘 몰랐는데 일종의 반응형(?) html 포맷이더라. 텍스트 위주의 책이라면 코딩이 수월하겠지만 뷰어에 따라 달라지는 텍스트와 그림 300여 개, 표 80여 개의 레이아웃을 맞추기 위해 한 땀 한 땀 코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pdf 출판이 가능한 국내 플랫폼은 부크크와 유페이퍼 정도인데 DRM을 지원하지 않는다. 탈락! 결국 한글과 pdf, DRM을 모두 지원하는 구글 플레이 북스로 결정. 아쉬운 건 인세 배분이 70%라 들었는데 실제로는 거의 5:5다. 70%를 받으려면 조건이 까다롭더라.
2. 출판사/사업자 등록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때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나 싶어 1인 출판사를 차리기로 했다. 적당한 이름 하나 정한 후, 신분증이랑 등본 들고 구청 문화체육과를 방문하면 담당자가 출판사 이름 중복 여부까지 확인해서 다 처리해준다. 당일 등록 완료됐다는 연락이 와서 놀람. 참고로 거주지가 아닌 별도 사무실을 출판사 주소로 지정하면 임대차 계약서 확인 및 사무실 실사 과정이 필요해서 며칠 더 걸린다고 함.
다음 날 등록료 2만 원(매년 납부해야 한다)을 내고 신고확인증을 받은 후, 세무서에서 사업자 등록까지 완료. 이틀간 관공서 방문하면서 느낀 건데 공무원분들 참 친절하더라. 어버버할 뻔했는데 안내를 잘해줘서 일사천리로 끝남.
3. ISBN 발급
출판사와 사업자 등록을 한 이유는 국가에서 부여하는 도서 고유식별번호인 ISBN을 발급 받기 위해서다. 서점 유통하려면 필수. 국내 서점 유통 계획도 없고, 구글 북스의 전자책 출간 필수 조건도 아니지만, ISBN을 받으면 국가에서 정식 인증을 받은 것이라 기분이 좋아짐.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에서 제공하는 안내 절차를 따르면 된다. 참고로 ISBN을 받으려면 관련 교육도 받아야 한다는데, 난 받지 않았는데도 발급이 됐다. 개이득.
4. 구글 플레이 북스 파트너 센터 가입
가입 양식 보낸다고 바로 가입이 되는 것은 아니고 한 1주일쯤 기다린 듯하다. 일정 기간 단위로 가입 신청을 몰아서 처리하나? 가입 후, 책을 등록하고 계정 검토가 완료되기까지 기간도 1주일쯤 걸린 듯. 자세한 절차는 여기를 참고했다. 그런데 등록된 책을 살펴보니,
5. 목차가 이상하다
pdf에서는 ‘제목1-제목2-제목3’ 수준의 목차가 잘 표시되는데
구글 북스에 등록된 책은 ‘제목1’ 수준만 표시된다.
결국 구글 북스에서 전체 목차를 표시하기 위해 모든 목차를 ‘제목1’ 수준으로 바꿔야 했다.
이 정도로 끝났으면 해피엔딩인데(…)
6. 이미지도 이상하다
이미지 해상도가 매우 낮다. ‘워드 → pdf’ 저장 시 고화질 이미지 옵션을 사용했고, pdf 뷰어로는 분명 문제가 없는데 구글 북스에 업로드만 하면 책을 쓴 나도 못 알아볼 만큼의 저질 해상도를 보여준다. 그나마 크롬을 사용하면 상황이 나은 편이고, 다른 웹브라우저를 이용하면 전체적인 해상도가 더 떨어진다. 표를 구성하는 라인까지 깨져 보일 정도.
