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어렵다고요?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자신을 한번 돌아보세요. 한글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했었는지요, 아니 신경을 쓰기는 했었는지요.”
글쓰기 강의를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에요. 덧붙이는 말도 있고요.
“영어의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만이라도 한글에 신경을 써보세요. 그럼 한글이 얼마나 쉽고, 아름답고, 과학적인 글인 줄 단박에 알게 될 테니까요.”
대부분은 그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시인하는 거죠.
어느 시대엔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마는 요즘처럼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컸던 때는 없었지 않나 싶네요. 그래서겠죠? 글쓰기 책 출간이 붐을 이루고, 개중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에 오른 것도 여럿이니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 데 비해 SNS나 각종 매체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과거에 비해 나아진 걸로 보이지는 않아요.
하기야 대통령부터가 국적불명의 글을 쓰고, 법조 출신의 정치인이 쓴 글에선 비문과 오문이 수두룩하고,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SNS에 글을 올리면서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않기도 하더라고요. 정치인만 그럴까요? 중·고등학교 교사, 대학교수, 공무원, 의사, 심지어는 작가입네 하는 사람들조차 기초적인 한글맞춤법을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이쯤 덩달아 의문이 들기도 해요. ‘아, 정말 우리글은 어렵고 복잡한 걸까?’
꼭 알아야 할 것: 완벽한 글을 쓸 수는 없다
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요? 저 역시 자신할 입장은 아니에요.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문과 오탈자를 양산하고 있을 뿐이죠. 글이라는 게 그래요. 쓰면 쓴 만큼 조금씩 느는 건 사실이지만 완벽한 글을 쓴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 거죠.
그러니 단번에 실력을 향상시키겠다거나 단기간에 훌륭한 글쟁이가 되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난센스일 수밖에 없는 거죠. 남미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보르헤스는 “완성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고 있어요. 글이란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이지 결코 완벽한 글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인 거죠.
글을 잘 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많이 써보는 거예요. 그러나 무작정 쓴다고 느는 건 또 아닐 거예요. 그래서 독서를 병행해야 하는 거죠. 좋은 문장을 많이 접할수록 좋은 문장을 쓸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글쓰기를 넘어 인문학까지 담긴 <고종석의 문장>
그런데 독서라고 하면 또 막연하기만 해요. 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글쓰기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만 해도 수십, 수백 종은 되거든요. 결국 누군가 먼저 읽고 그것들에 대한 맞춤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는 거죠. 제가 감히 그 역할을 해보려는 것이겠고요. 자, 그럼 글쓰기 책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 아시죠? <동물농장>과 <1984년>을 쓴 조지 오웰 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소설가로서도 좋아하지만, 에세이스트로서 저널리스트로서 더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 작가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짧은 에세이를 썼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입니다. (중략) 오웰은 생계 때문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네 가지 동기에서 글을 쓴다고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동기는 순전한 이기심입니다. 두 번째 동기는 미학적 열정입니다. 세 번째 동기는 역사적 충동입니다. 오웰이 마지막으로 거론한 글쓰기의 동기는 정치적 목적입니다.”
당대의 문장가 고종석 선생의 근간 <고종석의 문장>(알마, 2014)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어서 책은 장 폴 사르트르와 롤랑 바르트를 언급하기도 하고, 난데없이 수학자 가우스가 등장시키는가 하면, 예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으로 흘러드는 것으로 도입부를 채우고 있어요. 일테면 이런 식이지요.
“제 독서 범위 내에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동문 세 권을 고른다면 토머스 페인의 <상식>,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입니다.”
그중 특히 <공산당 선언>의 서문을 일러 가장 인상적인 첫 문장이라고 말해 놓고는, 그에 필적할 만한 첫 문장을 가진 책으로, 뜻밖에도 전혀 선동적이지 않은 소설 <러브 스토리>의 첫 문장을 들이밀고 있기도 하네요. 내친걸음이니 <러브 스토리>의 첫 문장을 옮겨 볼까요?
“What can you say about a twenty-five-year-old girl who died? That she was beautiful. And brilliant. That she loved Mozart and Bach. And the Beatles. And me.(스물다섯 살에 죽은 여자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예뻤다고. 그리고 총명했다고. 그녀가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비틀즈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고.)”
참고로, 베르나르 키리니의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문학동네 간)에는 첫 문장이 아름다운 책으로 카뮈의 <이방인>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역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소개하고 있어요. 고종석과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는 거죠.
