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REIGN AFFAIRS에 기고된 「Capitalism After the Pandemic」을 번역한 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 정부는 3조 달러(3,250조 원)가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금융 시스템에 쏟아부었습니다. 신용경색을 막고 세계 경제가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실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실물 경제 대신에 금융 부문에 대부분의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각국 정부는 위기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대형 투자은행을 구제했고, 경제가 회복되자 정부 지원으로 살아남은 금융기관들이 회복의 과실을 누렸습니다.
납세자인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나아진 점이 없었죠. 위기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부실하고, 불평등이 만연한, 탄소배출이 심각한 경제가 이어졌습니다. “위기는 곧 좋은 기회”라는 정책 분야의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은 지난 금융위기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가 왔습니다. 많은 국가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과 경제봉쇄 조치로 휘청이는 바로 지금입니다. 각국은 바이러스로 인한 보건 위기와 뒤를 이은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내놓았고,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규정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이러한 조치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 실패와 위기에 대한 최후의 보루로서 돈을 뿌리는 개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시장 실패를 해결하고 바람직한 시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쉽게도 세계는 이미 2008년에 좋은 기회를 한번 놓쳤습니다. 그러나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맞닥뜨린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단순히 경제 성장을 북돋는 것을 넘을 수 있습니다. 각국은 성장의 방향을 적절히 조정해 더 나은 경제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기업을 도와주는 대신에, 공익을 추구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거나 조세회피처에서 세금을 회피하는 기업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정부는 위험을 사회화했지만, 보상은 사유화했습니다. 국민은 난장판을 정리하는 데 세금을 냈지만, 정작 위기가 끝나면 보상은 대기업과 투자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수많은 기업은 어려움에 부닥쳐 필요할 때만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고, 정작 문제가 해결되고 호황이 찾아오면 정부는 뒤로 빠지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새로운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해 그동안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좋은 기회입니다. 기업에 구제금융을 대가로 공익을 위한 활동을 요구하고, 전통적으로 민간 기업들만 누렸던 성공의 열매를 국민들과 함께 나눠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게임의 규칙을 바꾸지 않은 채 목전의 위기만 해결하는 데 급급하다면, 위기 뒤에 찾아오는 성장은 포용적이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추구하는 기업들에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정부의 개입은 헛된 낭비로 끝나고, 이번에 놓친 기회가 새로운 위기를 부채질할 것입니다.
녹슨 시스템
선진국은 코로나 팬데믹 전부터 경제 구조의 문제에 시달려 왔습니다. 우선, 금융 자본이 금융 부문 내에서만 돌면서 장기 성장의 기반을 잠식했습니다. 금융 회사가 얻은 이익이 인프라, 혁신 생태계 등 생산적인 부문에 투입되지 않고, 은행, 보험사, 부동산 등 금융 부문에 재투자된 것이죠.
예를 들어, 영국의 모든 은행이 대출한 금액 중 10%만이 비금융 부문에 투자됐고, 나머지 90%는 부동산과 금융자산으로 쏠렸습니다. 선진국에서 1970년 전체 대출의 35%를 차지했던 부동산 대출은 2007년 60%까지 상승했습니다. 최근의 금융시스템은 부채를 늘리고, 투기적 버블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거품이 터지면 은행과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구제금융만 쳐다보게 되겠죠.
두 번째 문제는 다수의 대기업이 단기 수익에 급급해 중장기 투자를 등한시하는 것입니다. 분기 수익과 주가에 매몰된 최고경영자와 이사진은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끌어올리며 주주에게 보상했고, 자신들의 급여이기도 한 스톡옵션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지난 10년간,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은 3조 달러(3,300조 원)가 넘는 자사주를 매입했습니다. 자사주 매입이 늘어나면서 임금, 근로자 훈련, 연구개발 투자로 돌아갈 몫이 줄어들었습니다.
