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움베르토 에코를 장 자크 아노의 영화로 처음 만났다. 숀 코너리와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케미가 의외로 잘 어울려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장미의 이름>을 텍스트로 읽은 건 무료했던 1992년 새내기 시절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라고 에코가 촘촘하게 심어놓은 ‘기표’와 ‘기의’를 만끽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에코를 책으로 제대로 마주한 건 1997년이었다. 당시 지도교수님께 조교로 발탁되어 연구실 책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듀이십진분류법과는 다른 교수님만의 정리법으로 머리에 쥐가 내릴 때,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을 읽었다. 제목만큼이나 재기발랄한 에코의 에세이 모음집이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포르노 영화를 식별하는 방법>에 꽂혀버렸다. 에코가 말하는 포르노 영화 구별법은 단순하다.
“포르노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차에 올라서 먼 거리를 생각없이 이동하는 사람, 호텔 접수대 앞에서 서명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는 커플,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가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신사, 서로에게 자신은 돈주앙보다 사포를 더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기에 앞서 온갖 술을 천천히 홀짝거리며 마시거나 레이스와 블라우스를 하염없이 만지작거리는 처녀들. 포르노 영화에서 거친대로 간략하고 힘이 넘치는 성교 장면을 보기 위해 서는 교통국에서 후원금을 내도 됨직한 다큐멘터리를 꾹 참고 봐줘야 한다. (중략)
다시 한 번 얘기하겠다. 영화관으로 들어가라. 만일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갈 때 등장인물이 여러분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낭비한다면, 지금 당신이 보는 영화는 포르노 영화이다.”
그렇게 나는 에코에게로 빠져들었다. (세운상가 키드인 나를 인문학의 길로 이끌다니, 에코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지난 2008년 에코는 파리 리뷰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어인 라일라 아잠 잔가네가 에코의 저택을 방문했을때의 회고다.
“그는 이곳에 책이 3만 권 있고, 시골 저택에 2만 권이 더 있다고 설명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과학책과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들, 소쉬르와 조이스에 대한 비평들이 눈에 띄었고, 중세 역사에 관한 책과 신비주의에 대한 원고들만 모아 놓은 책장도 있었다. 많이 읽어서 닳아버린 책들로 인해 서재는 생기가 넘쳤다.”
얼마 전 남재희 전 장관이 한겨레신문에 기증한 서적이 2만 권이고, 서평가 로쟈가 연간 책을 구매한 금액이 2천 5백만원이 넘는다고 하니, 천하의 에코치고는 그 수량이 많은 것 같진 않다. 에코를 문학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준 사람은 누구일까?
“강박적일 정도로 책을 많이 읽으시던 외할머니시죠. 외할머니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밖에 못 다니셨는데도 시립도서관 멤버였고 일주일에 두세 권의 책을 저에게 빌려다 주셨어요.(중략) 어머니는 학교를 일찍 그만두긴 했지만 언어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감수성을 갖고 계셨어요. 저는 어머니에게서 글쓰기에 대한 진정한 취미와 제 최초의 글쓰기 스타일을 물려받았을 겁니다.”
이런 이기적 유전자를 봤나. 리처드 도킨스가 쾌재를 부르겠다.
에코는 최근 <중세>의 편집자로 나서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중세>를 펴낸 국내 출판사를 통해 에코의 내한을 추진하려고 했었는데, 그가 사양해서 불발된 바 있다. 에코가 중세에 끌린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보기에 중세는 암흑시대가 아닙니다.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시대였고, 그 시대의 비옥한 토양에서 르네상스가 출현했지요. 혼란스럽고 활기찬 변화의 시대였고, 근대 도시와 은행 체계, 대학, 언어, 국가, 문화를 갖춘 근대적 유럽이란 개념이 탄생한 시대였죠.”
중세를 연구하던 젊은 학자는 1954년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이 만들어지자, TV시청, 만화책, 추리소설 등을 즐기며 기호학에 천착하게 된다. 대중매체에서 생산된 어떤 것이라도 문화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가 탄생한 배경이다.
에코의 창작과정을 듣노라면 눈물겹다. 딱 들어맞는 어조를 찾아내기 위해서 수십 번 고쳐 쓰기를 반복하니 말이다. 자신의 글에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에코는 때때로 문장들을 소리 내서 읽을 정도의 완벽주의자다.
“지금은 컴퓨터가 있어서 수정 과정이 변했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손으로 쓰고 제 비서가 타자기로 쳐주었지요. 같은 문장을 열 번이나 고치면 다시 베껴 쓰는 게 아주 힘들어요. 카본 복사지를 사용하고 가위로 풀로 수정했지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움베르토 에코의 촌철살인은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을 알고, 포르노 영화를 식별할 줄 알며, 논문을 잘쓰는 방법을 아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움베르토 에코는 현지시각으로 2월 19일 영면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이 한마디를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데, 책을 읽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엄청나게 다양한 개성을 개발할 수 있답니다.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수없이 많은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그건 굉장한 특권이지요.”
원문: BOOKLOUD / 작성: 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