이미 판매 중인 pdf 책들을 살펴보면 상황이 다 비슷한 것 같더라. ‘복사&붙여넣기’로 이미지를 추가한 pdf, ‘그림 삽입’ 기능을 이용한 pdf, 아크로뱃으로 만든 pdf 등등 여러 버전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모두 같은 결과. 끙끙대다가 후배에게 상황을 털어놨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형, 여백을 줄여…
그동안 써왔던 워드 템플릿의 상하 5cm, 좌우 4.5cm 여백 설정을 상하 2–3cm, 좌우 2cm로 수정했다. 이후 확보된 공간만큼 이미지 사이즈를 키우고, 선명도를 40% 수준으로 높이니 그제서야 웹상에서 봐줄 만한 해상도가 나온다. 그래도 휴대폰으로 보면 암 걸릴 수 있음.
참고로 새로운(ISBN이 다른) 책을 등록할 때마다 계정 검토가 이루어지는데, 최초 등록한 책의 게시를 취소하고, 10페이지 분량의 테스트용 pdf를 ISBN 없이 등록했다가 책을 게시할 수 없다는 ‘계정 미승인’ 통보를 받았다.
다른 조건은 모르겠지만 계정 검토할 때 분량 체크는 하는 듯. 한 번 미승인 처리되면 해당 책은 버전 업데이트와 관계없이 계속 게시 불가 상태가 된다. 물론 게시(판매)만 안 될 뿐이고, 내용 확인은 할 수 있으며, 해상도 문제를 해결한 버전을 등록한 후 계정을 재승인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더니 재깍 승인해주더라.
7. 장점
작가 입장에서 전자책의 장점은 세 가지 정도인 듯하다.
- 전술했지만 처음이라 겪은 삽질을 제외하면 별로 어렵지 않다. 물론 출간과 집필은 다른 얘기지만 책을 출간하기까지 과정이 간편해지니 벌써 또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종이책은 출간 후 오타나 오류가 발견돼도 재인쇄 전까지는 꼼짝 못 하지만, 전자책은 즉시 업데이트가 가능하며, 구글 북스 플랫폼을 통해 구매자 모두에게 반영된다.
- 이건 구글 북스만의 장점일 수도 있는데 지메일 사용자에게 책을 증정(?)할 수 있는 ‘검수인’ 기능이 있다. 줬다 뺏기 있기 없기? 문의해보니 검수인 수도 무제한이라고 함. 앞으로 강의 때 수강생들에게 부교재로 배포하면 괜찮겠다 생각 중.
8. 단점
- 국내 서점 연계 여부에 따라 홍보가 많이 부족할 수 있는데, 구글 북스는 국내 서점과 연계되지 않는다(…) 국내 전자책 플랫폼인 부크크나 유페이퍼는 연계된다고 함.
- pdf 전자책의 해상도가 epub만큼 보장되지 않는다. 이건 pdf의 한계인지, 구글 북스의 한계인지 모르겠다.
- 이것도 구글 북스만의 단점일 수 있는데 epub의 하이퍼링크는 유지되는데 pdf의 하이퍼링크는 제거된다. 왜 pdf만 차별하지? -_- 전자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책에 포함된 외부 URL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는데 당황스럽다. 그래도 복사는 되니 종이책보다는 낫겠지.
9. 마무으리
탈고 후 한 달 정도 전자책 출판에 매달린 끝에 pdf를 이용한 전자책 출간이 마무리됐다. 끝낸 소감을 얘기하자면 두 번째 책을 출간했을 때와는 다르게 좀 설렜다(…) 그때는 그냥 이제야 겨우 끝났구나란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집필부터 출간까지의 과정을 혼자 해서 그러지 않나 싶다. 역시 새로운 것이 좋아.
개인적으로 첫 번째 출판사에게 계약 해지당한 후, 두 번째 출판사를 통해 두 권의 책을 출간해본 입장에서 출판사와의 계약이나 출간 과정은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케바케, 사바사고 내가 운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쉽다는 얘기는 절대 못 하겠다.
내가 원하는 책과 출판사가 원하는 책이 다를 수도 있다. 이때 전자책을 선택한다면 책을 쓰고 출간하는 즐거운 기억이 조금은 더 오래갈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훨씬 수월한 종이책 출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책을 처음 써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전자책이 좀 더 쉬운 길을 알려줄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원문: 케세라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