정부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도 뼈아픕니다. 뻔히 보이는 시장실패가 나타난 뒤에야 정부가 개입했고, 정책은 너무 늦은 데다가 부실했습니다. 정부가 사회의 가치를 공동으로 창출하는 파트너가 아니라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해결사 역할을 할 때, 공공의 적극적 자금 지원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프로그램, 교육, 보건의료 전 분야에서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위태로운 공공-민간 관계
이러한 실패가 겹치면서 결국 경제적, 전 지구적 대위기를 불러왔습니다. 금융위기는 부동산과 금융권에 대한 과도한 신용 유입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실물 경제를 부양하고 지속가능 성장 부문에 투입돼야 하는 자본이 자산 버블과 가계 부채를 부풀리는 쪽으로만 쏠렸기 때문입니다.
반면,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장기 투자가 부진했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UN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은 기후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 정부는 주로 화석연료 기업에 연간 200억 달러(22조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EU의 보조금은 연간 약 650억 달러(72조 원)나 됩니다. 정책 당국은 기껏해야 탄소세나 녹색투자 실명제와 같은 인센티브나 만지작거릴 뿐, 10년 내 들이닥칠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화석연료 금지조치는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이런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팬데믹 기간 전 세계는 온통 발등에 떨어진 보건 위기를 해결하기 급급했고, 앞으로 들이닥칠 기후위기와 금융위기에는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경제봉쇄 조치에 따라 비정규직 프리랜서의 서비스로 이뤄지는, 이른바 ‘임시직 경제(gig eonomy)’ 분야의 노동자들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예금은 물론, 직장 의료보험, 병가 등 고용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고난의 시기를 버텨야 합니다. 더불어 지난 2008년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었던 기업 부채는 늘어나기만 합니다. 팬데믹으로 급감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막대한 대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당수의 기업이 위기를 헤쳐나갈 장기 전략 없이 주주 가치를 위해 단기 이익에 매몰된 경영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한편 팬데믹은 공공과 민간의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졌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은 연간 400억 달러(44조 원)를 연구개발에 지원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도 큰 금액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약 회사는 미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국민을 위해 적정한 가격의 치료제나 백신을 제공할 의무는 지지 않습니다. 제약회사 길리어드(Gilead)는 7,050만 달러(770억 원)의 연방정부 보조금을 받아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를 개발했지만, 지난 6월 미국의 환자들에게 약값으로 3,120달러(340만 원)를 받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대형 제약사들의 전형적인 행태입니다. 한 연구는 미국 식품의약국(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승인한 210개의 약에 국립보건원의 자금이 지원됐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약값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입니다. 제약 회사는 특허를 악용해 공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기업들이 피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영역에 걸치는 특허를 출원해 경쟁을 제한합니다. 그중 일부 특허는 개발 극초기의 기술에 해당하기 때문에, 연구의 결과뿐만 아니라 연구를 수행하는 도구까지 전적으로 한 기업의 소유로 인정합니다.
정부는 오랜 기간 위험을 사회화하고, 보상을 사유화해 왔습니다. 빅테크 기업도 이와 비슷하게 부당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실리콘밸리는 리스크가 큰 기술 개발에 대한 미국 정부의 투자가 이룬 결실입니다. 미국 국립 과학재단은 지금의 구글을 있게 한 검색 알고리즘 개발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미국 해군은 우버에 없어서는 안 될 GPS 기술 개발을 지원했으며,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기획청은 인터넷, 터치스크린, 시리, 그리고 아이폰의 모든 핵심 부품 개발을 후원했습니다. 기술 개발에 세금을 투자했기 때문에 납세자인 미국 국민이 기술 개발의 리스크를 공동으로 부담한 셈이 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테크 기업은 이렇게 개발한 기술을 사유화하고 지원받은 세금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았죠. 그러고는 뻔뻔하게도 대중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규제에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의 민간 기업이 인공지능을 비롯해 수많은 중요한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경우도 대부분의 원천기술은 높은 리스크를 감수한 공공투자로부터 탄생했습니다. 이에 대한 정부의 합당한 조치가 없다면, 공공 투자에 힘입어 개발하는 기술의 결실이 또다시 민간 기업의 손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공공 투자로 개발한 기술은 자금을 댔던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국가가 관리해야 하며, 때에 따라서는 국가가 소유할 필요도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학교의 대면 수업이 원격 수업으로 전환됐지만, 전체 학생 중 일부만이 원격수업에 필요한 인터넷과 전자기기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접근권은 일부 구성원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정당하게 누리는 권리여야 합니다.