아무려나 <고종석의 문장>은 단순히 글쓰기 책이라기보다는 그의 인문학적 소양을 집대성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참으로 다양하고 알찬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글쓰기 책 본연의 의무를 방기해선 안 되겠죠. 이쯤 <고종석의 문장>에 나오는 글쓰기 관련 내용 하나쯤 소개해 볼게요.
Tip1, 고종석이 말하는 “명사문 사용법”
앞에 어떤 문장이 나오지 않으면 ‘-ㄴ/은/는/던 것이다’로 끝나는 명사문은 결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철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배가 고팠던 것이다.(0)
철수는 냉장고 문을 열었던 것이다.(×)오후 내내 교실에서 영희가 보이지 않았다. 영희는 조퇴했던 것이다.(0)
오후 내내 교실에서 영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글의 첫 문장이 ‘-ㄴ/은/는/던 것이다’로 끝나면 그 문장은 100퍼센트 오문이고, 그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첫 번째 글쓰기 팁(Tip)으로 ‘명사문’을 언급했네요. 결국 한글에서 중요한 건 서술어라는 얘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거죠. 사실 서술어와 관련한 설명이 자세하고도 설득력 있게 나오는 책은 <고종석의 문장>보다는 소설가 안정효의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모멘토, 2006)라고 할 수 있어요. 책에서 저자는 특히 서술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말이다, ~하고 있다’ 등의 상투적이며 늘어지는 서술어의 사용을 경계하라고 강조하고 있죠.
특히,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부분은 피동형 서술어(영어로는 ‘수동태’)에 대한 설명이에요.
Tip2, 안정효가 말하는 “수동태의 오남용을 삼가라!”
정복과 이동의 적극적인 역사로 인해서 동사가 발달한 서양 언어에서는 대부분의 동사가 쌍방향으로 작용한다. 서양인들은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만큼 그 공격의 대상으로서 역사를 경험하는 집단도 많기 때문이어서인지 수동태가 매우 발달되었다.
“The die is cast(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러나 수동태는 소극적인 의사표현이다. 신문 기사의 제목으로는 가급적 수동태를 피하는 것이 좋다. ‘케네디 대통령 피격(Kennedy Is Shot.)’의 경우처럼 당한 사람이 워낙 중요한 인물이어서 그의 이름을 살리느라고 수동태 제목을 뽑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Crook Kills Cop(나쁜 놈이 경찰관 살해)’이라는 식으로 어떤 상황이나 행동의 주체를 적극적으로 부각하기가 보통이다.
— 안정효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중에서.
글쓰기 관련 책 중에서도 맞춤법이나 글쓰기 요령을 알려주는 책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두 권을 소개했네요. 저자들 역시 고종석과 안정효라는 당대의 문장가들이니 그들의 책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격과 수준을 유지한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이태준의 <문장강화>(창비, 2005)가 전설의 고전이라면 두 저자의 책은 현실의 고전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기도 하고요.
국내 저자의 글쓰기 책 두 권을 소개했으니 균형을 맞추는 의미에서 그에 대응할 만한 외국저자의 책도 골라볼 필요가 있겠지요. 마침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첫 번째로 꼽을 만한 저자들과 그들의 명저가 있네요. 셰퍼드 코미나스의 <치유의 글쓰기>(홍익출판사, 2008)와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와 <버리는 글쓰기>가 그것들이죠.
셰퍼드 코미나스의 <치유의 글쓰기>는 전 세계에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글쓰기 관련서가 아닐까 싶어요. 저자 자신이 50년 동안 일기를 썼을 만큼 열렬한 글쓰기의 삶을 살았던 경험자로서 글쓰기는 오롯이 자기 자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글쓰기야말로 훌륭한 자기치유의 과정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그러한 경험을 고스란히 들려주고 있는 책이죠. 단, 유사한 제목의 책이 많으므로 책을 고를 때는 저자의 이름을 꼭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만 진정으로 ‘치유’의 글쓰기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살아가면서 일기 쓰는 일을 가장 우선적인 습관으로 생각하고 이 일에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면 그것은 최고의 자기배려가 될 것이다. 글쓰기는 자기 안에서 기쁨을 찾아내게 해주는 한편, 슬픔과 갈등의 경험과 직접 대면하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치유의 글쓰기> 138쪽에서.)
