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조카들과 <신비아파트>라는 걸 봤다. 그냥 평범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두컴컴한 어느 으슥한 골목이 나오더니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던가?
순간 열중했던 우리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굳이 비교하자면 어른들이 잔혹한 공포물을 보는 것과 흡사한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얘들아, 저거 무섭지 않니? 차라리 다른 걸 보자!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가 어른들을 위한 콘텐츠만큼 수도 없이 널려있으니 어차피 대안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리모컨이라는 권력을 쥔 내게 달려든다.
아니에요. 저게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심리를 자극하는 시각적 자극이 오싹한 공포감을 형성하고 미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갑툭튀’ 귀신에 소리를 치며 무서워해도, 권선징악이 이루어지는 순간 카타르시스가 온다. 겁 많은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쥐고 본다.
내가 <전설의 고향>에서 “내 다리 내놔”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역시 이불을 덮어쓰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나도, 아이들도 시대만 다를 뿐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1회가 끝나면 2회를 기다리고, 2회가 끝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3회를 재생시킨다.
너네 이제 그만 봐. 아까 약속했지 2편까지만 보기로.
그만보라는 짧은 한마디가 눈 하나 달린 귀신보다 더 무서운 공포일 것이다.
아아~
짧은 외마디 속 수많은 한탄과 원망이 뒤섞인다. <신비 아파트>에 등장한 귀신이나 실제 경험했던 불특정 대상이 공포와 불안이 되어 잔상이 짙게 남는 경우, 잠에 들다가도 때론 악몽을 꾼다. 끙끙대며 깨는 경우 토닥거리며 다시 잠을 재우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인한 악몽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지나친 시청 ‘습관’이 수면의 질 자체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tvN에서 방영하던 <나의 아저씨>를 뒤늦게나마 넷플릭스로 정주행했다. 한편만 보기는 아까웠고 또 아쉬웠으며 궁금했다. 연이어 2편~3편을 몰아보기도 했다. 실제로 1편만 봤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실제로 본방송은 2018년 3월부터 5월까지 총 16부작이 방영되었지만, 난 며칠 만에 시청을 완료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편당 50분에서 1시간이나 되는 드라마를 3편씩 몰아보면 순식간에 자정을 훌쩍 넘긴다. 평소보다 늦게 자는 바람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버겁다. 실제로 동영상 서비스 시청으로 인해 수면의 양이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측 연구팀이 실제 패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동영상 서비스로 영향을 받는 잠의 기록은 최대 30분이 줄었다고 했다. 물론 소수의 패널 대상이기 때문에 최대치는 더 지나칠 수도 있겠다.
공중파, 종편에서 실시간으로 방영하는 드라마는 딱 정해진 시간에 ‘본방사수’해야 하기 때문에 수면 시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동영상 서비스의 경우 콘텐츠의 선택과 취향, 시청 시간이 온전히 사용자의 몫이다. 그래서 본래의 바이오리듬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한 수면 시간 확보는 신체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혈압이 오르고 면역이 악화되며 심하게는 심리적 우울감이 늘어나고 체중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사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하루 종일 피곤함을 몰고 다녀야 한다. 연이은 하품과 졸음을 억누르기 위한 카페인 섭취는 늘어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한 부작용은 식욕도 감퇴시키며 하루 종일 지쳐있어 면역력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단순하지만 충분히 공감할 법한 결과다.
TV를 시청하는 시청자,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모두가 알면서 감내할 뿐이다. 미디어 사용 패턴의 변화는 P2P 서비스를 넘어 IPTV의 VOD, 스트리밍 서비스의 탄생까지 이어지며 이미 예고된 바 있다. 그만큼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용자에게는 광범위한 시청의 자유가 생겼다. 수면 리듬이 깨졌다고 해서 서비스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넷플릭스를 포함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청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수면 부족은 인종과 지역, 나이에 관계없이 동일하다. 때문에 수면을 돕는 애플리케이션도 뜻밖의 활황을 겪고 있고, 시청 규칙을 세우라는 기사도 많이 발행되고 있다.
그중 일부를 아래 붙여 본다. 영국의 슬립스테이션(Sleep Station)이라는 사이트에서는 동영상 서비스를 즐기되 일정한 규칙을 정해서 실천해보라고 권장하기도 했다. 내용을 간단하게 예약해 보자.
- 침대 위에서는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다. 수면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는 가급적 시청을 자제해야 한다.
- 본인이 스스로 시청 시간을 설정해야 한다. 잠에 들기 최소한 1시간 전에 모든 디지털 기기를 꺼야 한다.
- 밤 11시 이후로 에피소드를 이어 보지 않는다. 볼 때 보더라도 최대 3개 이상은 넘기지 않아야 한다.
- 아이와 어른 모두 공통되는 이야기이겠지만, 잠에 들기 전 짙은 잔상을 남길 수 있는 ‘강렬한 것’을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편안히 잠을 이루고 싶다면 편안한 콘텐츠를 보는 것이 좋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넷플릭스 또한 코로나 사태를 통해 더욱 강력해졌다. 2018년 초 37억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던 넷플릭스는, 2020년 2분기에 무려 62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배 가까운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국내 이용자 또한 300만 명이 넘고, 글로벌로 따지면 2억 명 ㅜ준에 이른다. 단순한 계산이지만 한 달에 만 원씩만 2억 명이 월정액을 낸다고 가정하면 월 매출은 2조 원이다. 연간으로 하면 무려 24조 원!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영화관에 가지 못하는 영화광들이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찾는 것도 딱히 어색하지 않다. 개봉을 기다렸던 작품들이 ‘극장 동시 개봉’을 하기도 한다. 2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송중기, 김태리 주연의 SF영화 <승리호> 또한 영화관 대신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확실히 넷플릭스는 관객의 새로운 대안이 된 것이다.
그뿐인가? 수백 편이 넘는 미드에 영드, 일드, 다큐멘터리, TV쇼,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콘텐츠들이 매주 새롭게 올라온다. 이러니 잠을 청하려는 사용자를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뿐이다. ‘9 to 6’으로 정해진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수면을 방해하고 일상에 지장을 줄 만큼 ‘지나친’ 시청 습관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잠은 보약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매너리즘에 지친 현대인들이여, 소파에 앉아 여유가 생기는 시간을 편안하게 즐긴 후 숙면으로 건강도 챙기시기를!
원문: Pen잡은 루이스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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