가치에 대한 새로운 생각
이 모든 것은 공공과 민간의 바람직한 연계가 실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경제학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바로 가치에 대한 잘못된 개념입니다.
근대 경제학은 한 재화의 가치를 책정된 가격으로 평가합니다. 프랑수아 케네,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와 같은 초기 경제학자들이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 견해입니다. 이들은 재화의 본질적인 가치를 가격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 근거해 평가했습니다.
현대의 가치 개념은 경제를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가치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조직의 운영, 경제활동 평가, 우선순위 선정, 정부 평가, 국가자산 산정 등이 달라지는 것이죠.
예를 들어, 공교육은 시장에서 가격을 매겨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 GD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사의 임금에 지불한 금액은 GDP에 반영됩니다. 이 경우 공공 투자가 아니라, 공공 지출이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2009년 골드만 삭스의 CEO였던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이 구제금융 100억 달러(11조 원)를 받으면서 주장했던 “골드만삭스 직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다”는 말도 이와 같은 논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가치의 척도가 재화의 가격이라고 가정하면, 골드만삭스 직원 1인당 임금이 세계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생산성이 최고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죠.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면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가치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 공공기관을 포함한 경제 전반의 다양한 주체들이 투자와 창의성을 창조한다는 인식이 기본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민간 부문이 혁신과 가치 창출의 원천이라고 여겼고, 따라서 혁신에 따른 이익도 당연히 민간 기업이 누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약품, 인터넷, 나노기술, 원자력,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새로운 혁신은 수많은 노동자, 공공 인프라, 공공기관의 노력과 위험을 무릅쓴 정부의 천문학적 투자에 힘입어 개발됐습니다.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공동 노력이 바탕이 된 만큼, 혁신에 기여한 모든 사람과 기관이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고, 혁신의 경제적 보상을 평등하게 나눠야 합니다. 공공과 민간이 상생하는 파트너십은 가치가 공동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실패한 구제금융
가치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넘어, 주주의 단기적 이익보다 이해관계자의 장기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최근의 코로나19 위기를 놓고 보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대량 공급할 수 있는 ‘국민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사회의 장기적 가치를 우선하는 태도입니다. 백신의 연구개발과 보급 단계 모두에서 국가 간 협력과 연대를 촉진하도록 제약 혁신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합니다. 대학과 정부 연구소, 기업의 특허를 모두 개방해 모두가 지식, 데이터,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독점기업이 판매하는 값비싼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유한 국가와 부자들만 살 수 있는 사치품이 되겠죠.
그간의 행태를 제대로 바꾸기 위해서는, 각국이 공돈 나눠주듯 공공 투자를 뿌리지 말고, 정부 지원에 조건을 달아 공익을 위해 시장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자금을 집행해야 합니다. 팬데믹에 대응한 지원금을 제공하면서 다음과 같은 3가지 목표를 조건으로 요구할 수 있습니다.
- 기업의 생산성과 가계 소득보장을 위해 고용을 유지합니다.
- 직장에서의 안전, 적정 수준의 임금, 충분한 병가 급여, 의사결정 시 발언권을 보장해 근무환경을 개선합니다.
- 탄소배출을 저감하고, 교통에서 건강까지 이르는 공공서비스에 전반에 디지털화의 혜택을 적용하는 등 장기적 미션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지난 3월 의회에서 통과된 미국의 코로나19 경기부양 패키지 법(CARES Act)은 정반대로 추진됐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임금을 보조하기보다는 임시적인 실업 수당을 늘려서 지원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3,0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미국은 선진국 중 실업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대기업에 아무런 조건 없이 직간접적으로 수조 달러를 지원했기 때문에, 기업들은 직원의 유급병가 요청을 거부하고 위험한 근무환경을 방치하는 등 전염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조치를 무분별하게 자행했습니다.
