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생활자의 특성 중 하나는 생존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공을 위해 일하는 것과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같아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나와 관계된 이익에 치우치면서 상대적인 관점에서 스스로를 평가한다는 것이죠. 대표적인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상대적이면서 나의 장기적 생존을 담보하는 행위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죠.
성과주의라고 말하는 곳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명목상으로도 성과주의를 채택합니다. 물론 철저히 개인 단위까지 성과를 측정할 방법과 기준이 매우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지만요. 특히 개인의 성과가 속해있는 조직과 연동되는 비중이 높을수록 이 성과는 객관적인 것과는 멀어지는 아이러니가 벌어집니다. 내가 아무 일도 안 해도, 혹은 내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도 그것이 나타나는 직접적인 성과는 희미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특히 스태프(staff)라 불리는 직무, 조직들이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성과 측정이 어렵다는 이유가 있지만 성과급은 개인별로 나가는 모순된 현장이 많습니다.
이런 직무일수록 ‘열심’의 함정에 빠집니다. 열심은 분명 좋은 것이지만 열심의 목표인 성과는 대부분 시작 단계에 결정됩니다. 그 열심은 시작 단계에 많은 비중을 차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 설계된 사업 모델, 잘 찾은 시장, 빠르게 국내에 도입한 해외 사례, 초기 과감한 투자, 기회가 있을 때 감행한 인수 등은 뒤에 하는 여러 노력과 열심보다 성과에 미치는 파급력이 큽니다. 하지만 이런 열심은 재능이 필요합니다. 재능이 없다면 안타깝게도 성과가 대부분 결정된 일의 중간 이후 단계에 열심을 쏟게 되죠.
일이 없으면 불안한 사람일수록 성과를 내는 게 더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주어진 일을 하고 마는 사람일 수 있죠. 일이 없을 때 일을 만드는 게 능력입니다. 일이 없어서 불안한 것은 그 ‘열심’이 생존의 척도로 나타날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대개 오래된 회사에서 직무가 자리에 잡히다 못해 고착화했을 때 열심이 있는 사람이 생존을 위해 반복된 작업을 열심히 합니다. 사실 성과에 별 영향이 없는, 전임자가 해서 하는 일 말이죠.
- 취합하기는 바쁜 일입니다. 취합한 것들을 모으고 정합성을 체크합니다. 하지만 성과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취합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회사는 고급 인력 하나를 죽이는 셈입니다.
- 소설 쓰기는 근거가 없는 숫자 놀음을 말합니다. 허황된 목표를 나열하며 정교하게 숫자들을 짜 맞추는 일은 성과와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 리포터는 회사에서 필요 없는 일입니다. 돌아가는 현상만 잔뜩 모아 와서 회의할 때 자신의 인사이트나 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꼭 우리 직원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부지런해지지 않는 것을 견뎌야 합니다. 더 미시적으로 접근할수록 유저들의 경험과는 상관 없는 것들을 꼼꼼히 만들고 맙니다. KPI 세팅을 할 때도 그것이 창출하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은 버리고, 이게 맞냐 저게 맞느니 결정을 하는 것은 정말 부지런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열심’입니다. 어떤 형태의 기업이든 ‘그래서 그게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보다 앞서지 않는 룰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부지런함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자리에 없을 때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없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봅시다. 조직이 뭘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면 정말 최악의 열심을 그동안 부린 것입니다. 자신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을 미시적 열심에 갇히게 만든 책임이 있는 것이니까요. 그저 월급 받고 퇴근하는 사람들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다음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취합하기, 소설 쓰기, 리포터의 역할을 맡았을 수 있죠.
정말 부재가 드러나는 사람이라면 뭔가 기술과 역량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미시적 열심을 내는 문화가 다시 자라나겠죠. 그 사람이 그것을 막았던 사람이라면 조직에는 곧 상대주의와 생존을 열심으로 평가하는 모습이 자랄 것입니다. 야근이 얼마나 성행하는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가 서로를 평가하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팀끼리 누가 더 일을 많이 하는지 비교하겠죠.
고객 가치 창출과는 무관한 문화가 마치 기억에서 사라진 것처럼 남게 됩니다. 그게 조직의 언어가 되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배척받고 계속 뭔가 두드리는 소리, 말하는 소리가 미덕이 되겠죠. 이런 미덕의 소리들은 군대에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지 않나요?
오늘 내가 내는 열심은 어떤 부류인가요? 조직이 가치 없는 일의 열심을 종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손해는 자기 자신입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업계에서 경쟁력 없는 경력만 쌓을 테니까요. 한참 지나고 나서 시장의 평가를 받아보면 회사의 평가와 개인의 평가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일을 안 해보고, 할 일만 해봅시다.
원문: Pet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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