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의 예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Civitas Dei)』의 저술을 통해서 ‘신국(神國)’과 ‘지상국(地上國)’의 개념을 설정했는데, 두 개념을 애매하게 서술해 둘 사이의 명확한 구분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가 설정한 신국, 곧 신의 나라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후 세계의 것을 의미하는지부터 불분명했다. 14년에 걸쳐 그때그때 저술한 까닭인지, 신의 세계와 구분되는 세속 국가 권력에 대한 정의 역시 혼동되었다.
초기에 그는 공권력의 역할을 죄악에 대한 처벌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에게 외면적인 평화를 제공하는 것으로 단정했다. 그러나 점차 이단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과 적극적인 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되면서, 이후에는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이단을 처벌하고 강제적인 개종을 이루어 나가는 국가 권력이 궁극적으로 인간 삶의 내적인 개선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중세 초기 최고의 황제였던 샤를마뉴 대제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의 ‘신국’은 이러한 지점에서 결국 큰 오해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중세 사회에 성속 갈등의 주요 근거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지상국을 세속의 왕국에, 신국을 교회에 각각 상정하고 나니, 『신국론』은 세속 왕국보다 교회가 우위에 있음을 주장하는 이론적인 근거가 되었다. 교회는 머리요, 귀족들은 머리를 수호하는 팔이며, 농노들은 체제를 지탱하는 발의 역할을 담당한다. “교황은 해, 황제는 달”은 『신국론』 덕분에 가능했다.
교회는 신국론 그 자체가 되길 원했다. 스콜라 철학이 등장한 이후에도 그 욕망은 변치 않았다. 신을 앙망하는 인간의 욕망은 성당 건축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당 문의 온갖 부조(浮彫)는 구원과 심판을 이야기했다. 성화와 성상들은 성경 속 주요 장면을 충실히 재현했고,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신성한 빛을 인공적으로 쏟아내었다. 어마어마한 천장 높이와 그곳에 그려진 벽화, 근엄한 표정의 심판자 예수의 얼굴, 그레고리 성가가 울려 퍼지는 성당은 신의 나라를 현실에다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었다.
이에 대한 서술은 『장미의 이름』 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드소는 교회의 문전 장식에 끊임없이 탄복한다. “이미지는 문외한(평신도)들의 문헌이 아니던가.”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것은 오직 성직자의 권한이기에, 평신도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성서를 대신하는 것은 ‘이미지’, 곧 문전장식과 성화같은 것이었다.
성서 속의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 그 자체로 묘사된다. 전능한 주의 형상이 발하는 광채는 인간은 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구약의 「출애굽기」에는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고 조르는 선지자 모세의 외침이 등장한다. 여호와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대답하고는, 주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모세가 죽지 않도록 손으로 덮어주었다. 모세는 오직 신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다.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신약의 「요한복음」에서,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는 빌립의 요청에 대한 예수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이미지에 박했던 성서의 가르침은 성상과 문전장식에 대한 논란으로 옮겨 간다. 신이 직접 만든 10가지의 계율에는 심지어 ‘어떠한 형상으로도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대목이 있을 정도였다. ‘이미지’의 합법성이 승인된 것은 787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부터였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고 성상을 숭배하는 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판명했던 것이다. ‘신의 말씀의 강생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부인해 버렸다. 이렇게 교회의 성상은 공인된 자격을 얻게 되었다.
성상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문맹자에 대한 교육’을 위함이었다. 성상은 무식한 평신도들에게 성서의 역사를 가르치고, 신의 자비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했다. 성서의 난외(欄外)에 채색삽화를 그려 넣는 것도 이와 같은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목적에 치중했다 하더라도 중세의 예술이 미(美)에 둔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근대 이전 예술의 핵심은 언제나 아름다움이었다. ‘사랑’에 대한 아드소와의 대화 도중, 우베르티노는 성모상을 가리키며 “육체의 아름다움도 천상적인 아름다움의 표징”이 된다고 말한다. 아드소는 아름다운 처녀를 통해서 하나님이 지은 만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중세 미학의 알레고리적 특징을 나타낸다. 중세에는 세계를 상징과 알레고리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했다.
알레고리란 표면적인 이야기나 묘사 뒤에 어떤 정신적 도덕적 의미가 암시되어 있는 비유, 풍유(諷諭)를 뜻한다. 중세인들은 이 알레고리를 풍부하게 활용했다. 채색수도사들이 독수리 머리에 사자 몸을 한 괴수들을 사실감 있게 그려놓은 것은 높은 진리의 표징을 위함이었다. 여성의 몸 역시 대표적인 알레고리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이 선악과를 따먹게 유혹한 악의 근원이라 여겨 얼굴도 마주 보지 않았던 수도자도 있었지만, 다른 의미에서 여성은 천지창조의 완성이기도 했다. 구약성서의 「아가서」는 혼인을 앞둔 신부가 지닌 육체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묘사하지만 그것은 외설이 아니며, 타락의 원흉으로 존재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여성의 몸을 찬양하고 그에 대한 초자연적인 유사물을 발견하는 과정을 가졌던 것이다.
우베르티노는 성모상을 가리켜 “조각가가 저분을 여느 여성처럼 구색을 있는 데로 갖추어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며, 여성의 아름다움을 천상의 미와 연결시킨다. 아름다움을 적절한 상징 속에 드러낼 줄 알았던 것이다.
물론 상징물과 그에 숨겨진 의미 사이에 언제나 뚜렷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알레고리의 상징성에는 일정한 ‘비약’이 숨어 있기에, 그 법칙을 정확하게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알레고리를 더 가깝게 해석해내려면 사물 그 자체의 모습보다는 상징물의 정신적 의미, 도덕적이고 성경적인 의미와 유추적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에서, 에코는 소설의 제목을 짓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마터면 『수도원의 범죄사건』이나 『멜크의 아드소』와 같은 삼류 소설 냄새가 나는 제목이 될 뻔했다고.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은 그의 의도대로 독자들을 꽤나 혼란스럽게 한다.
에코는 제목이 독자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할 것이라 미리 예측하고서, 책의 말미에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라는 베르나르의 시구를 인용해 수많은 해석 중 하나를 선택할 여지를 남겨 놓았다. 어제의 영광, 영화의 도시, 아름다운 왕녀들은 모두 없어지지만 그 순수한 이름은, 적어도 이름은 남는다. 하지만 “장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윌리엄은 말했다. 이름은 인간의 약정일 뿐, 결코 절대적인 사물의 궁극이 될 수 없다.
르네 마그리트도 그렇게 말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언어는 경험적 세계에 적합한 전달체계일지는 몰라도,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구성 모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언어와 이미지의 허술한 짝짓기에 대한 자신의 의문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는 “한 단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예측할 수 없다. 단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용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바라보는 방식엔 늘 편견에 존재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파이프를 그린 그림의 이름을 〈두 가지의 신비〉라 붙이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적어 넣은 것은 그러한 생각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소설 속 중세의 수도사 윌리엄은 중세를 뛰어넘는 것으로 모자라 모더니즘을 건너뛰어 ‘아방가르드’적인 사고를 갖춘 인물인 모양이다.
원문: 한겨울의 브런치
참고 문헌
- 강유원, 『장미의 이름 읽기 : 텍스트 해석의 한계를 에코에게 묻다』, 도서출판 미토, 2004.
-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역,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 열린책들, 1992.
- 노만 F. 캔더, 이종경 외 역, 『중세이야기 : 위대한 8인의 꿈』, 새물결, 2001.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