Tip3,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하는 “구어체의 특성”
(1) ‘~하였다’가 맞는 걸까요, ‘~했다’가 맞을까요?
(2) ‘나는 아버지이다’가 맞는 표현일까요, ‘나는 아버지다’가 맞는 표현일까요?
둘 다 맞는 표현이에요. ‘하였다’는 글말(문어체)이고, ‘했다’는 입말(구어체)이에요. 마찬가지로 ‘나는 아버지이다’는 글말이고, ‘나는 아버지다’는 입말이지요. 결론적으로 입말은 짧고 글말은 길다는 얘기인데요, 입말의 특성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볼까요.
(3) 주어와 목적어 생략이 잦다. 예를 들어 볼게요.
너 밥은 좀 먹었니? –> 밥은 좀 먹었니? –> 좀 먹었니? –> 밥은?(4) 양성모음을 어감이 더 강한 음성모음으로 발음한다.
가라고 –> 가라구, 하나 –> 허나, 빼앗아 –> 뺏어, 그리고 –> 그리구(5) 일부 조사가 아예 교체되기도 한다.
에게 –> 한테/ 더러/ 보고, 와/과 –> 하고/ 랑(6) 입말은 짧다.
이것은/ 이것을 –> 이건/ 이걸
무엇/ 무엇이/ 무엇을 –> 뭐/ 뭐가/ 뭘
하였다/ 되었다 –> 했다/ 됐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 나도 마찬가지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우선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Writing Down the Bones>(한문화 간, 2013)를 통해서 글쓰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글쓰기를 하기 전에 어떤 각오가 필요하며, 글을 쓰는 과정은 또한 어떤 여정인지를 진득하게 들려주고 있어요. 이어지는 그의 글쓰기 관련 책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거나 글쓰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알뜰한 정보와 살뜰한 조언을 들려주고 있는 거죠.
그 여정의 끄트머리에서 나온 책이 바로 나탈리 골드버그 자신의 오랜 글쓰기 여정의 큰 획을 긋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 책 <버리는 글쓰기Thunder and Lighting>이에요. 보통의 책이라면 ‘프롤로그’가 나올 부분에 독자를 향해 강력한 ‘경고’의 말을 전하고 있어요.
“나는 친구들 중 글쓰기를 통해 삶이 행복해진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불과 15년 전에 독자들에게 노트를 펴고 죽을힘을 다해 글을 쓰라고 했던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 희열도 그런 희열이 없다고 말했다. 진심이었고, 사실이었다. 마치 선승이 모든 방해 요소를 물리치고 숨을 고르듯이 나는 글쓰기에 내 모든 것을 바쳤고, 이제는 쉰이 되었다. 나는 어리석었던 것일까? 잘못된 길을 선택한 것일까? (중략)
글쓰기는 고독을 해소시키고, 굳어있는 마음을 풀어주고, 정신을 집약시켜 우리가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무엇에 대해 써는지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글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 머리와 가슴을 물리적으로 손에 연결시키고 쓴 글을 자유롭게 소리 내어 읽는 행위는 우리를 바꾸어 놓았다.” (나탈리 골드버그 <버리는 글쓰기>의 여는 글, ‘경고’에서.)
비슷한 맥락의 글은 에필로그에도 등장하네요. 이런 식이에요.
“워크숍에 참가한 학생 하나가 손에 든 서류 가방을 휘저으며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엔지니어입니다. 1년에 4만 6천 달러를 버는데요, 글쓰기를 해서 그 정도를 벌려면 얼마나 연습을 해야 할까요?” “그냥 하던 일을 계속 하세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만약 그 학생이 다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이렇게 꽥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말할 것이다. “출세도 없어! 장담도 못해! 자격증도 없어! 보상도 없어!”
결국에는 모든 걸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글쓰기를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당신은 아무 지표도 없는,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해골만 가득한 길 위에 서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정을 떠났고, 다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몇 번이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내가 당신의 안내인이 되어 주겠다. 경고했으니 이 말도 덧붙여야겠다. 자신의 근본을 알고 싶고, 자신이라는 지긋지긋한 노란색 우비를 벗고 죽음의 어두운 얼굴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바로 지금, 되돌아갈 수 없는 절의 묵직한 대문이 끼익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입장하라.”
