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넷플릭스를 늦게 시작한 편입니다. IT 회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주변 직장 동료와 친구들은 이미 한 번씩 이용해본 서비스였습니다. 제가 넷플릭스를 처음 시작한 건 2017년 12월이었습니다. 입문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그야말로 뉴비 1입니다. 뉴비임에도 확실한 건 이제 넷플릭스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3명이 모여 가장 비싼 요금제인 프리미엄을 쓰면서 한 달에 4,800원을 지불하지만 전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가끔은 고퀄리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저와 같이 넷플릭스에 빠진 사람들이 과연 왜 넷플릭스에 빠졌는지 분석한 뉴스와 블로그는 그동안 많았습니다.
“독보적인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
“빅데이터 경영”
“막강한 오리지털 콘텐츠”
어디에선가 한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물론 이런 이유가 오늘날의 넷플릭스를 있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4개월 차 이용자 입장에서 과연 이게 사람들이 빠져들고, 무엇보다도 제가 빠져든 이유일까 생각해봤을 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여전히 넷플릭스가 추천해주는 콘텐츠를 보고 ‘왜 내게 이런 콘텐츠를 추천해줄까’ 생각할 때가 훨씬 많으며, ‘나의 취향과 98% 일치’라고 언급해줬지만 2%의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넷플릭스를 껴안고 사는 이유는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본은 무한한 편리함과 막강한 콘텐츠 소비 경험을 가져왔습니다. 넷플릭스를 사용하며 느낀 ‘기본’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TV, PC, 노트북, 태블릿, 모바일 어디에서나
넷플릭스는 모두 아시다시피 TV와 PC뿐 아니라 랩탑(노트북), 태블릿, 그리고 모바일에서도 즐길 수 있습니다. 디바이스 장벽(device barrier)이 없는 셈입니다. ‘요즘 같은 클라우드 시대에 당연한 거 아니야?’ 싶을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여러 디바이스를 통해 하나의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경험은 지금까지 많지 않았습니다.
‘이곳저곳에서 편하게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상상은 했지만 현실에서 이용 가능했던 서비스는 없었죠. 현존 콘텐츠 서비스 중 넷플릭스만큼 디바이스 장벽에서 해방된 서비스는 아직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디바이스 간 콘텐츠 소비 경험을 살펴보면 얼마나 편리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PC에서 다운로드해서 시청한 영상 콘텐츠를 모바일로 계속 이어서 보려면 옮겨야 하고, PC의 콘텐츠를 TV에서 보려면 USB에 콘텐츠를 담은 다음에 TV 뒤 포트에 꽂아서 봤죠. 콘텐츠가 파일 형태로 존재하면서 이를 다른 디바이스에서 보기 위해서는 별도의 이동 장치 또는 이동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에서야 모든 디바이스에서 동기화(Synchronization)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기본’이라 여기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아니었습니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아무리 넷플릭스가 콘텐츠 추천을 잘하고 고퀄리티 오리지널 콘텐츠가 많아도 이런 편리함이 없다면 넷플릭스를 계속 사용했을까 했을 때 확실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용자가 불편해하던 지점을 해결해주는 것을 ‘기본’으로 그 위에 부가적인 기술적 고도화 과정을 거쳤기에 오늘날의 넷플릭스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재지변이 오더라도 ‘이어보기’가 쉽도록
위와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넷플릭스는 ‘재시작’ 포인트를 너무나 잘 기억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영상을 재생하는 동시에 저의 영상 시청 마지막 기록이 맞물려 갱신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컴퓨터를 종료시킨 뒤 다시 넷플릭스를 열어보면 정확하게 제가 영상을 본 마지막 지점부터 재시작했습니다.
창이 갑자기 꺼져도, 컴퓨터가 갑자기 종료되어도, 스마트폰 배터리가 갑자기 방전되도 “어떻게든” 사용자가 영상을 어디까지 봤는지 기억합니다. 사용자의 시청 환경에 어떤 변수가 나타나도 넷플릭스는 마지막 재생 지점을 정확히 기억하는 세심함을 가졌습니다. 4개월 이용하면서 마지막 재생 순간 이외에서 영상을 다시 시작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겪지 못했습니다.
콘텐츠의 수월한 이어보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 장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상 콘텐츠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용자가 그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볼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마지막 재생 지점을 잘 기억해뒀다가 사용자가 다시 해당 콘텐츠를 보고자 할 때 제대로 된 곳부터 보여줘야 합니다. 게다가 디바이스 환경이 다양해진 요즘은 디바이스 간 끊김 없는 연결도 중요합니다.
지하철에서 넷플릭스로 미드를 보던 사용자가 집에서는 TV나 PC로 볼 확률이 크고, 이때도 역시 ‘재시작’을 하죠. 계정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클라우드 동기화를 통해 빠르게 동기화가 진행되면서 재시작 위치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본’과 관련해서 넷플릭스는 정말 훌륭합니다. 이 기능은 모바일→PC, PC→태블릿, 태블릿→모바일 등 다양한 디바이스를 넘나들며 넷플릭스를 즐기는 충실한 기본으로 작동합니다.