미국의 경기 부양 패키지 법은 급여 보호 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을 신설해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계속 고용한 기업에 대해 대출 지원금의 상환을 면제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일자리를 지키기보다는 기업의 채권에 대규모 현금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됐습니다. 실제 지원이 필요한 어려운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중소기업이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미국 의회는 기업이 대출 상환을 면제받는 조건인 임금 지출 기준을 재빨리 완화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급여 보호 프로그램은 실업률을 낮추는 데 크게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MIT 연구팀은 이 제도가 6개월간 5,000억 달러(550조 원)의 대출을 지원했지만 230개의 일자리만을 살려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대부분의 대출 상환이 면제된다고 가정할 경우, 이 프로그램의 연간 비용은 일자리 1개당 50만 달러(5억 5천만 원)에 달합니다. 여름 동안 급여 보호 프로그램과 늘어난 실업 수당의 재원이 바닥날 정도로 돈을 쏟아부었지만, 미국의 실업률은 여전히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살릴 때 조건을 걸어야 합니다.
의회는 지금까지 코로나19에 맞서 3조 달러(3,300조 원)가 넘는 지출을 통과시켰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미국 GDP의 30%를 넘는 4조 달러(4,400조 원)의 금액을 추가로 투입했습니다.
이러한 막대한 지출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불평등과 같은 긴급하면서 장기적 문제의 해결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노동자의 임금 인상과 의사결정 권한 확대, 배당과 자사주 매입, 임원 보너스 제한 등을 내걸었지만 통과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정부 개입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붕괴를 막고 기업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재난 위험에 대한 최종 보험자의 역할을 하죠. 하지만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이 과정에서 정부가 빈털터리가 되거나, 유해한 사업에 지원해서는 안 됩니다.
대규모 도산이 우려되는 경우, 정부가 구제받는 기업의 지분을 요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2008년 미국 재무부가 GM을 비롯한 문제 기업들의 대주주가 됐던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기업의 부당한 관행을 금지하는 조건을 부과해야 합니다. CEO의 천문학적 보너스, 과도한 배당, 자사주 매입, 불필요한 부채 전가, 조세회피처로 수익 이전, 문제 소지가 있는 정치적 로비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같은 제품에 대해 기업들이 지나치게 가격을 높이는 것도 제한해야 합니다.
한편 위기에 맞서는 바람직한 대응을 보여주는 국가도 있습니다. 덴마크는 팬데믹 초기 75%의 기업에 고용 유지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경제적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지 못하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조세회피처에 등록한 기업에 구제금융을 거부했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지원금을 사용하지 못하게 제한했습니다. 호주와 프랑스의 항공사들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조건으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국 정부는 지난 3월 주주들에게 2억 3,000만 달러(2,500억 원)의 배당금을 지급한 항공사 이지젯(easyJet)에 7억 5,000만 달러(8,200억 원)가 넘는 지원금을 투입했습니다. 또한, 영국 정부는 이지젯을 비롯해 코로나19에 타격을 받은 기업의 구제금융에 이행 조건을 달지 않았습니다. 시장 중립을 지킨다는 이유였죠. 민간 기업이 그들의 자금을 어떻게 쓸지 개입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구제금융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정부가 특정한 구제금융 대상 기업을 선택하고 나머지 기업은 지원에서 제외하는 것에서부터 정부의 의도가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행 조건을 붙이지 않는다면, 환경에 해를 끼치는 경영활동부터 조세회피처로 세금을 회피하는 행태 등 기업의 부당한 사업 관행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코로나19 경영 위기로 휴직한 직원 임금의 80%를 지불하는 영국의 고용유지 프로그램은 정부 지원이 끝나자마자 해고되는 직원을 최대한 줄이는 조건을 붙였어야 합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모험가적 자본주의
국가는 생각 없이 투자하면 안 됩니다. 제대로 된 거래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가 말했던 “기업가 국가(entrepreneurial state)”와 같은 사고가 필요합니다. 단지 손실의 리스크를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발생한 이익에 대한 일정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투자를 해야 하죠. 대표적인 방법은 지원금으로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입니다.
태양광 기업 솔린드라(Solyndra)를 생각해 봅시다. 이 기업은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로부터 5억 3,500만 달러(5,800억 원)의 대출을 지원받았지만, 결국 2011년 파산했습니다. 솔린드라는 정부가 시장의 승자를 예측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에너지부는 테슬라(Tesla)에 4억 6,500만 달러(5,100억 원)의 대출을 지원했고, 이후 테슬라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두 기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납세자들은 솔린드라의 파산으로 손해를 보았지만, 테슬라의 성공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벤처 투자자라면 이런 방식으로 투자하지 않았겠죠. 게다가, 에너지부는 테슬라가 대출을 갚지 못하면 테슬라 주식으로 300만 주를 대신 받도록 계약조건을 설정했습니다.