경고와 조언의 사이에 놓인 건 저자의 온전한 사색의 여정이기도 해요. 수양하는 수도자의 삶을 사는 저자는 수행의 과정 중에 길어 올린 사색의 결과들을 책을 통해 오롯이 풀어내고 있으니까요. 책의 결론과도 같은 말은 이렇게 정리되고 있고요.
“글쓰기는 진정한 영적인 길이며, 진정한 선의 방식이다. 글쓰기는 당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누구도 속일 수 없고, 특히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 당신은 실천하는 사람인 동시에 실천이 되는 사람이며, 세속적인 사람이자 수도승이다. 내면과 외면을 합칠 수 있는 기회이며, 어차피 둘은 같은 것이므로 둘이 별개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위대한 도전, 위대한 훈련이다. 크나큰 길이다.”
Tip4 스티븐 킹과 김탁환이 말하는 “자기 글을 교정하는 법”
“컴퓨터로 초고를 쓰면 안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잘못 쓰거나 어색한 구절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쇄해 보면 원고가 아주 깔끔해 보이기 때문에 고쳐야 할 부분을 찾기가 더 어렵다.(…) 컴퓨터로 초고를 작성하되 교정할 때는 인쇄한 원고를 큰 소리로 읽어보면 좋겠다. 그러면 어색한 구절이 드러난다.”
—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이강룡 저/ 유유 간, 2014)
너무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버렸네요. 워낙에 유명한 저자들의 책을 소개하려니 저도 모르게 그들의 문체와 사유의 흐름을 좇고 말았어요. 그렇기로 글쓰기 책이 그렇게 심각하고, 철학적이기만 한 건 아니에요. 외려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며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선택적으로 가져가도록 유도하는 책들이 주종을 이룬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 책도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 바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김영사, 2002)가 아닐까 싶어요. 킹에게 글쓰기의 기교 따위를 설명하는 일은 중요치 않지요. 그 보다는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여과 없이 들려주는 것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나름의 소득을 얻으라는 식이고요.
발상법, 자유롭게 표현한 문장들, 무엇보다 끊임없이 쓰고 또 쓰는 것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작가의 조언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문학작품이면서 동시에 흥미로운 글쓰기 교본이 되고 있는 거죠.
“글쓰기는 창조적인 잠이다. 글쓰기에서든 잠에서든 육체적으로 안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낮 동안의 논리적이고 따분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정신과 육체가 일정량의 잠을 자듯이 깨어있는 정신도 훈련을 통하여 창조적인 잠을 자면서 생생한 상상의 백일몽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훌륭한 소설이다.”
이것이 바로 <유혹하는 글쓰기>의 저자 스티븐 킹의 ‘소설론’이에요. 스티븐 킹과 마찬가지로 국내 소설가들 역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 책을 내고 있지요. 앞서 소개했던 고종석과 안정효가 그랬듯 이만교(<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 등)와 이외수(<글쓰기 공중부양>) 등도 글쓰기 책을 낸 소설가들이죠.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소설가가 쓴 글쓰기 책의 백미는 따로 있어요. 어느새 성실한 작가의 대표가 된 김탁환의 <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살림, 2009)이 돋보이거든요.
“천(千)이란 도달하기 힘든, 그래서 더욱 특별한 숫자로 사람들에게 자리 매김한 듯합니다. <천년의 사랑>(양귀자 소설)도 있고, <천 일 동안>(이승환 노래)도 있고, <천 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 소설)도 있습니다. 요한 페터 에커만은 괴테를 천 번 정도 만났다고 하는군요.”
<천년습작>의 미덕은 작가 본인의 습작기는 물론 다양한 작가들의 습작기 혹은 작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좇고 있는 것이지요.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건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습닥기 단상을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결국 김탁환이 하고자 하는 얘기는 글쓰기가 결코 우연의 산물이거나 잠깐 동안의 관심과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글쓰기야말로 지고한 예술의 경지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김탁환의 입을 빌어 다시 말하거니와, 흔히 노동자를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로 나누고, 예술가를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 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명백한 오해예요. 예술가는 육체노동자이자 정신노동자이기 때문이지요. 육체는 정신의 깨달음을 전달하는 도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각가의 손, 발레리나의 발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인 거죠.
“예술가는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존재입니다. 수액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일도 없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요.
그러나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조용히 그리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내게 고맙기만 한 고통 속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내가 모든 것이라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김탁환의 <천년습작>에서 재인용.)