어댑티브 스트리밍으로 저화질이더라도 일단 영상 재생
넷플릭스를 이용해보면 아시겠지만 영상을 처음 재생하면 화질이 좋지 않습니다. 매우 저화질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면 자동으로 화질이 업그레이드되죠. 이처럼 일단 저화질로 콘텐츠를 시작하고 차츰 사용자의 기기와 통신 환경에 맞춰서 화질을 조절해 스트리밍하는 기술을 어댑티브 스트리밍(adaptive streaming)이라고 합니다.
넷플릭스가 올해 3월에 준비한 기자 초청 투어에서도 어댑티브 스트리밍을 언급했는데요. 넷플릭스 개발자인 켄 플로랜스(Ken Florance)의 비유가 재미있습니다.
당신이 호스로 양동이 물을 채우려 한다면 이는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가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일은 양동이를 어느 순간에도 비지 않게 하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장치에 버퍼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일반적인 사고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영상 사업자의 서비스에서 최적화된 화질로 콘텐츠가 시작될 때까지 무한 로딩을 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1080p로 영상이 제작되었다면 1080p 화질로 영상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로딩을 했다가 콘텐츠를 시작하는 식입니다.
넷플릭스는 전혀 다른 방식을 사용합니다. HD로 제작된 콘텐츠라고 할지라도 저화질로 우선 영상을 재생합니다. 이는 영상 로딩에서 이탈하는 사용자를 잡고 어떻게든 빨리 콘텐츠를 시청하길 원하는 사용자 니즈에 부합하기 위해서입니다. UHD로 제작된 영상을 UHD 화질 수준에서 처음부터 보여주기 위해서는 최소 수 초 이상의 로딩이 필요하죠.
사용자가 이 단계에서 돌아가는 로딩 아이콘만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초고화질로 영상을 스트리밍하면 넷플릭스 서버 역시 부담됩니다. 양측 모두가 나름의 목표를 거둘 현명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재생되는 편리함
넷플릭스 입문 과정 무렵, 어떤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야 컴퓨터에서 즐길 수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그리곤 깨달았습니다. 컴퓨터에서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말이죠. 넷플릭스는 웹브라우저에서 바로 즐길 수 있습니다. 브라우저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브라우저에서 이용 가능하죠.
웹 브라우저에서 바로 재생되기에 제 컴퓨터가 아니어도 즐길 수 있습니다. PC방에서도 넷플릭스 계정 로그인만 하면 바로, 친구 집의 컴퓨터로도 바로 콘텐츠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브라우저’에 기반해 콘텐츠를 스트리밍하는 방식은 매우 편리하고 그 덕에 록인 되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과 ‘엔딩 크레딧’을 SKIP
미드를 몰아본 적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앞부분에 나오는 ‘줄거리 요약’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엔딩 크레딧’ 입니다. 넷플릭스는 이런 사용자의 고민을 잘 이해했고 서비스에 반영했습니다.
1화에 이어 2화를 볼 때 줄거리 요약이 나오는 부분에서 ‘줄거리 요약 넘어가기’ 버튼이 자동으로 활성화되고 이를 클릭하면 줄거리 요약 부분을 패스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전에 ‘다음 화 보기’ 버튼이 활성화되고, 이를 누르면 자동으로 다음 화로 넘어가죠. 한 번에 드라마를 몰아보는 빈지 워치(binge watch)족을 위한 배려입니다.
마치며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물론 많은 분이 넷플릭스의 성공 포인트로 뽑는 부분도 맞습니다. 이런 기능을 갖추더라도 볼만한 콘텐츠가 없으면 아무 필요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봤을 때 아무리 콘텐츠가 많아도 이 ‘기본’적인 기능을 갖추지 않으면 사용자가 록인 된 채 즐길까요? 콘텐츠 서비스 사업자라면 넷플릭스의 ‘기본’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모든 디바이스에서 끊김 없이 콘텐츠를 이용하도록 서포트하는지
- 콘텐츠의 재시작이 가능하도록 클라우드 기반의 빠른 동기화를 지원하는지
- 무한 로딩에서 벗어나 우선은 빠르게 콘텐츠를 시작하고 차츰 적응하는 형태로 가는지
- 브라우저, SKIP 등 콘텐츠를 이용하는 환경이 편리한지
많은 콘텐츠 사업자가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을 배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오리지널 콘텐츠’ ‘콘텐츠 큐레이션 기술’ 등을 최우선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죠. 하지만 넷플릭스의 ‘기본기’를 우선적으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본이 있어야 그 위에 콘텐츠가 쌓입니다. 기본이 있어야 추천 기술이 고도화되어도 서비스가 잘 작동합니다. 분명 기본기를 갖추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먼저 해야 할 것과 차후 해야 할 것의 우선순위는 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