도대체 왜 정부는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정도로 실패한 회사의 지분을 가지려 했던 걸까요? 반대로 테슬라가 대출금을 갚을 수 있다면 300만 주를 내라고 하는 게 더 현명한 전략이었겠죠. 만약 정부가 이렇게 했더라면, 테슬라의 주가 상승으로 정부는 수백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어 솔린드라의 실패에 대한 비용을 보전하는 것은 물론, 다음 투자를 위한 충분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공 투자의 적정한 수익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기업에 대한 지원이 공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강한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정부의 도움을 받아 의약품을 개발한 기업은 정부의 투자를 고려해 가격을 책정해야 합니다. 정부는 승인한 특허의 범위를 좁히고 다른 기업이 쉽게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기술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기업의 지나친 지대 추구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공평한 소득 분배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투자의 수익을 활용해야 합니다.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이익의 원천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최근의 위기는 보편적인 기본 소득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정부가 근로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소득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이 정책의 아이디어와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문제투성이로 비치기도 합니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공돈을 뿌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민간 영역만이 유일한 부의 창조자이고, 정부는 단지 요금 징수자이며, 민간의 이익을 빼돌려 자선단체처럼 분배하는 기관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더 나은 대안은 시민 배당입니다. 이 제도는 정부 투자가 창출한 부의 일정 비율을 기금으로 조성해 수익금을 시민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창출한 부를 직접 시민에게 보상하자는 취지입니다. 예를 들어, 알래스카는 1982년 조성된 알래스카 영구 기금(Permanent Fund)을 통해 석유 판매로 얻은 수입을 주민들에게 매년 배당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알래스카와 유사하게 국부 펀드(Government Pension Fund)를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치가 높은 회사들이 위치한 캘리포니아도 비슷한 제도를 고민할지도 모릅니다. 캘리포니아의 애플이 법인세가 없는 네바다에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캘리포니아는 엄청난 금액의 세수 손실을 보았습니다. 주 정부는 이러한 교묘한 시도를 막아야 할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가 육성한 기술과 기업이 만들어 낸 부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는 국부 펀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 배당은 공동체가 함께 창출한 부를 지역 사회와 공유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입니다. 부의 원천이 공유재인 천연자원인지, 아니면 제약이나 디지털 기술과 같은 공공투자에서 비롯된 것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이런 정책이 세금 제도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대안이 돼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이런 기금의 부족해서 핵심적인 공공재에 자금을 투입하지 못한다는 정부의 면피용 구실이 돼서도 곤란합니다. 하지만 공적 기금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부의 창출에 대한 공공의 기여를 명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민간 영역이 부를 창출하는 유일한 주체라는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습니다.
목표 주도 경제
민간과 공공 부문이 공통의 이익을 위해 힘을 모으면 대단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1969년 미국이 인류의 달 착륙에 성공한 방식입니다. NASA는 아폴로 프로그램을 통해 우주항공, 소재, 전기전자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 기업과 손잡고 8년 동안 함께 투자하고 혁신했습니다. 대담함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해 케네디 대통령이 말한 “가장 위험하고 가장 대담한 실험이며 가장 위대한 모험”을 추진했습니다. 핵심은 특정 기술을 상용화하거나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무언가를 함께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50년이 넘게 지난 바로 지금, 글로벌 팬데믹에 시달리는 가운데 달착륙보다 더 야심 찬 문샷 프로젝트인 “경제시스템의 혁신적 재창조”를 시도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더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불평등을 완화하고, 현대적 대중교통을 조성하고, 모두를 위한 디지털 접근권을 제공하고, 보편적 보건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것입니다. 우선 전 세계 모든 인류를 위한 코로나19 백신을 만들 것입니다.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위해서는 지난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민관 협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팬데믹으로부터 회복이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목표입니다. 더 나은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12년 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를 바꿀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였지만, 우리는 그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제 또 다른 위기로 다시 한번 도전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결코 헛되이 날려버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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