Tip5. 구두점에 대하여.
쉼표
불필요한 곳 혹은 엉뚱한 곳에 나태하게 찍혀 있는 쉼표는 글의 논리와 리듬을 망쳐놓는다. 쉼표는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아주 많이 사용해야 한다. 쉼표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천의무봉의 문장을 쓰거나 쉼표의 앞뒤를 섬세하게 짚게 하는 치밀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느낌표!
근래 부쩍 남용되고 있는 부호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감탄할 만한 대목에는 느낌표를 찍으면 안 된다. 작가가 먼저 ‘느끼면’ 독자는 냉담해진다. 반대로 전혀 감탄할 만하지 않은 대목에 의외로 찍혀 있는 느낌표는 유혹적이다.
말줄임표
말줄임표를 자주 사용하면 글이 겸손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적었다. “아마추어는 말줄임표를 마치 통행 허가증처럼 사용한다. 경찰의 허가를 받고 혁명을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말줄임표는 겸손함이 아니라 소심함의 기호다.
마침표.
마침표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담배는 백해무익이요, 마침표는 다다익선이다. 많이 찍을수록 경쾌한 단문의 문장이 생산된다. 이사크 바벨은 이렇게 썼다. “어떠한 무쇠라 할지라도 제자리에 찍힌 마침표만큼이나 강력한 힘으로 사람의 심장을 관통할 수는 없다.”
—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1)에서 발췌/요약
아직도 언급하고 싶은 책들이 많아요. 그러한 책들에 등장하는 주옥같은 문장과 가르침을 뒤로하고 서둘러 글을 끝내려니 마음이 무겁네요. 글쓰기 책은 너무나도 많고, 그걸 통해 익히고 공부해야 할 것 또한 너무나 많으니까요. 그러나 한꺼번에 모든 걸 해결하려 하지 말라는 게 앞서 소개한 책에 나오는 공통적인 지침이라는 걸 상기하면서, 오늘은 이쯤 마무리를 하려고 해요.
대신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보다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맞춤법과 글쓰기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들은 다음 주에 다시 언급해볼 생각이에요. 기대해 주신다면 말이죠. 참고로, 아래의 책목록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들이에요. 감히 저의 졸저들까지 넣었고요.
보너스. 읽어볼 만한 글쓰기 관련 책들.
1. 고종석 <국어의 풍경들>(문학과 지성사, 2004년, 6쇄)
2. 고종석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알마, 2014)
3. 고종석 <신화와 역사가 있는 7일간의 영어여행>(한겨레신문사, 1998)
4. 고종석 <고종석의 문장>(알마, 2014)
5. 김경원`김철호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낱말편1) 유토피아, 2010년
6. 김경원`김철호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낱말편2)
7.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문장편)
8. 김철호 <국어독립만세>(유토피아)
9. 안정효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10. 정희모, 이재성 <글쓰기의 전략>(들녘)
11. 루츠 폰 베르더 등저 <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들녘)
12. 김남미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나무의 철학, 2013)
13. 셰퍼드 코미나스 <치유의 글쓰기>(홍익출판사, 2008)
14. 이태준 <문장강화>(창비, 2005)
15. 이오덕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보림)
16. 사이토 다카시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루비박스)
17.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18. 나탈리 골드버그 <버리는 글쓰기>
19. 김탁환 <김탁환의 천년습작>
20. 이윤기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웅진지식하우스, 2013)
21. 이강룡 <번역자를 위한 우리글 공부>(유유, 2014)
22.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공부하는 삶>(유유, 2013)
23. 김영수 <일일일구>(유유, 2013)
24. 아이작 아시모프 <신화 속으로 떠나는 언어여행>(웅진)
25. 쇼펜하우어 <문장론>(지훈)
26.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7.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3)
28. 남경태 <개념어 사전>(들녘)
29. 최준영 <결핍을 즐겨라>(추수밭, 2012)
30. 최준영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이지북, 2013)
31. 최준영 <유쾌한 420자 인문학>(이룸나무, 2011)
32. 베르나르 키리니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문학동네, 2013)
33. 쓰루가야 신이치 <책을 읽고 양을 잃다>(이순)
34. 메러디스 매런 <잘 쓰려고 하지마라>(생각의길, 2013)
35. 파리리뷰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다른)
36.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원문: 대안미디어 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